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캐릭터 사용은 새롭지는 않은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창작 뮤지컬에서도 떠오르는 서사들이 많다. 특히 작가 서사 외에 '관념' 캐릭터가 등장하는 서사가 눈에 띈다. 이 시리즈는 작가와 관념 캐릭터를 활용하는 작품의 미덕과 나름의 아쉬움을 이야기하고자 기획됐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인에게 보내는 조선 최초의 '팬레터' 뮤지컬 <팬레터> 공연 사진 및 포스터. 재연 공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는 지난 2017년 11월 1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개막하여 오는 2월 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경성시대 순수문학 문인 모임 '칠인회'에서 일을 돕고 있는 세훈은, 평소 동경하던 해진 선생님에게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팬레터를 보낸다. 팬레터에 마음이 동한 해진은 히카루를 사랑하게 되고, 해진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세훈은 점점 편지 속 '히카루'를 연기하게 된다.

ⓒ 스토리피


성황리에 작년 초연 공연을 마치고 곧바로 돌아온 뮤지컬 <팬레터>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촉망받는 뮤지컬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팬레터>는 '재미없으면 이상할' 조합이다. 암울한 시대이지만, 작품 속에서 만났을 때 매력적인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요 인물은 모던 보이, 문인들이다. 창작하는 예술인의 서사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배우들의 캐스팅은 화려하고, 이 극의 연출은 대학로에서 믿고 보는 연출로 자리 잡은 김태형 연출이다. 성공은 어쩌면 예상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믿고 볼 조합 덕분일까. <팬레터>는 재밌고 잘 만든 뮤지컬로 많은 관객에게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잘 만든 작품이라 할지라도, 이런 작품들은 모두 과도기에 있다. 애초에 완벽한 작품이란 존재할 수 없으니까. 두 번째 공연 중인, 촉망받는 웰 메이드 창작 뮤지컬의 아쉬운 점들을 조금 토로해보고자 한다.

몇 가지 아쉬운 점들

문인에게 보내는 조선 최초의 '팬레터' 뮤지컬 <팬레터> 공연 사진 및 포스터. 재연 공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는 지난 2017년 11월 1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개막하여 오는 2월 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경성시대 순수문학 문인 모임 '칠인회'에서 일을 돕고 있는 세훈은, 평소 동경하던 해진 선생님에게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팬레터를 보낸다. 팬레터에 마음이 동한 해진은 히카루를 사랑하게 되고, 해진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세훈은 점점 편지 속 '히카루'를 연기하게 된다.

ⓒ 스토리피


우선 가장 큰 아쉬움은 이야기의 산만함이다. 종종 <팬레터>의 서사적 '구멍'에 대한 비판이 올라오곤 한다. 필자는 그 '구멍'의 원인이 아마 칠인회의 서사와 세훈-히카루-해진의 서사가 함께 공존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물론 경성 배경의 모던보이들, 문인들도 매력이 있지만 <팬레터>의 스토리가 보여주는 매력은 세훈-히카루-해진의 서사에서 더 크게 뿜어져 나온다.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와의 관계를 위해 그와 다른 작가들을 속이면서까지 환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세훈)와, 그 환상을 알면서도 기꺼이 속기를 택하는 이(해진) 그리고 그 환상적인 존재(히카루). 필명이자 그저 관념이었던 존재(히카루)가 주체(세훈)의 부름을 받고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니! 국내 공연계에 관념 캐릭터가 등장하는 서사는 많았지만, <팬레터>의 관념 캐릭터 '히카루'는 분명 남달랐다.

그런데 <팬레터>는 경성의 분위기를 살리고, 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데 1막의 방점을 찍었다. 1막이 극의 구성에서 발단, 인물 소개 그리고 약간의 전개를 보여준다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주제 의식은 칠인회와 그들의 문학, 왜 그들이 힘든 시대에 '순수 문학'을 하는지에 대한 변론이다. 영원불멸의 아름다움을 좇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도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를 뛰어넘을 무언가를 추구했다.

