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와 마녀의 꽃> 영화 포스터

▲ <메리와 마녀의 꽃> 영화 포스터 ⓒ CJ E&M 영화부문


도시에서 지내다 시골의 이모할머니 집에서 여름 방학의 마지막을 보내는 메리(스기사키 하나 목소리). "안개 낀 날엔 숲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피터(카미키 류노스케 목소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고양이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 메리는 7년에 한 번만 피운다는 꽃 '야간비행'을 발견한다. '야간비행' 덕분에 마법을 얻은 메리는 빗자루를 타고 낯선 세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메리는 마법 학교 엔돌 대학의 교장 멈블추크(아마미 유키 목소리)와 괴짜 마법 과학자 닥터 디(코히타나 후미요 목소리)를 만난다.

어떤 정보도 없이 <메리와 마녀의 꽃>의 포스터나 예고편을 접한다면 보통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이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메리와 마녀의 꽃>은 지브리의 신작은 아니지만, 지브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작품이다. 사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의 흥행 실패 이후 경영 악화로 해체 소문이 돌던 스튜디오 지브리는 2014년 6월 주주총회에서 앞으로 신작 제작을 중단하고 저작권 관리만 하겠다고 공식 발표한다(*2017년 12월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영화 제작을 재개한다고 선언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사는가>와 미야자키 고로의 CG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고 있음을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메리와 마녀의 꽃> 영화의 한 장면

▲ <메리와 마녀의 꽃> 영화의 한 장면 ⓒ CJ E&M 영화부문


<메리와 마녀의 꽃>은 2015년 <추억의 마니>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니시무라 요시아키가 설립한 '스튜디오 포녹'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메가폰은 <마루 밑 아리에티><추억의 마니>를 연출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이 잡았다.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근무한 크리에이터와 스태프들이 대거 합류했다.

크로아티아어로 0시를 뜻하는 '포녹'에서 유래한 스튜디오 포녹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브리 정신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애니메이션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각오인 셈이다.

<메리와 마녀의 꽃>은 메리 스튜어트가 1971년 발표한 아동소설 < The Little Broomstick >(국내에선 2017년 11월 <메리와 마녀의 꽃>으로 문학수첩 리틀북에서 출간)을 원작으로 삼는다. 기본적인 인물과 이야기는 소설에서 가져왔다. 그 외에도 <메리와 마녀의 꽃>엔 여러 작품에 받은 영향이 녹아있다.

동일본 대지진 떠올리게 한 장면, 일본의 현주소 반영한 작품

<메리와 마녀의 꽃> 영화의 한 장면

▲ <메리와 마녀의 꽃> 영화의 한 장면 ⓒ CJ E&M 영화부문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기이한 세계로 간 메리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를 연상케 하는 마법 학교에 간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엔돌 대학의 풍경, 수업을 받는 장면, 변신 마법 등이 낯설지 않다.

그림은 지브리의 것과 구별하기 어렵다. 몇몇 캐릭터와 배경, 일부 설정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하울의 움직이는 성><천공의 섬 라퓨타><바람계곡의 나우시카><마녀 배달부 키키>를 빼닮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특징인 비행 장면과 물과 숲의 이미지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좋은 의미론 지브리 DNA를 계승하고 다양한 작품을 융합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안 좋은 시각으로 평가한다면 거의 모든 면에서 창의성이 떨어진다.

니시무라 요시아키 프로듀서는 "지브리에서는 <마녀 배달부 키키>로 이미 마녀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메리와 마녀의 꽃>은 지브리를 벗어났기에 가능했던 선택이다. 소재의 폭과 유연성이 커졌다는 말이다. 지브리의 작품보다 서사는 가벼워졌고 선악 관계는 뚜렷해졌다. 여성을 수동적이거나 의존적으로 다루지 않고 남성과 대등한 관계로 묘사한 점에선 시대 흐름을 적극 반영했음이 엿보인다.

성장, 용기, 희망을 다루는 주제는 지브리와 일맥상통한다. 극 중에서 메리는 실수가 잦고, 빨강머리를 콤플렉스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메리는 마법 세계로 가서 1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천재로 주목받는다. 바로 빨강머리 때문이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은 "메리의 긍정적 에너지와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한다.

<메리와 마녀의 꽃> 영화의 한 장면

▲ <메리와 마녀의 꽃> 영화의 한 장면 ⓒ CJ E&M 영화부문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 꽃 '야간비행'은 강한 마법을 가질 수 있는 매개체로 나온다. 야간비행의 힘을 빌린 메리는 강한 마녀로 변신한다. 그러나 메리는 야간비행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현재를 바꾸고 미래로 나아가는 인물로 변한다.

야갼비행을 재료로 최강의 마법을 꿈꾸는 멈블추크와 닥터 디는 힘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극 중에 나오는 대사, "이 세계엔 우리가 손대선 안 되는 힘이 있다"는 개발을 앞세우며 자연을 파괴한 인류, 과학만능주의를 맹신하는 오늘날에 경종을 울린다. 마지막에 보여주는 거대한 폭발 장면은 3.11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참사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은 민족주의가 심화하고 보수화가 강해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이 분다>에서 다이쇼 시대(1912~1926)에서 쇼와 시대(1926~1989)로 넘어가는 시기에 향수를 드러내고 공동체가 일부 정치인과 군인 때문에 파괴되었다는 태도를 보였다. 비슷한 분위기는 <이 세상의 한구석에>에서도 감지된다. 흥미로운 건 두 작품이 반전 영화란 정반대의 시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메리와 마녀의 꽃>은 과학과 마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은 기술과 인간의 조화를 상징한다. 분명 보편적인 교훈을 주는 내용으론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극 중에서 벌어진 사고는 마법 세계, 즉 인간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자들의 욕심이 부른 결과로 치부된다. 마치 일본이 겪는 문제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기보단 외부와 타자에게 애써 책임을 돌리려는 태도로 느껴진다. 어쩌면 이런 분열적인 시각 또한 일본의 현주소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메리와 마녀의 꽃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스기사키 하나 카미키 류노스케 니시무라 요시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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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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