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 메인 포스터.

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 메인 포스터.ⓒ 20세기폭스코리아


01.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 역)는 세계적인 명탐정이다. 맡은 사건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의뢰가 들어올 정도로. 사건의 배경이 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오르게 된 것도 갑자기 맡게 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런던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던 찰나, 라쳇(조니 뎁 역)이라는 인물이 그를 찾아온다. 자신이 살해 위협을 받고 있으니 지켜달라고 말이다. 포와로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갑작스레 일어난 눈사태로 기차가 운행을 멈춘 사이 라쳇은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하고 만다. 기차에 타고 있던 인물들 가운데 용의자는 모두 12명. 강박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일에 집착하기에 정의의 균형이 무너진 살인 사건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포와로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02.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미스터리의 거장 애거사 크리스티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34년 출간한 이 책은 그녀가 실제로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여행을 했던 시기의 기억과 1932년 미국 장교 찰스 린더버그의 아들이 납치 후 살해당했던 사건을 교합해 저술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이미 영화화된 적이 있다. 1874년 시드니 루멧 감독은 숀 코너리, 로렌 바콜, 잉그리드 버그먼 등 당대의 톱스타들을 한데 모아 이 작품을 영화화했고, 모든 캐릭터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며 높은 평가와 흥행을 동시에 얻어냈다. 이후에는 영국의 ITV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포와로>라는 타이틀로 드라마를 제작했고, 2015년에는 일본의 후지TV가 개국 55주년을 기념하여 일본식 스타일로 재해석한 동명의 드라마를 제작했다. 원래 애거사 크리스티는 다른 방식으로 소설이 재해석되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아 하여 자신의 작품들이 다른 매체로 옮겨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번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그녀의 작품에 대한 모든 저작권을 관리하는 애거사 크리스티 리미티드를(애거사 크리스티는 1976년 작고했다) 5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설득하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균형이라는 단어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포와로.

균형이라는 단어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포와로.ⓒ 20세기폭스코리아


03.

영화는 시작과 함께 최소한의 설명으로 에르큘 포와로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성물 도난 사건을 활용한다. 여기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마주하는 관객들에게는 포와로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 아주 심플하게 설명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 등장하는 에르큘 포와로라는 인물은 그동안 다른 추리물에서 봐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다. 직접 현장을 수사하고 발로 뛰어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상황과 제한된 정보를 통해 머릿속으로 추론하고 알리바이들을 제거해 가는 방식.

앞으로 이 영화의 추리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암시한다. 한편으로는 포와로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원하는 높이에 삶은 달걀의 크기를 맞추기 위해 애써 뛰어다니는 아이와 노심초사하는 주방장, 사건 현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밟은 오물을 닦아내기는커녕 오히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대쪽 구두에도 똑같이 묻히는 모습과 같은 것들 말이다. 삶의 모든 순간에 균형에 대한 강박증을 드러내고 있음이 이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04.

기차 안에서 죽임을 당한 라쳇의 사건을 포와로가 (정식으로 의뢰를 받은 사건이 아님에도) 파헤치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짐승보다 나아야 합니다.' 자신의 강박으로 인해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이유 이면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상황을 해결하고자 할 경우, 비논리적인 이유로 누군가 죗값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담겨 있다. 바로 앞서 일어난 성물 도난 사건에서도 벌어진 일이었다. 여기에는 범인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논외가 되는 식의 직업이나 신분, 인종에 의한 결론. 진실이 아니라 단순히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한 희생자를 색출하기 위한 비이성적 판결에 몰두할 가능성이 모두 포함된다. 더구나 지금 열차 안에서 용의 선상에 올라있는 인물들 가운데는 흑인은 물론, 집사와 하녀 등의 상대적인 사회적 약자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물론 포와로 자신의 실력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내포된 말이기도 하다.

05.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암스트롱이라는 인물과 관련이 있다. 문제의 실마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모두가 그에게 협조하는 듯 보이지만 각자의 알리바이를 증거로 거짓을 말한다.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의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되는데, 앞서 언급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라는 캐릭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추리 형식이 끊임없이 활용된다. 다만, 용의자의 국적에 따라 대사나 질의 형식이 바뀌고 이에 대한 용의자들의 다양한 대응은 원작 소설의 백미였으나 이번 작품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아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 대신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열차 안에서만 이루어지던 심문을 다양한 장소에서 발생시킴으로써 단조로움을 덜어내고자 하는데, 역시 최근 다른 미스터리 작품들이 역동적인 장면들을 활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극이 주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74년 작품은 원작의 표현에 따라 소설 속 다양한 표현들이 잘 그려지고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비교해 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다.

 드라마로 전환되는 시점부터 영화는 어떤 묵직함을 남긴다.

드라마로 전환되는 시점부터 영화는 어떤 묵직함을 남긴다.ⓒ 20세기폭스코리아


06.

아무래도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후반부에서 미스터리가 드라마로 바뀌는 순간이다. 용의자 모두와 대면을 마치고 사건을 해결한 포와로. 영화는 이 지점을 기점으로 범인이 왜 그런 행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지, 죽임을 당한 라쳇과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스릴러와 추리 작품들은 어떤 결과를 도출해내고 그를 뒤집기 위한 반전으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데 치중한다. 그러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이와 상반된다. 물론 전체 분량으로 따지자면 그리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이 짧은 드라마는 의외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건을 종결시킬 희생자를 찾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일이라는 것.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그다음이라는 것이다.

07.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원작을 좋아하는 팬들은 하나의 작품이 다른 매체로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원작에서 느낀 감정들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감독의 시선으로 재해석되고 있지만, 그 뼈대만큼은 훼손되지 않은 채 다양한 매력을 만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번 작품의 중심에는 감독이자 주연 배우였던 케네스 브래너라는 인물이 있었다. 포와로의 멋진 콧수염만큼이나 그의 다재다능한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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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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