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질수록 추억은 절실해진다. 흘러간 명화를 다시 스크린 위에서 만날 기회, 재개봉영화 상영이 가장 활발한 계절이 연말연초인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이어져 온 재개봉 영화 열풍이 비교적 잦아든 올해에도 가을을 지나며 적지 않은 수의 재개봉작이 개봉해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특별히 지난 11월엔 2017년 재개봉작 가운데 가장 흥행한 영화가 등장했다. 존 카니 감독의 출세작 <원스>가 바로 그 영화로, 모두 4만 명의 관객이 들어 2017년 다양성영화 흥행순위 47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재개봉영화 가운데 가장 흥행한 <500일의 썸머>가 모은 15만 명에 크게 못 미치는 기록이지만 재개봉영화 성공 기준점으로 불리는 1만 명 선은 훌쩍 뛰어넘었다.

전통적으로 겨울철엔 멜로영화나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에 많은 관객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스>를 비롯해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이프 온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클래식> 등 11월 재개봉작 상당수가 이를 겨냥한 작품이었다. 정통액션물로 적극적인 홍보가 이뤄진 <히트>엔 채 5000명의 관객도 들지 않았다.

오는 12월에도 재개봉작 여러 편이 관객과 만난다. 아래, 5편의 재개봉작을 소개한다.

[하나] <라라랜드>

라라랜드 재개봉 포스터

▲ 라라랜드 재개봉 포스터 ⓒ 판씨네마(주)


'낭만적인 음악영화라 하면 존 카니가 제일'이라는 공식을 여지없이 깨뜨린 다미엔 차젤의 <라라랜드>가 연타석 홈런을 노린다. 지난해 12월 개봉해 전 세계를 <라라랜드> 열풍에 빠뜨린 이 유명한 영화는 단 1년 만에 재개봉의 영예를 안게 됐다. 이미 몇몇 독립 극장에서 수개월의 장기상영을 통해 관객과 만나왔던 <라라랜드>가 멀티플렉스에서까지 재개봉을 확정 지으며 올해 가장 흥행한 재개봉작이 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라라랜드> 속 세계는 꿈과 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공간처럼 그려진다. 사랑만 있다면 중력을 무시한 채 하늘을 날고, 꿈과 열정이 있다면 모두가 끝내 성공하는 세계가 러닝타임 가운데 펼쳐진다. 감독 스스로 '이것은 환상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도입을 통과해 도착한 자리에는 시공간을 특정할 수 없는 소품이 한데 뒤엉키고 보랏빛 하늘이 와이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가리워진 길 가운데 끊임없이 흔들리는 청춘남녀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사랑과 열망으로 서로를 지지하며 갖은 역경을 뚫고 목적지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사랑과 성공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영화가 막을 내릴 때 이들은 처음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된다. 포상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미엔 차젤은 예쁜 조각이 든 스노우볼처럼 이들의 이야기를 유리벽으로 밀봉해 험난한 현실 가운데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맨다. 그가 그린 어여쁜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8일 극장으로 향하라.

[둘] <러브레터>

러브레터 재개봉 포스터

▲ 러브레터 재개봉 포스터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1990년대 일본을 대표한 감독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가 13일 재개봉한다. 제작된 지 4년 만인 1999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이래 2013년과 2016년 두 차례 재개봉한 이 영화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영화로 첫 손에 꼽히는 명작이다. "오겡끼 데스까~ 아따시와 오겡끼 데쓰(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명대사는 이후 여러 드라마와 광고 등에서 변주되며 영화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영화는 2년 전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여자 와타나베 히로코와 그녀의 약혼자와 동명이인이란 이유로 우연히 편지를 받게 된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우연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과 삶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히로코와 이츠키를 모두 연기해 독특한 감상을 자아낸다. 나카야마 미호는 이 영화로 일본 여러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이와이 슌지의 감상적인 연출에 더해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부드럽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음악과 설경이 빚어내는 영상이 좋다.

[셋] <위대한 탄생>

위대한 탄생 재개봉 포스터

▲ 위대한 탄생 재개봉 포스터 ⓒ 와이드 릴리즈(주)


최근 재개봉영화의 새 흐름을 일으키고 있는 기독교 관련 영화가 또 한편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술감독 출신으로 <트와일라잇>을 연출하며 명성을 쌓은 캐서린 하드윅의 2006년 작 <위대한 탄생>이 11년 만에 재개봉하는 것이다.

<위대한 탄생>은 요셉과 마리아가 헤롯왕의 압제를 이겨내고 예수를 낳기까지의 이야기로, 기독교에서 신으로 모시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다.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만남부터 동방박사의 예언과 예수 탄생으로 이어지는 유명한 서사가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에게 커다란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개봉한 여러 기독교 관련 재개봉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사실에 비춰 볼 때 <위대한 탄생>도 무시할 수 없는 재개봉작이 될 것으로 주목된다. 케이샤 캐슬 휴즈, 오스카 아이삭 등 재능 있는 젊은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14일 재개봉.

[넷] <러브 액츄얼리>

러브 엑츄얼리 재개봉 포스터

▲ 러브 엑츄얼리 재개봉 포스터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러브레터>에 이어 세 번째 재개봉을 맞는 12월 단골영화 <러브 액츄얼리>가 20일 재개봉한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각본가 출신으로 유명한 리처드 커티스의 첫 연출작으로,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연출에도 재능이 있음을 입증했다. 그는 이후 <락앤롤 보트> <어바웃 타임> <아히 카> 등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발표하며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러브 액츄얼리>는 한 영화 속에 여러 이야기가 다채롭게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여덟 커플의 이야기를 다뤘다. 한국에선 이 가운데 포르노 배우 커플의 이야기를 뺀 편집본으로 정식 개봉했다. 이 영화의 흥행대박으로 이후 한국은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가 여럿 제작되기도 했다.

극 중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마크(앤드루 링컨 분)가 스케치북을 통해 고백하는 장면은 이후 수많은 콘텐츠를 낳았다. 아마도 이 영화 이후 스케치북 판매량이 급증하지 않았을까.

[다섯]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포스터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포스터 ⓒ 글뫼


관객의 시간을 스틸하는 배우 겸 감독 벤 스틸러의 역작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개봉 4년 만에 관객과 다시 만날 기회를 얻게 됐다. '라이프를 보는 것은 세계를 보는 것'이란 말이 나올 만큼 큰 사랑을 받은 잡지 LIFE지의 폐간을 배경으로 일상에 찌든 한 남자가 모험을 통해 진정한 남성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낭만적으로 담아냈다.

인쇄된 지면에서 인터넷과 TV 중심으로 변화하는 대중문화 환경 속에서 쇠퇴를 거듭하다 2007년 4월 20일 자를 끝으로 71년 만에 폐간을 맞은 LIFE지의 실제 이야기를 변형해 변화를 강요하는 현대 자본주의 환경의 이면을 꼬집는다. 이와 함께 영화는 삶 가운데 자신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성장드라마를 통해 일상에 충실하다 도리어 중요한 것을 잃고마는 많은 현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27일부터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재개봉작을 소개합니다 러브 액츄얼리 러브레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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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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