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직 사랑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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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남쪽, 남아프리카 공화국 바로 위에 위치한 보츠와나는 인구 약 220만의 나라다. 그러나 1947년, 이 땅은 '베추아날란드'라고 불렸고, 다이아몬드를 탐내는 강대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호시탐탐 이 나라를 노리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영국에게 보호령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의 운명은 처절했다.

게다가 남아프리카의 백인 정권은 유색인종 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법률화를 준비하던 시절이었고(1948년 아파르트헤이트는 법률로 공식화 됐다), 인종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왕위 계승자인 세레체 카마 왕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학 중, 백인 여성 루스 윌리엄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프리카 왕자와 평범한 영국 백인 여성과의 결혼은, 당연히 엄청난 사회적·정치적·외교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세레체, 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이 떠오를까

인종과 문화를 넘어서는 이 둘의 사랑은 순수하고 숭고했지만, 영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각국의 이권 문제로, 그리고 세레체를 대신해서 섭정하던 숙부와 왕족은 루스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이 결혼을 결사반대한다. 이제 결정은 부족회의 '고틀라'에 달려 있다. 백성들의 결정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세레체 카마는 자신이 얼마나 이 민족과 백인 아내를 사랑하는지, 아내의 피부색이 왜 문제가 안 되는 지에 대해서, 피를 토하듯 쏟아낸다.

"아내에게 죄가 있다면 나와 사랑에 빠진 것뿐이오! 제 죄는 그녀를 사랑하는 겁니다. 전 아내를 버리고 왕이 될 수 없고, 여러분께 제 뜻을 강요할 순 없지만 진짜 싸워야할 대상은 자유를 억압하는 자들입니다. 아프리카 모두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평등과 정의 실현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 국민을 사랑합니다. 이 땅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여러분 결정을 존중하겠습니다." - 영화 <오직 사랑뿐> 중에서

사랑하는 국민 앞에서 절규하는 세레체 카마의 모습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경선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명연설을 생각나게 한다.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그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이 아내를 계속 사랑한다고 해서 대통령이 자격이 없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 두겠습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 - 고 노무현 대통령,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인천 경선 연설 중에서.

진실을 호도하는 외세와 거짓세력에 대항해서 싸우는 지도자의 전투는 외롭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는 불의한 흐름에 정면으로 대항했고, 국민은 진실에 눈을 뜰 수 있었다. 하지만 싸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국은 이를 세레체 왕자와 숙부의 권력싸움으로 몰고 갔고, 심지어 보고서를 조작해 세레체를 조국에서 추방하고 영국에 억류시킨다.

그러나 세레체와 루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베추아날란드 국민도 한 마음으로 영국의 부당한 결정에 저항하며 왕과 왕비의 귀국을 위해 싸운다. 이제 세레체에게 남은 것은 시대의 흐름과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읽고 국민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조국을 빈곤으로부터 탈출시켜줄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확보한 후, 그는 삼촌을 설득해서 왕정을 포기하고, 보츠와나 공화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성토한다.

보츠와나 공화국이 쿠데타, 내전에 휘말리지 않은 이유

 영화 오직 사랑뿐

영화 오직 사랑뿐 ⓒ (주)팝엔터테인먼트


"우린 전통이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도 변화가 필요하고 좋든 싫든, 베추아날란드도 변화해야 합니다. 식민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도록 왕권 제도를 넘어서는 정치 제도가 필요하고, 그래서 민주 국가로 거듭나야 합니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왕족이나 영국 왕실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직접 통치자를 선택하는 거죠. 진정한 자유 시민은 주체적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새로운 베추아날란드, 새로운 아프리카를 만듭시다. 그 때가 되었습니다!" - 영화 <오직 사랑뿐> 중에서.

보츠와나는 내전과 비극의 씨앗인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세계 3위에 이르지만 독립 이후 쿠데타, 내전,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사회 안정에 힘입어 관광산업도 놀랍게 성장했다. 이 모든 결실은 물론 세레체 카마(후에 제1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의 정치적 결단과 맞닿아있다. 그는 강대국의 압력 회유 타협에 굴복하지 않았고, 태생적으로 누릴 수 있었던 왕좌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 국민의 주체적 결정을 선택했다. 시대를 읽은 그의 응답이었다.

인종적 편견, 문화 관습적 차이를 넘어선 세레체와 루스의 진정한 사랑은, 이 흑백의 연인을 운명적으로 묶어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강대국의 정치적 책략이 소용돌이 친 싸움에서 지켜낸 그들의 나라는 '아프리카의 숨은 다이아몬드' 보츠와나로 탄생된 것이다.

 오직사랑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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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세레테 카마와 루스 윌리엄스의 러브 스토리와 국민 우선의 정치 철학으로 탄생한 보츠나와 독립에 감동을 받았으며 6년에 걸친 준비와 기획을 거쳐 그 둘이 살았던 보츠와나의 실제 집과 병원에서 촬영했다. 영화 <오직 사랑뿐>은 오는 2월 8일 개봉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드림 투게더>, 이진영 시민기자 개인 블로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츠와나 독립 베추아날란드 아프리카 다이아몬드 영국 보호령 2002년 새천년 민주당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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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접하게 되는 다채로운 영화들, 반추되는 인생, 또 여행과 일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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