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파문으로 러시아의 평창행이 막히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일부 종목의 판도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6일 오전(한국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러시아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불허했다. 다만 도핑 검사를 문제없이 통과한 러시아 선수들에 한해서만 개인 자격으로 출전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러시아는 캐나다, 독일, 노르웨이 등과 함께 '동계스포츠 5강'으로 군림하는 국가다. 특히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 썰매 종목 등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동계올림픽 꽃에 해당하는 피겨와 아이스하키 종목에서 특히 강해 평창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본 피겨 1인자 미야하라 사토코

일본 피겨 1인자 미야하라 사토코 ⓒ 국제빙상연맹(ISU)



러시아 빠진 여자피겨, 일본-캐나다 호재

러시아는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의 독주를 달리고 있었다. 평창을 코 앞에 둔 현재도 러시아의 단연 1강이었다. 세계랭킹 1위이자 현재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가 정상에 있다. 여기에 올 시즌 시니어로 데뷔해 그랑프리 두 개 대회를 모두 우승으로 장식했던 알리나 자기토바,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마리아 소츠코바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러시아는 5명가량의 선수들을 꾸준히 그랑프리에 출전시켜 다수의 메달을 휩쓸었다.

오는 7일부터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파이널에도 여자싱글 부문에 러시아 선수는 6명 가운데 3명이었다. 이 가운데 메드베데바가 부상과 러시아의 평창행을 위해 IOC에 방문하고자 기권하면서 두 명으로 줄기도 했다.

그런데 올림픽을 앞두고 이들이 모두 빠지게 되면서 여자피겨는 그야말로 '혼돈의 장'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던 일본과 캐나다가 호재를 부르고 있다. 일본은 지난 1년간 부상으로 신음하던 1인자 미야하라 사토코가 복귀했다. 그는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메드베데바 대신 그랑프리 파이널에 나서게 됐다.

여기에 올 시즌 프로그램 호평을 받으며 미야하라와 함께 파이널에 진출한 히구치 와카바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프리스케이팅에서 007 주제가인 '스카이폴'에 맞춰 연기를 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발표할 당시 "우상인 김연아의 연기를 참고하기도 했다"고 밝혀 눈길을 끈 바 있다. 히구치는 두 차례 그랑프리를 모두 2위로 장식했다.

지난 2월 강릉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던 마이 미하라도 강력한 평창행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자이자 일본에서 제2의 아사다 마오로 주목받는 혼다 마린도 평창을 정조준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세계 피겨 가운데 유망주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창에 올 수 있는 여자피겨 선수는 단 2명. 올 시즌 그랑프리에서는 미야하라와 히구치가 조금 앞선다는 평가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전일본선수권 경기까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핀란드에서 열린 2017 세계 피겨선수권 대회 여자싱글 시상식. 왼쪽부터 케이틀린 오스먼드,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가브리엘 데일먼 순이다.

지난 3월 핀란드에서 열린 2017 세계 피겨선수권 대회 여자싱글 시상식. 왼쪽부터 케이틀린 오스먼드,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가브리엘 데일먼 순이다. ⓒ 국제빙상연맹(ISU)


캐나다 역시 만만치 않다. 본래 캐나다 역시 러시아, 일본, 미국 등과 함께 피겨 강국으로 꼽히는데 러시아의 상승세로 한 동안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케이틀린 오스먼드, 가브리엘 데일먼이 나란히 은, 동메달을 차지하면서 평창을 앞두고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주목받는 선수는 케이틀린 오스먼드다. 그는 지난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피겨여왕' 김연아(27)와 함께 시상대에 섰던 조애니 로셰트의 뒤를 잇는 선수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2015년 부상으로 선수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를 딛고 지난 시즌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특히 쇼트프로그램 '파리의 하늘 아래서'는 샹송에 맞춘 인상적인 연기로 큰 호평을 받아 이번 올림픽 시즌에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점프 기복이 다소 심한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특히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가 잦은편이라 쇼트프로그램에서 우위를 점하고도 뒤처지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월 강릉 4대륙선수권에서도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지만, 쇼트와 프리에서 연거푸 실수를 범해 4위에 그치고 말았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싱글 시상식 장면. 왼쪽부터 김연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카롤리나 코스트너 순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싱글 시상식 장면. 왼쪽부터 김연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카롤리나 코스트너 순이다. ⓒ 소치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백전노장' 코스트너까지 가세

현재 여자피겨의 대부분 김연아 이후의 선수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노장 선수가 한 명있다. 바로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다. 그는 1987년 생으로 한국 나이로 31살이다. 그의 세계선수권 출전경력만 10년이 넘는 것을 보더라도 얼마나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김연아와 함께 시상대에 함께 섰던 인물로 낯이 익은 편이다.

소치 올림픽 당시 코스트너는 이미 세 번째 올림픽이었다. 앞서 토리노와 밴쿠버 두 차례 올림픽에서 입상에 실패했던 그는 삼세번째 도전만에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은퇴할 것이라 예상했다. 더욱이 그의 전 남자친구인 경보 선수 알렉스 슈바처가 도핑 문제를 일으켰고, 코스트너도 결국 자국의 올림픽위원회로부터 1년 4개월 자격정지를 받아 사실상 선수생활은 끝났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징계가 풀린 후 2016년 초 빙판에 복귀했고 지난시즌부터 모든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올 시즌은 더욱 상승세다. 두 차례 그랑프리에서 모두 은메달을 차지해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진출했다. 그는 앞서 밴쿠버와 소치 올림픽 시즌에는 모두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는데, 서른이 넘은 현재 파이널에 진출해 더욱 눈길을 끈다.

10살 가량 차이가 나는 선수들과 경쟁하는 무대에서 아직까지 살아남고 시상대에 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표현력에서 여전히 우월한 모습을 보여줘 구성점수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기술에 있어서는 난이도가 많이 낮은 탓에 밀리는 양상이 크다. 또한 매 대회마다 낮은 기술점에 비해 높은 구성점을 받고 있어 비판 여론이 있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이처럼 러시아가 빠지게 되면서 피겨 여자싱글의 판도는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양상이다. 당장 이번주 열리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판세를 점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의 기량이 비슷하다는 점을 꼽는다면 역시 우위를 점치긴 어려울 전망이다.

또한 아직 러시아 선수들이 평창을 보이콧 할 것인지 아니면 개인자격으로라도 참가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기에, 만약 개인자격으로 오게 될 경우 여전히 러시아 선수들의 절대 우세가 예상된다. 만약 러시아 여자피겨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할 경우, 피겨 시상식에는 러시아 국가가 아닌 올림픽 찬가가 울려 퍼지는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탄생하게 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러시아불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