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이 유아 감독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 포스터

이시이 유아 감독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 포스터 ⓒ 서울독립영화제


낮에는 간호사로 밤에는 바의 호스티스로 일하는 미카(사토 료 분)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지극히 염세적이다. 죽지 못해 마지 못해 살아간다고 해야할까.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카는 스스로 고독을 자처하는 여자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신지(이케마츠 소스케 분)는 유독 말이 많다.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신지는 종종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전조에 시달린다. 그런 신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동료(마츠다 류헤이 분)는 신지가 걱정하는 불길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 한다. 그런데 그 동료가 갑자기 죽는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다는 신지의 예언력(?)이 통하는 순간이다.

 이시이 유야 감독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 한 장면

이시이 유야 감독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 한 장면 ⓒ 서울독립영화제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사이카 타이의 동명 시집을 원작으로 한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멜랑콜리 그 자체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카와 신지 모두 삶의 희망을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래도 신지는 불안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나름 삶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찾고자 하지만, 미카는 사소한 기적조차 믿지 않으려고 한다. 미카에게 사랑이란 수많은 사람들을 천천히 죽여온 쓸모없는 감정이다. 사람이란 어차피 죽는 것. 세상에 대한 허무로 가득한 미카가 유일하게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외로움이다.

전작 <행복한 사전>(2013), <이별까지 7일>(2014) 개봉 덕분에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존재가 된 이시이 유야 감독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가 포착한 도쿄 하늘은 유독 짙고 푸르다. 도쿄 야경이 유독 푸른 것은 한밤중에도 빛나는 거리의 네온사인과 화려한 조명 때문이다.

비단 도쿄 뿐만인가. 서울, 뉴욕, 상하이, 런던 등 전세계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서울도 그러하듯이 도쿄의 사람들은 마천루를 가로 지르며 늘 바삐 살아간다. 밤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 한다. 휘황찬란한 야경에 가려진 도쿄의 그늘에는 불안감과 우울의 감정이 공존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신지와 같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은 일종의 사치다. 그저 오늘 하루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이시이 유야 감독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 한 장면

이시이 유야 감독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 한 장면 ⓒ 서울독립영화제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여자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던 남자가 우연히 만났다. 아이러니 하게도 미카와 신지가 가까워진 계기는 미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신지 동료의 돌연사였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연을 맺게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쉽게 열어보이지 못한다. 사랑을 믿지 않는 미카는 자꾸 신지를 밀어내려고 하고, 평소 말이 너무 많은 신지는 미카 앞에서 유독 말수가 적어진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라 어차피 헤어질 것인데 서로를 좋아하는 행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미카와 신지는 이렇게 각자의 마음을 단념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미카와 신지는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온통 짙은 푸른색으로만 감돌던 하늘도 조금씩 따뜻한 빛을 비추기 시작한다. 어렵게 사랑을 시작했지만 두 사람의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도쿄의 하늘은 여전히 우울하고 불안해 보이고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도심 빽빽이 들어선 고층건물들은 종종 현기증을 유발한다.

사랑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다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안겨준다. 이것만으로도 사랑은 해볼 만한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도시의 외로움과 불안한 감정을 이겨내는 데 있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응원을 받는 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아직 살만 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희망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과 주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다. 희망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관객들과 첫 만남을 가진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지난 8일 폐막한 43회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상영된 바 있다. 부디 이시이 유야 감독의 전작 <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처럼 극장 개봉을 통해 다시 한번 관객들과 만날 날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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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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