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에서는 우승할 수 있는 '적기'가 따로 있다. KBO리그에서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했던 삼성 라이온즈나 NBA에서 7년 연속 파이널 무대를 밟았던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기량이 무르익은 베테랑과 패기 넘치는 신예들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발하는 시즌은 결코 자주 오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2002년이 대표적이다. 그 시절 샌프란시스코에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중심타선으로 꼽히던 배리 본즈와 제프 켄트를 비롯해 리반 에르난데스, 제이슨 슈미트, 롭 넨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2002년 월드시리즈에서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에인절스)에게 3승4패로 패하며 4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 도전이 좌절됐고 2003년을 끝으로 6년이라는 꽤 긴 암흑기를 보냈다.

1990년대 농구팬들에겐 그저 '도미니크 윌킨스의 원맨팀'이었던 NBA의 애틀랜타 호크스도 지난 시즌까지 10년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이적한 1968년 이후 최고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애틀랜타는 이 기간 동안 파이널 우승에 실패했고 이번 시즌 주력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나면서 혹독한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애틀랜타식 시스템 농구의 화룡점정을 찍지 못한 에이스의 부재

 2013년에 부임한 부덴홀저 감독은 2014-2015 시즌 애틀랜타를 구단 역대 최고 성적으로 이끌었다.

2013년에 부임한 부덴홀저 감독은 2014-2015 시즌 애틀랜타를 구단 역대 최고 성적으로 이끌었다. ⓒ NBA.com


애틀랜타는 디켐베 무톰보, 스티브 스미스, 무키 블레이락 같은 추억의 이름들이 활약하던 1998-1999 시즌을 마지막으로 8년 동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렇게 암흑기를 겪던 애틀랜타는 조 존슨(유타 재즈), 알 호포드(보스턴 셀틱스), 조쉬 스미스 등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재정비하며 2007-2008 시즌 플레이오프 무대에 다시 초대됐다.

하지만 애틀랜타의 본격적인 황금기가 시작된 것은 샌 안토니오 스퍼스의 코치로 재직했던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이 부임한 2013년부터였다. 한 시즌 동안 선수단의 장단점을 파악한 부덴홀저 감독은 2014-2015 시즌부터 그렉 포포비치 감독에게 배운 '시스템 농구'를 애틀랜타 농구에 접목하며 NBA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2015년 1월에는 19경기에서 전승을 거뒀는데, 재미 있는 사실은 월간 전승을 거둘 만큼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도 팀 내에 눈에 띄는 슈퍼스타가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NBA사무국에서는 이례적으로 2015년 1월 동부 컨퍼런스의 월간 MVP로 특정 선수가 아닌 '팀 애틀랜타'를 선정하기도 했다. 애틀랜타는 2015년 올스타전에서도 주전 5명 중에 더마레 브루클린 네츠)을 제외한 4명이 감독추천 선수로 출전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구단 역대 최고 성적(60승22패)을 거두며 동부 컨퍼런스 1위를 차지한 애틀랜타도 2015년 플레이오프에서 우승은커녕 파이널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애틀랜타는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케빈 러브가 부상으로 결장하고 카이리 어빙(보스턴)이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한 경기도 따내지 못하고 내리 4연패를 당했다.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부덴홀저 감독의 시스템 농구가 '정규 시즌용'이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덴홀저 감독은 2015-2016 시즌에도 농구팬들의 의심을 뒤집는데 실패했다. 동부 컨퍼런스 4번시드를 얻은 애틀랜타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보스턴을 4승2패로 꺾었지만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재회한 클리블랜드에게 또 다시 4연패로 무너지고 말았다. 애틀랜타는 5명의 선수가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꾸준한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역시 플레이오프에서 필요했던 것은 경기당 25점 내외의 득점을 책임질 수 있는 확실한 '에이스'의 존재였다.

주전 전원 이적하며 NBA 30개 구단 중 29위, 동네북 전락

 이번 시즌 애틀랜타에서 얼굴값을 하는 선수는 '우주 미남' 슈뢰더가 유일하다.

이번 시즌 애틀랜타에서 얼굴값을 하는 선수는 '우주 미남' 슈뢰더가 유일하다. ⓒ NBA.com


2014-2015 시즌이 끝나고 캐롤이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한 애틀랜타는 2015-2016 시즌이 끝난 후에도 주전 센터 호포드가 보스턴으로 떠났다. 대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센터 드와이트 하워드(샬럿 호네츠)를 영입하고 트레이드를 통해 주전 포인트 가드 제프 티그(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내보냈다. 핵심 식스맨으로 활약하며 가능성을 보인 '우주 미남' 데니스 슈뢰더에게 주전으로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하지만 팀원들간의 유기적인 호흡과 조직력이 최우선시되는 시스템 농구에서 선수들의 잦은 이동은 결코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수 없다. 2014-2015 시즌 .732였던 승률이 2년 만에 .524(43승39패)로 떨어진 애틀랜타는 2017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워싱턴 위저즈에게 2승4패로 패하며 조기 탈락했다(반면에 시즌 중반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슈터 카일 코버는 데뷔 후 처음으로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올스타 포워드 폴 밀샙(덴버 너기츠)마저 애틀랜타를 떠났다. 2014-2015 시즌 당시 60승을 따냈던 주전 라인업이 완전히 붕괴된 애틀랜타는, 이번 시즌 24경기에서 단 5승(19패)에 그치며 팀 전력을 지키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애틀랜타는 NBA 30개 구단 중 29위에 머물며 대놓고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있는 피닉스 선즈(9승17패)나 브루클린(9승14패)보다 낮은 승률(.208)을 기록 중이다.

7일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에서도 애틀랜타는 연장 접전 끝에 106-110으로 허무한 역전패를 당했다. 팀의 에이스 슈뢰더가 26득점 5리바운드 7어시스트로 맹활약을 펼쳤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지원 사격이 너무 약했다. 특히 애틀랜타는 4쿼터 후반 무수히 많은 슛을 허공에 날리다가 6초를 남기고 올랜도의 D.J. 어거스틴에게 동점 3점슛을 허용했다. 이제 애틀랜타는 모든 팀이 기다리는 승리 자판기가 되고 말았다.

'시스템 농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샌 안토니오는 이번 시즌 에이스 카와이 레너드가 오른쪽 대퇴부 사두근 부상으로 아직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시즌 여전히 17승8패로 서부 컨퍼런스 3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역시 아무리 잘 만든 소위 'A급' 모조품도 원조 명품의 품격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번 시즌 애틀랜타의 몰락을 보며 새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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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애틀랜타 호크스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 데니스 슈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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