'시대가 시대인데...'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일제 강점기는 시대적으로 일본이라는 제국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대이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가 조선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던 시대다. 자본주의의 그림자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자본주의적 향락이 경성을 중심으로 꽃 피웠다. 동시에 식민지라는 비극이 공존했다. 그 당시 경성은 향락과 비극이 같이 있는 공간이었다.

'비극'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구인회를 모티브로 한 '칠인회' 아닌가. 구인회는 일본에 존재했던 모더니즘 단체 '십삼인회'를 본떠 만들었고, 칠인회는 여기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그 시대 경성에서 모던을 누리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좇았고, 그 아름다움이 후대에 읽히는 이들. 정말로 '순수' 문학을 한 이들. 그런데 칠인회가 '카프 형님들'이라 칭하고, '시대'나 '민족'을 우짖을 때, 칠인회의 정체성은 흔들린다. 지향점은 순수 문학인데, 그들이 문학을 하는 목적은 지나치게 참여 문학적이다.

일제 강점기의 문학은 일제라는 강렬함 때문에 늘 일본과 연루되어 해석된다. 오히려 이는 문학적 해석의 다양성을 앗아간다. 극 중 칠인회의 한 멤버도 말하지 않나, 참여 문학만을 하고 어떤 예술적 감정이 메마르게 되면 그 또한 수탈이라고. 소위 민족 운동적인 그들의 문학에 대해서, 후대의 독자이자 현대의 관객들은 이미 다 학습했다. 칠인회가 '민족'이나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고, 오롯이 그 문학과 아름다움만을 노래했다 해도, 관객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기존의 순수 문학인들을 '시대의 방관자'라고 이야기했던 비판에 대해 변명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전복하는 태도가 더 과감하지 않았을까.

문인에게 보내는 조선 최초의 '팬레터' 뮤지컬 <팬레터> 공연 사진 및 포스터. 재연 공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는 지난 2017년 11월 1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개막하여 오는 2월 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경성시대 순수문학 문인 모임 '칠인회'에서 일을 돕고 있는 세훈은, 평소 동경하던 해진 선생님에게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팬레터를 보낸다. 팬레터에 마음이 동한 해진은 히카루를 사랑하게 되고, 해진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세훈은 점점 편지 속 '히카루'를 연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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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칠인회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이 이야기가 '픽션'임을 알면서도 그들의 모티브가 된 구인회의 멤버들의 실제 이야기와 뮤지컬은 겹쳐 보인다. 극 중 끊임없이 '리마인드' 해주니까. 이윤은 '발광 어류'까지 이야기하는 걸 보면 완전히 이상이다. 그런데 이상은 그 당시에 한자로 먼저 시를 쓰고, 조선 총독부에서 인정받으며 건축사로 일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저건 이상화인데, 이상화는 순수 문학을 하다가 일제 강점기 말에 참여시로 작품 세계를 바꾼 인물이며, 저 시는 그 당시에 쓴 시이다. 김유정 모티프인 김해진? 극 중 혈서를 쓰잖아? 실제로 좋아하던 기생한테 혈서 쓰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데이트 폭력을 하던 사람이다.

물론 모티브가 된 인물과 픽션 속 인물이 반드시 같아야 한다는 건 창작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일이다. 아마 그 다른 지점을 두기 위해 굳이 김유정을 김해진으로, 이상을 이윤으로 변주를 줬을 것이다. 그 변주를 알기에, 굳이 실제 인물과 가상 인물의 연결고리가 극 중 많이 등장할수록 뮤지컬의 아쉬움도 더해진다.

그들이 왜 이런 '시대'에 '순수 문학'을 하는지에 대한 변론을 늘어놓음으로써, 많은 상상력을 보여준 <팬레터>의 미덕이 축소된다. 차라리 정말로 순수 문학에만 매진하는 칠인회를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그러면서 사랑이나 욕망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라면, 영원불멸의 아름다움, 죽음을 초월하는 아름다움 등을 이야기했다면 2막의 세훈-히카루-해진의 관계성과 이어질 여지도 더 크지 않았을까?

