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왕조가 막을 내렸다. 지난 2002년 대교 캥거루스로 창단한 이천대교 여자축구단은 화천KSPO와의 2017 W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1-2로 무릎을 꿇으며 15년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모기업이 운영을 포기한 팀은 해체됐고 우승 3회, 준우승 3회를 이룬 주역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WK리그 초창기를 지배했던 대교 축구단이 2017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WK리그 초창기를 지배했던 대교 축구단이 2017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KFA


그러나 팀은 사라졌어도 선수는 남았다. WK리그와 국가대표에서 검증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FA자격으로 시장에 나왔고, 우승을 노리는 팀들은 발빠르게 이들을 영입해 단기간에 전력을 상승시켰다. 대교가 남긴 마지막 유산을 물려받은 팀들의 상황을 통해 내년 우승컵의 향방을 점쳐봤다.

 서현숙은 수원FMC 이적이 확정된 뒤 '챔피언에 오르는 것이 목표'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서현숙은 수원FMC 이적이 확정된 뒤 '챔피언에 오르는 것이 목표'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 KFA


'AGAIN 2010' 노리는 수원FMC, 포지션별 알짜배기 영입으로 전력 극대화

WK리그는 오랫동안 인천현대제철과 이천대교의 2강 체제였지만 이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우승한 팀이 있다. 바로 2010년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수원FMC다. 하지만 올해는 녹록치 않았다. 절대 1강 인천현대제철을 잡아내는 등 7라운드까지 무패행진을 달리며 기분 좋게 스타트를 끊었지만, 김상태 감독이 지난 7월 말 불미스러운 일로 직무정지를 당하며 사실상 시즌 절반 가까이를 사령탑 없이 치러야 했다. 박길영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수습해 간신히 리그 5위로 시즌을 마쳤다.

일찌감치 시즌을 종료한 뒤에는 구단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박길영 코치를 감독으로 정식 승격시킴과 동시에 이천대교 출신 서현숙과 권은솜, 문미라를 영입하며 스쿼드를 보강했다.

가장 눈에 띄는 영입은 역시 국가대표 라이트백 서현숙이다. 빠른 발과 대인방어 능력을 갖춘 서현숙의 합류로 수원은 이은미-김나래-신담영-서현숙으로 이어지는 전·현직 국가대표 수비진을 갖추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주장 곽미진이 이적한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권은솜이 들어왔고, 김진영과 공혜원이 은퇴한 공격진에는 문미라가 가세했다.

전 포지션에 걸쳐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골고루 수급한 박길영 감독은 빠른 역습 축구로 인천의 6연패를 막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구미스포츠토토는 리그 최고 수준의 조건으로 박은선을 영입했다.

구미스포츠토토는 리그 최고 수준의 조건으로 박은선을 영입했다. ⓒ KFA


구미스포츠토토, 박은선 필두로 광폭 행보... 리그 최강 공격진 완성

올해 인천현대제철은 WK리그와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관왕에 올랐다. 여름에 열린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마저 우승했다면 전무후무한 3관왕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미스포츠토토가 그 꿈을 좌절시켰다. 120분 동안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돌입한 승부차기에서 구미 골키퍼 강가애가 인천의 마지막 키커 조소현의 슛을 막아내며 팀에게 창단 첫 우승을 안겼다.

하지만 구미는 전국체전에서는 신생팀 경주한수원에 덜미를 잡혀 경북 예선을 뚫지 못했고 WK리그에서는 6위에 그쳤다. 유영아, 이소담, 최유리, 강가애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포진한 스쿼드에 비해 아쉬운 성적이다. 그래서일까, 동계 전지훈련을 앞둔 현재 구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거칠 것이 없다. 다음 시즌 외국인 선수를 과감하게 배제하는 대신 이천대교 출신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스트라이커 박은선을 시작으로 김상은과 허지연, 플레이메이커 박지영과 수비형 미드필더 지선미가 팀에 합류했다.

애당초 구미는 플레이메이커 이소담의 인천 이적으로 인해 공격력 약화가 우려됐다. 하지만 유영아와 박은선이 버티는 최전방과 김상은, 최유리가 포진하는 측면 아래 박지영이 새로운 플레이메이커로 자리하며 오히려 리그 최강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진을 완성했다.

 심서연은 라이벌 팀으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심서연은 라이벌 팀으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 KFA


통합 5연패의 인천현대제철, 심서연 영입으로 수비진에 방점

새 소속팀을 찾은 대교 선수들 가운데 최고의 화제는 단연 인천현대제철로 이적한 심서연이다. 이천대교와 인천현대제철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포지션인 센터백 자리에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심서연 본인에게도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자신을 발탁한 최인철 감독의 러브콜에 마음이 움직였다. 대교 선수들 중에서 인천으로 온 선수는 심서연이 유일하다.

인천은 유난히 해외로 전력 유출이 많았다. 시즌 종료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측면 공격수 전가을이 멜버른 빅토리로 떠났고, 미드필더 이민아 역시 고베 아이낙 이적이 결정됐다. 조소현 또한 해외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E-1 챔피언십이 끝나면 행선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심서연의 합류로 수비만큼은 더욱 굳건해진 모습이다. 특히 센터백 스쿼드의 깊이가 어마어마하다. 기존의 김도연(74경기), 김혜리(64경기), 임선주(61경기)에 심서연(54경기)이 가세한 센터백 4명의 A매치 출장기록은 무려 253경기에 달한다. 게다가 심서연은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윤선영과 이슬기 등 전도유망한 백업 요원들도 벤치에서 대기한다.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을 연상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독주 체제를 이어가는 인천현대제철이지만 최인철 감독은 "라이벌은 계속 나타난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수원과 구미 외에도 올 시즌 전국체전 준우승을 차지한 신생팀 경주한수원,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이천대교에게 업셋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온 화천KSPO 역시 위협이 될 수 있는 상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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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윤지영 시민기자는 청춘스포츠 6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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