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첫 경기 상대 팀은 홈 팀 일본이었다. 그녀들은 2011년 독일에서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우승, 2015년 캐나다에서 열린 여자월드컵 준우승에 빛나는 세계 정상급 팀이었기에 한국 여자 선수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수준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여자대표팀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 펠레 스코어 패배가 너무 아쉽지만 충분히 찬사를 들을 만한 경기력을 뽐냈다.

윤덕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이 8일 오후 6시 55분 일본 치바에 있는 소가 스포츠 파크에서 벌어진 2017 EAFF(동아시아 축구연맹) E-1 풋볼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여자부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2-3으로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평양의 기적'으로 얻은 자신감

이 대회가 동아시아 축구연맹에서 야심차게 새 이름(E-1 풋볼 챔피언십)을 내걸었지만 FIFA(국제축구연맹)의 A매치 데이에 치르지 않아서 해외파 주요 선수들을 데려올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 쪽에 상대적으로 많은 대표 선수들이 뛰고 있는 남자부보다 여자부 경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여자 월드컵은 2019년 프랑스에서 열린다. 그 아시아 지역 예선전을 겸한 AFC(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아시안컵이 2018년 4월부터 요르단에서 열리기 때문에 바로 이 대회가 여자 아시안컵 겸 월드컵 최종 예선 순위를 점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윤덕여호는 지난 4월 초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 대회에서 '평양의 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내며 세계 정상급 실력을 꾸준히 유지해온 북한과 1-1로 비겼다. 그 결과 골 득실차로 예선 1위 자리까지 올랐다. 북한의 공격형 미드필더 승향심의 선취골(45분)에 끌려가던 우리 여자선수들은 장슬기의 동점골(76분)을 기적처럼 합작해낸 것이다.

세계 정상급의 팀을 상대로 천금의 승점을 따냈다는 자신감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 기세가 이번 대회까지 이어지는 듯 보였다. 그 첫 상대가 북한에 이어 여자축구 세계 정상급 실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하고 있는 일본이었지만 윤덕여호는 4-2-3-1 포메이션을 내세우며 싸웠다.

주장 조소현이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중심 잡는 역할을 했고 잉글랜드 여자 프로축구 첼시 레이디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소연 대신 인천 현대제철을 WK리그 통합 5년 연속 우승 팀으로 올려놓은 이민아가 가운데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한채린의 그림같은 동점 골 보셨나요?

비를 맞으며 뛴 우리 선수들은 경기 시작 후 7분 만에 먼저 골을 내주며 흔들렸다. 마냐 미호의 왼쪽 크로스를 다나카 미나가 방향 바꾸기 헤더로 성공시킨 것이다. 유영아를 맨 앞에 세우고 공격 의지를 높이는 흐름이었기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윤덕여호는 그로부터 6분만에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오른쪽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흘러나온 공을 새내기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 한채린이 크로스하는 순간 일본 팀의 주장 우츠기 루미가 핸드 볼 반칙을 저지른 것이다. 이 절호의 기회를 주장 조소현이 침착하게 오른발로 차 넣었다.

이 1-1 점수판을 후반전 중반까지 유지한 윤덕여호는 선수 교체를 통해 대역전승을 노렸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수비형 미드필더 이영주 대신 이소담이 들어왔고 68분에는 강유미 대신 최유리가 들어온 것이다.

일본도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들여보낸 나카지마 에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70분,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미야케 시오리의 헤더 패스를 받은 나카지마 에미가 왼발 슛을 성공시켜 다시 2-1로 달아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팀에 어울릴 정도로 공격면에서 준비한 패턴이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골들이었다.

비를 맞고 무거워진 몸이 더욱 힘들어지는 흐름이었지만 우리 선수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10분 만에 두 번째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부터 마무리 동작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오른쪽 측면으로 공간을 넓힌 이민아가 과감한 크로스로 반대쪽을 겨냥했다. 공 끝이 살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궤적이었다. 이 공을 받은 주인공은 지난 10월 미국에서 열린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유일한 골을 터뜨렸던 새내기 미드필더 한채린이었다.

10월 21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과의 1차 평가전(한국 1-3 미국)에서 기막힌 왼발 중거리슛으로 A매치 데뷔 전-데뷔 골 주역으로 이름을 새긴 한채린이 이민아의 자로 잰 듯한 크로스를 받아 잡지도 않고 왼발 발리슛을 적중시킨 것이다. 한국 남자 축구 발리 슛의 장인 이동국이 봐도 극찬할 수밖에 없는 기막힌 동점골 순간이었다.

이제 겨우 A매치 세 번째 경기를 치르는 21살 대학생의 축구 실력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임팩트 순간이었다. 일본 골키퍼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오른쪽 구석으로 날아가 꽂힌 것이다. 이 골이 주는 인상은 이후 경기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일본 선수들은 83분에 3-2 펠레 스코어 결승골을 터뜨리며 승리했지만 활짝 웃지 못했다. 자신들의 경기력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던 한국 여자축구가 실제로는 턱 밑까지 따라붙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의 경기력은 상대적으로 한계를 못 넘어서고 있는 남자대표팀에 비하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천대교 여자축구팀의 해체 소식이 갑작스럽게 날아온 WK리그에 아직도 그늘이 걷히지 않았지만 2018 AFC 여자 아시안컵과 2019 여자 월드컵을 통해 소중한 꽃을 다시 피울 수 있는 기회가 보인다.

윤덕여호는 오는 11일 같은 장소에서 또 하나의 강 팀 북한을 상대하게 된다. 지난 4월에 이룬 평양의 기적이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히 보여줄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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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7 E-1 풋볼 챔피언십 여자부 결과(8일 오후 6시 55분, 소가 스포츠 파크-치바)

★ 한국 2-3 일본 [득점 : 조소현(14분,PK), 한채린(80분,도움-이민아) / 다나카 미나(7분,도움-마냐 미호), 나카지마 에미(70분,도움-미야케 시오리), 이와부치 마나(83분)]

◎ 한국 선수들
FW : 유영아(75분↔정설빈)
AMF : 한채린, 이민아, 강유미(68분↔최유리)
DMF : 이영주(46분↔이소담), 조소현
DF : 이은미, 신담영, 김도연, 장슬기
GK : 김정미

◇ 여자부 현재 순위표
1 북한 3점 1승 2득점 0실점 +2
2 일본 3점 1승 3득점 2실점 +1
3 한국 0점 1패 2득점 3실점 -1
4 중국 0점 1패 0득점 2실점 -2
축구 여자축구 윤덕여 동아시안컵 한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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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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