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우스갯소리로 올라온 글을 보았다. '10억 원을 받고 음악 안 듣기'와 '그냥 지금 그대로 살기'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글이었다. 놀랍게도, 댓글에서는 '10억 원을 안 받아도 좋으니 음악을 들으며 살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댓글 내용처럼, '음악 없는 삶'은 그야말로 상상하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음악이 주는 행복은 물질적인 풍요를 초월한다. 음악으로 가득했던 2017년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 2017년 케이팝을 결산하면서 떠올리게 되는 이슈 몇 가지를 손꼽아 보았다.

1. 스타들은 올해도 건재했다

 아이유의 <팔레트>는 타이틀곡과 수록곡들이 고루 사랑받은 앨범이었다.

아이유의 <팔레트>는 타이틀곡과 수록곡들이 고루 사랑받은 앨범이었다. ⓒ 페이브 엔터테인먼트


지난 봄, 아이유가 4년 만의 정규 앨범 <팔레트>를 들고 돌아왔다. <팔레트>는 그 어느 때보다 아이유 자신을 진솔하게 담아낸 앨범으로서, 타이틀곡 '팔레트'뿐 아니라 '사랑이 잘', '밤편지' 등의 수록곡들도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이에 힘입어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년 만에 돌아온 리메이크 프로젝트 <꽃갈피 둘>도 버금가는 사랑을 받았다.

2015년 데뷔 이후 최고의 걸그룹으로 자리 잡은 트와이스는 지난해에 이어 'Knock Knock', 'Signal'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켰다. 팬덤, 음반 판매량, 음원 성적과 파급력 등을 고려했을 때, 트와이스는 '한 세대를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우뚝 선 상태다.

케이팝의 아이콘 지드래곤은 앨범 '무제'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드래곤은 링크를 담은 USB의 형태로 앨범을 발표했는데, 'USB를 앨범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뜨거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레드벨벳은 '빨간 맛'을 앞세워 지금까지 이들이 내놓은 곡 중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한편, 3년이라는 긴 공백 기간 끝에 컴백한 위너는 산뜻한 트로피컬 하우스 넘버 'Really Really'로 긴 공백의 서러움을 상쇄했다.

2. 새로운 음원 강자들의 등장

2016년부터 인기몰이를 예고했던 헤이즈와 볼빨간사춘기가 완전한 음원의 강자로 등극했다. 헤이즈는 '널 너무 모르고'와 '비도 오고 그래서'를 올해 최고의 히트곡으로 만들었다.

헤이즈의 무기는 무엇일까. 그녀는 화려한 가창력의 보컬은 아니지만, 담백하고 고운 목소리를 갖췄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이별을 공감하기 쉬운 보편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이런 요인들로 이제 헤이즈의 감성은 '흥행 보증 수표'가 되었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봄철의 시즌송이 되었다면, 헤이즈의 '비도 오고 그래서'는 장마철의 시즌송이 될 듯하다.

 헤이즈의 '비도 오고 그래서'는 장마철의 시즌송이 되었다.

헤이즈의 '비도 오고 그래서'는 장마철의 시즌송이 되었다. ⓒ CJ E&M


대중과 평단의 박수를 받으며 최고의 2016년을 보낸 볼빨간사춘기는 지난해의 좋은 흐름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스무살과 함께 호흡을 맞춘 '남이 될 수 있을까'를 비롯, '썸탈거야', '나의 사춘기' 등이 골고루 사랑받았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겠느냐는 우려와 달리, 안지영은 올해 역시 대중의 마음을 관통하는 작곡가였다.

2016년에 볼빨간사춘기가 있었다면, 2017년에는 남성 듀오 멜로망스가 있었다. 페스티벌 무대를 통해 음악팬들을 만났던 멜로망스는 지난 9월,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이후 새로운 반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날 방송에서 부른 '선물'은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스타들의 컴백 속에서도 1위를 지켰다. 보컬 김민석의 목소리와 부드러운 멜로디는 번화가 어디에서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3.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좋니' 열풍

 '딩고 세로 라이브'는 '좋니' 열풍에 큰 역할을 했다.

'딩고 세로 라이브'는 '좋니' 열풍에 큰 역할을 했다. ⓒ 딩고뮤직


올 상반기에 가장 사랑받은 발라드가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드라마 <도깨비> OST)였다면, 하반기의 주인공은 단연 윤종신이었다. 포스티노가 작곡하고 윤종신이 노랫말을 붙인 '좋니'는 미스틱 프로젝트 'Listen'의 일환으로 발표된 곡이다.

'좋니'는 유튜브 '세로 라이브' 영상과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탔다. 이 노래가 6월에 발표되었을 당시, 100위권으로 진입했던 '좋니'의 순위는 소셜 공유로 단숨에 정상으로 치솟았다. 덕분에 윤종신은 데뷔 27년 만에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발라드 가수보다는 '심사위원', '라디오스타 MC'의 모습으로 윤종신이 더 익숙할 1020세대가 가장 크게 반응했다. 미스틱 사단의 민서가 부른 답가 '좋아' 역시 원곡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고 있다. '좋니'를 윤종신의 모든 곡 중 가장 좋은 곡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는 '월간 윤종신'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곡으로 바쁘게 자신을 증명해왔던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어떤 발라드가 가장 많은 사람들을 울렸냐고 묻는다면 자연스럽게 '좋니'를 뽑게 된다. 1990년대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구성의 발라드, 꾸밈없는 가사, '너의 결혼식'처럼 절규하는 창법은 수많은 대중(혹은 전 남자친구들)을 울렸다. 장담컨대, 당신이 오늘 노래방에 간다면 열이면 아홉, '좋니'를 열창하는 목소리들을 듣게 될 것이다.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아이유 헤이즈 볼빨간사춘기 트와이스 윤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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