인터미션 이후 만난 2막은 1막과 유기적으로 연결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일단 두 막의 주제가 다르다. 1막에서 문학을 얘기했다면, 2막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주제 의식, '팬레터'라는 제목에서부터 강조되는 속성인 '환상'을 이야기한다. 두 주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됐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러닝타임은 짧았고 그러다 보니 1막과 2막은 연결되는 서사지만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 또한, 결말 또한 급작스럽다는 감상을 남긴다.

완벽하게 해진을 속이면 된다고 적극적으로 히카루를 사용할 것을 선택했던 세훈은 해진이 죽어간다는 이유로 오히려 히카루를 죽이려 한다. 그리고 해진은 그 진실을 알게 되자 '알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까? 둘이 같이 보낸 시간이 그렇게 많았나? 그렇다면 세훈은 그토록 좋아하던 해진이었지만 진실을 밝히고 나서 해진을 떠나는 건가? 칠인회 멤버들은 결국 자기를 고발하는 투서를 쓰며 위험에 빠뜨렸던 인물을 자신들의 동인에 끼워준다는 건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결이 잘 안 된다. 칠인회에 대해 이야기할 대목에, 세훈과 해진의 심리를 좀 더 명확하게 쌓아야 했지 않았을까?

<팬레터>는 액자형 구조로 액자 밖 세훈이 이윤과 이야기를 시작하며, 액자 안의 사건이 드러난다. 물론 실제 대화에서 이야기는 세훈의 관점에서 전개됐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 특징상, 액자 안 이야기는 오롯이 세훈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는 타임 워프에 가깝다. 그때 시대로 직접 돌아가 보여주는 것이다. 해진 선생님 관점의 이야기가 조금 개입되어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

산만함을 고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 이야기를 보강해서 두 주제의 유기성을 만든다. 하지만 <팬레터>는 이미 인터미션을 포함하여 러닝타임이 160분에 육박한다. 어지간한 대극장 뮤지컬의 러닝타임이다. 그렇다면 이 뮤지컬에 남은 건, 산만한 부분을 쳐내는 것이다. 극의 제목은 칠인회가 아니다. '팬레터', 환상을 좇는 팬이 쓰는 편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의 주제는 후자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브 혹은 피그말리온의 전복

문인에게 보내는 조선 최초의 '팬레터' 뮤지컬 <팬레터> 공연 사진 및 포스터. 재연 공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는 지난 2017년 11월 1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개막하여 오는 2월 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경성시대 순수문학 문인 모임 '칠인회'에서 일을 돕고 있는 세훈은, 평소 동경하던 해진 선생님에게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팬레터를 보낸다. 팬레터에 마음이 동한 해진은 히카루를 사랑하게 되고, 해진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세훈은 점점 편지 속 '히카루'를 연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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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움은, 그러나 극적 재미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었다. 그 재미의 가장 큰 부분에는 히카루라는 캐릭터가 존재했다. 히카루의 존재는 극적 긴장감을 조성해주고,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젠더적인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남성 주체 때문에 탄생한 여성 인물은 흔히 성경의 이브나 그리스의 피그말리온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남성에 의해 여성은, 남성이 원하는 대로 형성됐다. 아담의 외로움을 달랠 존재로, 혹은 피그말리온의 완벽한 환상으로. 히카루도 처음엔 그랬다. 세훈의 필명으로, 세훈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고, 이는 해진에 의해 왜곡됐다. 남성의 시각 아래에 존재하던 인물, 뮤즈로 말이다. 남성 문인들의 바람 속에, 밤에 창가에 찾아와주었으면 하는 존재. 대상화되는 존재, 뮤즈로 말이다.

하지만 히카루는 뮤즈에서 진화한다. 남성의 시각 속에서 권력 없이, 목소리 없이 존재하던 인물이 목소리를 내고, 그 권력 관계를 전복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카루가 말 그대로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야 했다. 히카루는 본체인 세훈의 인격임에도 불구하고, 세훈이 그녀를 하나의 인물로 인정하자 점점 그 힘을 키워 나간다. 힘을 키운 히카루는 자신을 드러낸다. 세훈이 어떤 행동을 하자고 제안해도, 히카루는 그건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거절한다. 히카루는 세훈의 통제를 벗어난다.

