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때 친구 집에 모여 겨울 수련회를 준비하며 H.O.T의 '캔디'를 역할을 정하고, 비디오를 돌리고 또 돌려가며 연습했던 소녀는 용돈을 모아 모두 토니안의 사진을 사는 데 다 썼었고, 브로마이드며 잡지며 방안을 가득 채웠던 때가 있었다.

뭐든 쉽게 도전하지만 또 그만큼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나는 이제 공부를 열심히 할 거야'라고 혼자 다짐하며 조용히 그동안의 자료들을 정리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출퇴근 길 내 이어폰 속 친구는 주로 라디오여서 DJ가 소개해주는 음악들이 곧 재생 목록이었던 내게 어느 날엔가 들려온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 '행복해', '장가갈 수 있을까' 등. 처음 듣는데도 마치 알고 있던 것처럼 편안하게 들리던 노래들이 자연스레 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콘서트 같은 건 그냥 열광적인 팬들이나 가는 거라 여겨졌고,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리는 날엔 그냥 반가운 정도였다. 일상에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 정도랄까.

 지난 2015년 9월 커피소년(Coffeeboy)은 '오늘 6시 15분. 부산 광안리. 만남의 광장(롯데리아 앞)에서 버스킹합니다! 와와!'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 2015년 9월 커피소년(Coffeeboy)은 '오늘 6시 15분. 부산 광안리. 만남의 광장(롯데리아 앞)에서 버스킹합니다! 와와!'라는 글을 올렸다. ⓒ 커피소년 페이스북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2015년 9월 SNS를 보다 우연히 게시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늘 6시 15분. 부산 광안리 '만남의 광장'에서 버스킹합니다! 와와!'

꼭 나에게 문자메시지 보내 '당장 와!'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게시물에 홀린 듯 퇴근길을 부지런히 달려 광안리에 도착했고, 바로 앞에서 직접 키보드 반주하며 노래하는 커피소년의 첫인상은 '진짜 커피소년 맞아?'였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 중엔 아는 노래도 있고, 모르는 노래들도 있었는데 구겨지고 헤진 마음을 하나하나 조심히 다려주겠다는 가사와 후렴 부분의 안무가 인상적이던 '다리미'라는 곡이 제일 좋았다.

어디서 용기가 났을까. 공연이 끝나고 다가가 사진 함께 찍고 싶다고 휴대폰을 건네며 덜덜 떨었었다. 흔쾌히 응해주며 "전국투어 콘서트에 친구분과 함께 오세요"라고 눈을 맞추며 조용히 말해주었다. (그러나 같이 갈 친구도 없었고, 적극적인 마음이 없어 콘서트에는 가진 않았다. 난 광팬이 아니었으니까.)

 부산 광안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커피소년의 모습.

부산 광안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커피소년의 모습. ⓒ 김태리


라디오에 게스트로만 나와도 괜히 아는 사람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직접 만나 라이브로 음악도 듣고, 사진도 함께 찍었더니 지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으로 한동안은 커피소년의 음악만 들었던 거 같다.

30대에 다시 만난 커피소년

세월은 또 흘러 2017년 2월 어느 날 SNS 라이브 방송이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해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개인 방송을 하는 시대! 우연히 커피소년의 라이브 버튼을 클릭하게 됐다.

거의 매일 밤 1시간 이상씩 열리던 라이브 방송에서 커피소년은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주기도 하고 팬들 이름도 기억해줬다. 전국을 넘어 외국에 있는 팬들까지 밤마다 모여 수다를 떨었다.

일찍 자던 내가 잠을 조금 줄여야 하긴 했지만 노래로만 듣던 커피소년의 라이브 방송 속 장난기 넘치고 배려 가득한 모습 때로는 인간적으로 넘어지는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모습, 그리고 그것들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비추며 우리는 참 많이도 친해졌다. 팬들끼리도 그리고 커피소년과도.

지난 2월 라이브가 열린 날부터 회식이 있는 날도, 시댁 모임이 있는 날도 방송에 참여하려 애썼던 나는 올해 총 부산, 울산, 서울, 경기, 한강, 제주도까지 부지런히도 쫓아다녔다. 30대가 되어 빠진 특정 가수를 향한 팬심은 십대 때와는 좀 달라졌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이 된 나는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가수인 덕에 팬레터도 꾸준히 보내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로 작은 선물들도 보냈다.

글씨 쓰는 걸 좋아해 커피소년의 노래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써서 가사집을 만들어 생일에 보내기도 했고, (선물을 받고 감동했다며 내 글씨를 칭찬해주기도 했다.) 상반기 카페투어 콘서트 때는 내가 일하는 카페를 내어주기도 했다. (사실 이건 내가 받은 최고의 수혜이기도 하다.) 힘내서 노래하라고 삼계탕도 대접하고, 좋아한다던 티라미수도 제일 맛있는 집에서 공수했다.

 올해 6월 울산에서 있었던 커피소년 카페투어 콘서트.

올해 6월 울산에서 있었던 커피소년 카페투어 콘서트. ⓒ 김태리


 커피소년 7주년 데뷔 기념 슈가크레프트.

커피소년 7주년 데뷔 기념 슈가크레프트. ⓒ 김태리


아이돌 팬클럽들이나 챙긴다는 '데뷔 기념일'을 챙겨 '슈가 크레프트'를 보내, 본인도 잊고 있던 데뷔 기념일을 떠올리게도 했다. 그리고 나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없이 발매되는 음원들과 가수들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기사를 많이 보고 싶은 건 팬의 입장에서 당연한 마음일 터. 바쁜 기자님들을 대신해 내가 직접 기사를 써보기로 했다.

여러 SNS를 운영해보기는 했지만 실제 기사화가 되는 과정에 시민기자로 참여하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오마이뉴스 기자님들과도 몇 차례 통화가 있었는데,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커피소년 팬이시죠?"라고 물으시기도 한다. 덕분에 시작된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 생활로 이후 '사는 이야기' 기사도 쓰게 했고, 정식기사로 채택돼 '오름' 단계에 오르기도 했다.

지방에 사는 삼십대 직장인이자 주부의 '팬질'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신랑의 이해와 협조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극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팬들에게 받은 감동을 돌려줄 줄 아는 커피소년을 나는 계속해서 응원하고 바라볼 것이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팬들에게 팬질 중에 하나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적극 추천해본다. 재미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2017년 한 해는 정말이지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새로운 만남에 흠뻑 젖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커피소년의 음악을 들으며 내년에는 더 행복해지기로 한다.

커피소년 로스팅뮤직 콘서트 버스킹 오마이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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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에 신이나서 부지런해지는 게으름쟁이 '미스태리'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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