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다섯 번째 시즌 2017-2018시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공연 이미지. 지난 9월 26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1일 폐막할 예정이다. 인민군 포로를 이송하던 중, 선상 반란으로 오히려 포로가 된 국군. 하지만 배는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좌초하고,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배의 수리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함께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 스토리피


CJ 아지트 크리에이티브 마인드에서 선정되어 처음 선을 보였던 뮤지컬이 있다. 이후 예그린 앙코르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고, 정식 공연으로 등장하고, 수많은 상을 휩쓸며 뮤지컬계의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작품. 바로 <여신님이 보고계셔>(아래 <여보셔>)다. 이 뮤지컬은 전쟁이라는, 그자체로 끔찍한 배경을 소재로 하였으나 관객들을 '힐링'하게 만든다. '휴머니즘' 뮤지컬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늘 극찬을 받아오던 웰메이드 창작극이다.

실제로 이 뮤지컬이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꽤나 주목할 만하다. 이 뮤지컬은 철저히 개인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본다. 전쟁이라는 거대 서사 내의 개인들을 주목함으로써,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함으로써 전쟁의 끔찍함을 다시 상기시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트라우마와 불안을 안고 살아야하는 한국인들에게 이 뮤지컬은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런 서사에 훌륭한 음악이 덧붙여지니, '한국 창작 뮤지컬' 중에서도 이 작품은 정말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뮤지컬은 젠더적 관점에서 봤을 때 비판의 여지가 있다.

여신님의 타자화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다섯 번째 시즌 2017-2018시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공연 이미지. 지난 9월 26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1일 폐막할 예정이다. 인민군 포로를 이송하던 중, 선상 반란으로 오히려 포로가 된 국군. 하지만 배는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좌초하고,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배의 수리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함께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 스토리피


<여보셔>의 작가는 <플레이DB>와의 인터뷰에서 창섭 어머니와 주화 여동생 같은 여성이 그 시대에 천대 받을 수 있는 '평범하고 소외된 여성들'이었지만 등장인물들이 소중히 여기는 존재였기에 '여신님'으로 투영됐다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플레이DB>, "<여신님…> 뛰어넘는 흥행 예감 <레드북> 한정석&이선영 콤비", 2016년 12월 15일) 하지만 그녀들을 소외한 것이 과연 지금과 분리되는 '그' 시대일까. 혹시 그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외되고 있지 않을까. 투영될 수 있는 완벽한 '여신님'으로 말이다. 그녀들은 발화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녀들은 남성에 의해 호명되고 남성에 의해 그려진다. 때문에 응당 남성들을 사랑한다. 석구의 '누나'는 석구에게 돌아가라며 아련하게 이야기하고, 창섭의 어머니는 따뜻한 모성을 보여준다. 주화 동생은 어쨌든 주화에게 사랑스러운, 사랑스러울 수 있는 여동생이다. 영범의 딸 진희는 그냥 발언권이 없는 소녀다. 그녀들은 모두 사회에서 여겨지는 여성성 안에 안전하게 편입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이 그녀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던 것은 그런 이유 아닐까. '성녀'의 이미지로 안전하게 편입되거나, 자신의 통제 하에 있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신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신님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진짜 이야기는 알 수 없다. 석구의 누나가 석구의 구애를 부담스럽게 여겼을지 아니면 '석구야, 돌아가'를 아련히 외치던 것처럼 정말로 어떤 감정이 있었을지. 이는 그녀 스스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석구의 회상 속에서 존재하는 대화기 때문에 모를 일이다. '꽃봉오리'는 석구의 관점에서, 석구의 언어로 노래된다. 석구의 관점에서 이는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된다.

남성 인물들은 '여신님'을 통해 유대감을 쌓는다. 당장 여신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신님을 매개로 하여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간다. 감히 욕망할 수 없는 대상을 성스러움의 영역으로, 어머니의 영역으로, 공유될 수 있는 영역으로, '여신'의 영역으로 치환하는 것은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신님의 프로필 사진은 이 극의 여신님과 잘 맞아 떨어진다. 정면을 응시하며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는 남성군인들과 달리 여신님은 어딘가 다른 곳을 응시한다. 미술사에서 아프로디테(비너스)가 그려지던 모습을 떠올려 보자. 바라보는 혹은 관음하는 남성이 불편하지 않도록, 비너스는 어딘가 다른 곳을 응시한다. 오로지 보임을 '당하는' 여성들의 모습. 이 때, 여신님은 과연 '보고계셔'인가? 혹시 여신님은 '보이고' 계시지 않는가? 여신님이 보고 계실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남성을 돌보는 이상적인 모습일 때뿐 아닐까?

극의 구조 자체가 남성 군인들의 회상으로 이뤄지는데, 어떻게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고루 담아낼 수 있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 문학사에서는 발화하지 못한 채, 남성 작가의 시각에 그려지는 여성 인물들과 그를 그려내는 남성 작가들에 대한 비판이 이미 숱하게 오고 갔다. 분명히 존재해야 하는, 발화 되어야하는 비판이다.

