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 영화 포스터

▲ <초행> 영화 포스터 ⓒ 봄내필름


동거 7년 차 커플인 수현(조현철 분)과 지영(김새벽 분). 결혼을 고민할 시기가 찾아왔으나 미술강사와 방송국 계약직이란 현실 앞에서 둘은 망설인다. 서로의 부모님을 뵙기로 마음먹고 인천과 삼척을 오가는 여정 속에서 지영의 어머니는 결혼을 강요하고, 수현네 가족의 복잡한 가정사가 나타나는 등 현재의 고민과 미래의 두려움이 끼어들며 두 사람은 다투게 된다.

<초행>은 <철원기행>(2014)으로 데뷔한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철원기행>은 갑작스럽게 이혼 선언을 한 아버지와 이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가족들이 폭설로 인해 며칠간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되는 모습을 그렸다. <초행>은 오래된 연인인 수현과 지영이 가기 싫으나 어쩔 수 없이 인천과 삼척으로 각자의 가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行(다닐 행)'과 여정에서 마주하는 '가족'은 두 작품을 관통하는 단어다.

김대환 감독은 "두 사람의 경제적 배경, 결혼 주빈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파장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과 갈등을 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출발점은 공간이었다. 경기도 인천과 강원도 삼척을 오가는 주인공들이 일출과 일몰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 인물과 상황을 더해지며 <초행>의 뼈대는 완성되었다.

서울-인천-삼척, 공간 이동하며 다른 정서를 보여주는 영화

 김대환 감독의 <초행>(2017) 한 장면

김대환 감독의 <초행>(2017) 한 장면 ⓒ 봄내필름


초행(初行)은 '어떤 곳으로 처음으로 감'이란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영화는 결혼이라는 낯선 길을 처음으로 걷는 두 사람을 조명한다. 동서로 끝에 위치한 인천과 삼척은 둘이 가지는 불안의 거리처럼 느껴지고 삶의 굽이를 보여주는 흔적으로 다가온다. 김대환 감독은 <스타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삼척을 가기 위해 태백산맥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커플이 넘어야 할 고비라는 의미도 있다"고 귀띔한다.

인천과 삼척은 공간의 정서도 다르다. 지영의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견고하다는 인상으로 가득하다. 동시에 드러나지 않는 '차가운 벽' 같기도 하다. 수현의 가족은 탁 트인 바닷가를 마주하는 삼척에 머문다. 바다는 자유로운 풍경을 보여주지만, 가족 간엔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며 불안정한 기운이 감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다룬 <씨네21> 글에서 김혜리 기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재료로 영화 만들기"라고 운을 떼며 "영화가 작위를 철저히 배제하면 관객은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들과 미세한 움직임들에 예민해진다"고 적은 바 있다. "예술에서 진짜가 가짜처럼 보이게 하려면 정교한 양식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현실의 표면을 즉각 복제할 수 있는 예술인 영화에서 제일 어려운 작업이다"라고 부연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홍상수, 장건재, 김종관 등을 꼽을 수 있다.

 김대환 감독의 <초행>(2017) 한 장면

김대환 감독의 <초행>(2017) 한 장면 ⓒ 봄내필름


<초행>의 김대환 감독도 일상을 훌륭히 묘사한다. 그는 익숙한 '기승전결' 구조를 철저히 무시한다. 영화는 인천과 삼척에서 가족을 만나는 일, 연인끼리 나누는 대화나 토닥거림이 전부다. 특별히 벌어지는 사건은 없다. <철원기행>에서 느닷없이 이혼이란 사건으로 문을 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전개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특별한 줄거리나 사고가 없는 <초행>을 "그들 각자의 본가에서 밥을 먹으며 벌어지는, 가까스로 봉인돼 있던 균열과 불화가 슬쩍 터져 나올 때 주인공들이 보이는 반응과 행동이 중요한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인천과 삼척에서 가족끼리 밥을 먹는 장면과 연인끼리 중화요리를 먹는 장면은 문자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인물의 눈빛과 행동, 목소리의 떨림, 카메라의 움직임, 정지된 것 등 식사 장면은 영화 언어로 오롯이 채워졌다.

영화는 불안을 포착하기 위해 각본과 촬영에 정성을 쏟았다. 시나리오는 존재했으나 현장에서 감독은 배우들과 합의하고 즉흥적인 연기와 대사로 촬영에 임했다. 배우뿐만이 아니라 감독도 진행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을 터지만, 서로 간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카메라는 배우들의 움직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핸드헬드로 잡았다. <철원기행>과는 완전히 다른 화법으로의 도전이었고 결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우리 어디로 가야 하나?" 개인에서 가족으로 확장하며 묻는 질문

 영화 <초행> 관련 사진.

영화 <초행> 관련 사진. ⓒ 인디플러그


<초행>은 "우리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란 질문을 개인에서 가족으로, 나아가 사회로 범위를 넓혀간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2016년 겨울 광화문의 모습을 담았다. 시대의 담론으로 '초행'을 확장한 셈이다. 그리고 극 중 인물과 관객의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워 준다.

<초행>은 김대환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고, 고향친구인 장우진 감독이 제작과 각색을 담당했다. 두 사람이 설립한 '봄내필름'은 앞서 장우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김대환 감독이 제작한 <춘천, 춘천>을 내놓았다. <춘천, 춘천>에서 빛나는 일상성, 즉흥성, 우연성은 <초행>에서도 이어진다. 둘의 영화 실험을 베를린, 로카르노, 마르델플라타 등 세계 유수 영화제가 주목하고 있다.

김대환 감독은 <철원기행><초행>을 잇는 '가족3부작'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가 봉준호 감독의 신작인 <기생충>의 초고를 작업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야말로 '대단한 물건'이 한국 영화계에 등장한 것이다. <철원기행><초행><춘천, 춘천>으로 한국 영화의 새로운 장을 쓰며 초행을 걷는 김대환, 장우진, 봄내필름. 이들의 앞날을 함께 응원하며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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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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