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사랑의 온도>의 배우 이초희.

ⓒ 권우성


최근 종영한 <사랑의 온도> 속 황보경은 현수(서현진 분)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친구다. 사투리 섞인 독특한 말투로 현수에게 때로는 직언을, 때로는 응원을 보내는 경은 적은 분량에도 특유의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드는 데 성공했다.

여러 시청자들이 '연기 잘 하는 신인이 등장했구나' 했겠지만, 경을 연기한 이는 9년 차 배우 이초희다. 최근 2~3년 사이 출연한 작품만 해도 <후아유-학교 2015> <육룡이 나르샤> <운빨로맨스> 등 히트 드라마에 두루 출연한 배우지만, 어쩐지 아직은 이름도 얼굴도 낯설기만 배우. 하지만 이초희는 <사랑의 온도> 황보경을 만난 이후 데뷔 이래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사랑스러운 경을 더 사랑스럽게 연기한 이초희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만났다. 이초희는 뜨거운 관심에 "얼떨떨하다"고 했다. 자신은 그저 "경이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면서.

닮은 듯 다른 황보경과 이초희

 SBS 드라마 <사랑의 온도>의 배우 이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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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경은 사투리인 듯 사투리 아닌 독특한 말투로 화제를 모았다. 이는 작가나 감독의 설정이 아닌, 이초희가 황보경에게 부여한 '디테일'이었다.

"경이는 '지방에서 올라와 보조 작가로 고군분투하는 아이'라는 설정의 캐릭터였어요. 배우들은 그 짧은 설명을 기반으로 캐릭터를 분석하거든요. 고민하다 든 생각이 '얘가 사투리를 고쳤을까?'였어요. 제가 해석한 경이는 사투리를 고치고 싶어하지만, 못 고친 아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완벽한 사투리도, 완벽한 서울말도 아닌 말투가 나온 거예요."

이초희는 부산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10살 때 서울로 이사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지역 사투리보다는 더 익숙하다 보니, 경이의 고향을 경상도로 설정했다. 이처럼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녹여낼 수밖에 없다.

이초희와 황보경의 공통점은 고향만이 아니다. 극 중 황보경은 드라마 작가를 꿈꾸지만 아직 잘 풀리지 않은 상태다. 극 중 경은 드라마 작가인 현수의 보조 작가다. 늘 밝고 쾌활한 경이도, 자꾸만 떨어지는 드라마 작가 공모전 이야기를 할 때면 이따금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지만,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듯한 오늘을, 마냥 행복하게만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는 꾸준히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지만, 아직은 배우로서 강한 존재감을 남기지 못한 이초희의 상황과도 닮았다. 아니,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많은 이들의 상황과 닮았다.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일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죠. 하지만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맡았잖아요.

사실 극 중 경이도 현실에 연연하진 않잖아요. 가끔 발끈할 때는 있지만, 이내 '9년 10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그렇게 오래 한 거 아니다!' 하고 긍정적으로 웃어넘기죠. 그런 부분이 저와 비슷해요. 일이 잘 안 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 배우를 꿈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저는 그래도 이렇게 기회를 얻었잖아요. 사랑도 받았고요. 경이랑은 다른 것 같아요."

10년 무명, '막연한 믿음'으로 버텼다  

 SBS 드라마 <사랑의 온도>의 배우 이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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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찾은 연기학원, 그곳에서 경험한 네 번의 보조출연. 이초희는 그때 연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엔 그저 학교 안 가는 게 좋았고, 그다음엔 TV에 나오는 게 좋았다. 힘든 줄도 모르고 그저 재밌게만 느껴졌다고. 내성적이고 말수도 없는 아이였는데, 연기할 때만큼은 아니었단다.

"연기를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연기하는 나는 내가 아니라는 생각에, 평상시엔 할 수 없던 말과 행동도 할 수 있게 됐고요. 그게 재밌었어요. 

직업을 선택할 때 행복하게 돈 벌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했어요. 연기밖에 없더라고요. 만약 어릴 때 연기를 접하지 않았다면 지금 연기를 하고 있진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연기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을걸요?" 

하지만 무명으로 보낸 10년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도 같았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경쟁력 있는 배우일까?' 회의감이 끊임없이 밀려오던 시기도 있었다. 연기가 뭐라고 스스로 자학하며, 아픈 부분 꼬집으며 일을 할까, 싶어 포기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막상 연기를 빼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은 건 막연한 믿음이었다.

"100세 시대잖아요.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되겠지, 뭐 이런 마음이었어요. '힘들어', '다 끝났어' 하는 일도 지나고 나면 결국 다 이겨내잖아요. 이 시기를 보내고 나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막연한 믿음이었죠. 그냥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밀고 온 것 같아요. 주위가 복잡해도 내가 안 흔들리면 스스로 설득이 되더라고요." 

"서현진을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SBS 드라마 <사랑의 온도>의 배우 이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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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안에서 현수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경이는 현수에 대한 믿음과 응원을 보냈고, 경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현수는 경이의 기댈 언덕이 되어 줬다. 이초희는 드라마 현장에서 자신과 서현진의 관계도 비슷했다고 했다.

"현진 언니랑은 정말정말 좋았어요. 많이 배웠고, 제가 많이 따랐어요. 언니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고요. 저희의 이런 관계가 현수와 경이를 표현할 때도 저절로 담겼던 것 같아요. 

언니를 보면서 배우가 연기만 잘 한다고 주인공 되고 사랑받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항상 내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왔어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보인다고 믿거든요. 그런 면에서 현진 언니는 '저런 사람을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현장에서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었고, 모든 스태프 이름을 다 외워서 챙겨요. 세심함이 놀라울 정도였죠. 연기 잘 하는 배우들 많잖아요. 하지만 언니에겐 연기는 물론이고, 그 이상이 있더라고요." 

이초희는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강점으로 '외모'를 꼽았다. 자신의 외모를 "아주 예쁘지도 않고, 개성 넘치는 얼굴도 아닌, 화려하지 않다"고 평한 그는, "수더분하게 어떤 캐릭터와도 잘 붙을 수 있는 외모"라고 말했다. 어떤 특정 이미지로 각인될 것이 없는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든다고. 그래서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저 배우 잘한다' 정도의 각인만 남기고 싶을 뿐, 어떤 특정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톱이 되고 싶고, 이름을 떨치고 싶고... 그런 욕심은 없어요. 그저 10년 뒤에도 연기하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때도 내가 좋아서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치지 않고 일하려면 제가 좋고 행복해야 하니까요."   

 SBS 드라마 <사랑의 온도>의 배우 이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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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도 황보경 이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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