여신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다섯 번째 시즌 2017-2018시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공연 이미지. 지난 9월 26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1일 폐막할 예정이다. 인민군 포로를 이송하던 중, 선상 반란으로 오히려 포로가 된 국군. 하지만 배는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좌초하고,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배의 수리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함께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 스토리피


또한 <여보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여신님의 이미지다. 하늘하늘한 머리에 긴 원피스, 부담스럽지 않은 수수한 메이크업. 신이라는 개념은 은유적이다. 이들은 결국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리고 <여보셔>는 그 신의 개념을 차용해왔다. 다시 말해, 이 뮤지컬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이상적 여성상을 그대로 재생산하며 진행된다. 남성들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부담스럽지 않을,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말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여성성' 바깥의 모습, 예컨대 숏 컷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스모키 화장을 한 여신님도 존재할 수 있을까? 1950년대에 너무 무리인 설정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다시 바꿔보자. 노년의 여성 배우가 여신님을 연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마르거나 날씬한 체형이 아닌 여성 배우가 여신님을 연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들은 남성들의 '여신'이 될 수 없다.

결국 여신도 남성들의 관점에 맞춰 제멋대로 편집된다. 원래 처녀신 아르테미스는 성 경험이 있더라도 결혼하지 않는, 결혼 제도 내로 들어오지 않는 여신이었다. 그녀는 '불편한' 여신이었다. 그러나 결혼 제도 내에 포섭되지 않던 자유로운 풍요로움의 여신은 '순결'한 처녀 신으로 변모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왕모는 본래 죽음과 생명, 재앙과 전염병을 관장했던 신이다. 표범 꼬리에 호랑이 이빨을 한 반인반수의 여신은 후세로 갈수록 아름다움의 그리고 낭만적인 연애의 여신으로 변모했다. <여보셔>의 여신님은 이들과 얼마나 다를까.

남성들을 안아줄 수 있는, 자연으로의 여성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다섯 번째 시즌 2017-2018시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공연 이미지. 지난 9월 26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1일 폐막할 예정이다. 인민군 포로를 이송하던 중, 선상 반란으로 오히려 포로가 된 국군. 하지만 배는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좌초하고,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배의 수리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함께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 스토리피


필자는 문명을 남성으로, 자연을 여성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무인도로 대표되는 자연은, 전쟁으로 대변되는 문명의 폭력성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다만 <여보셔>에서의 자연은 지나치게 수동적이다.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파도는 여신님이 아니다. 남성 군인들이 누릴 자원을 제공하는 자연, 그 무인도 자체가 곧 여신님이다. 그 자연은 저항하지 않는다. 가만히 모든 것을 제공한다. 야생성을 지닌, 적극적인 자연이 아니라 그저 기다리는 자연이다.

여성을 자연으로 비유할 때, 여성성을 자연의 수동적인 속성에 국한해서 묶어버려서는 안 된다. 아쉽게도 <여보셔>는 이를 반복한 셈이다. 남성 군인들의 행태는 전혀 폭력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남성 군인들과 수동적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여신님, 이는 다시 말해 생태주의 페미니즘이 아니다. 이는, 여태까지 수도 없이 존재해온 남성 서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과 휴머니즘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다섯 번째 시즌 2017-2018시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공연 이미지. 지난 9월 26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1일 폐막할 예정이다. 인민군 포로를 이송하던 중, 선상 반란으로 오히려 포로가 된 국군. 하지만 배는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좌초하고,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배의 수리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함께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 스토리피


<여보셔>에서 군인들은, 여신님이 계시는 무인도에서 행복하다. 그들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구분도,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도 뒤로한 채 웃고 떠든다. 어쩌면 살육이 들끓는 육지보다, 저 무인도가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이 땅이 마냥 평화롭지는 않을 텐데. 어쩌면 무인도에서 그들만의 천국을, 독립된 하나의 새 세계를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텐데. 왜 돌아와야 하는가.

그들이 돌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육지에 존재하는 소중한 이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육지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유, 환상으로 그리워하는 이들은 모두 여성이다. 극 중 여성은 자연임과 동시에 돌아가야 할 집으로도 비유됐다. 하지만 전쟁을 상상해보라. 그토록 혼란스러운 전쟁기에, 여성들은 계속 돌아갈 수 있는, 고정된 위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녀들 또한 혼란스러운 전쟁을 겪고 있다. 전쟁의 피해자는 남성만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그녀들이 전쟁으로부터 독립된 것처럼 묘사하는 것, 이는 전쟁의 상흔을 경험한 여성들을 지우는 또다른 방식 아닐까.

'휴머니즘' 뮤지컬이라 불리는 <여보셔>이지만, 그 휴머니즘은 결국 남성들의 휴머니즘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우정, 평화, 휴머니즘은 주인공 남성들에게 점유된다. 전쟁을 겪는 여성은 극 중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전쟁으로 심각하게 트라우마를 얻으며 괴로워하는 남성의 이야기는 나오지만, 전쟁의 비극은 여성에게도 적용된다. 다만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여보셔>가 남성 군인들이 남신을 상상하는 서사였다면, 아니면 전쟁에서 피해 입은 여성들이 여신을 상상하는 서사였다면, 여성들이 남신을 상상하는 서사였다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왜냐면 <여보셔>의 대상화에는 남성 중심성과 이성애 중심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을 대상화 할 수 없다. 같은 여성이 여성을 대상화 하는 것 역시,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남성이 남성을 대상화하는 경우도 후자의 이유에서 어렵다. <여보셔> 속 따뜻한 휴머니즘을 한꺼풀 벗겨보면, 그 전제의 중심에는 남성과 이성애가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 뮤지컬은 분명히 잘 만들었고, 그만큼 잘 팔리는 뮤지컬이다. 창작 뮤지컬로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영광을 누렸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작품이다. 다만, 잘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작품일수록 그 작품 안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찾는 것이, 앞으로 등장할 더 많은 신작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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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 해외 관극도 함께하며, 잘 만든 서사를 기다리는 중.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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