또한, 히카루는 사랑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먼저 해진을 발견한 것은 히카루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필명으로 존재하던 히카루이지만, 어쨌든 문학을 하는 동안에 세훈은 히카루니까. 히카루는 아름다운 팬레터를 해진에게 쓴다.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주는 팬레터에 해진은 매료된다. 물론 이후 세훈을 만나서 해진은 그런 히카루에 대해 '사랑하는 사이'라 이야기하고, 히카루는 그런 해진에게 답장을 쓰며 정절을 이야기한다. 여기까지는 흔한 남성 시각에서의 뮤즈일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뮤즈, 객체로의 히카루는 주체로 탈바꿈한다. 본체인 세훈의 영향을 받았다지만, 히카루가 해진을 욕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히카루는 해진의 글을 사랑한다. 그리고 '글을 쓰다 요절한 천재 작가'로 남을 수 있는 해진과의 소설을 쓴다. 자신이 시간을 뛰어넘고 기억되기를 욕망하며.

그래서 마지막에 히카루의 죽음은 다소 허무하다. 하지만 이 허무함은 <팬레터>의 텍스트에서 충분히 채워질 수 있다. 표면적으로 히카루는 죽었다. 세훈이 절필을 하고자 하고, 그리하여 자신의 손등을 펜으로 찍음으로써 히카루는 소멸했다. 하지만 정말로 히카루가 죽었을까? 히카루의 이야기는 극 중 경성에 떠돈다. 그뿐인가, 세훈은 다시 글을 쓴다. 히카루의 존재는 곧 세훈의 글쓰기였다. 세훈이 히카루로 존재할 때, 세훈은 글을 쓸 수 있었다. 히카루라 명명하지 않았을 뿐, 글을 쓰는 세훈의 모습은 히카루나 다름없다. 이때 세훈은 칠인회에 들어가 글을 쓴다. 히카루는 자신이 사랑하던 해진과 글을 쓰는 세훈으로 죽음과 삶 모두에 존재한다.

남겨진 질문

문인에게 보내는 조선 최초의 '팬레터' 뮤지컬 <팬레터> 공연 사진 및 포스터. 재연 공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는 지난 2017년 11월 1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개막하여 오는 2월 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경성시대 순수문학 문인 모임 '칠인회'에서 일을 돕고 있는 세훈은, 평소 동경하던 해진 선생님에게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팬레터를 보낸다. 팬레터에 마음이 동한 해진은 히카루를 사랑하게 되고, 해진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세훈은 점점 편지 속 '히카루'를 연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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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가 생소한 여성 관념 캐릭터라는 점은 또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히카루는 뮤즈이기에, 또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남성 작가 김해진의 환상 속에 존재해야 했기에 여성으로 설정됐다. 물론 이를 통해 보여준 전복이 통쾌하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전제가 마련되어 있어야만 여성 관념 캐릭터는 등장할 수 있는 것인지 묻게 한다.

어쩌면 <팬레터>가 더 좋은 작품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길 바라는 마음은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 때문일지도 모른다. 관념 캐릭터가 공연계에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그 관념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긍정적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연극이나 뮤지컬은 남성 중심적 세상을 반영했다. 관념 캐릭터라는, 인간의 형태를 지니지만 오롯이 인간이라 정의할 수 없는 캐릭터의 기본 성별을 마치 당연하듯 남성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그 남성 캐릭터와 남성 인간 캐릭터의 격앙된 갈등을 보여줬다. 그런 현실 속에서 히카루는 온몸으로 맞서는 여성 캐릭터라고 명명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캐릭터를 보여줬기에, 뮤지컬 <팬레터>는 값어치를 더한다. 때론 잘 만들고 재미있는 이야기일수록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전반적으로 좋은데, 그 몇 안 되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 작품에 가해지는 비판은 아쉬운 부분을 채워 더 오래 살아남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고는 한다. <팬레터>가 그랬다. <팬레터>는 이제 겨우 재연되고 있는, 아직 관객 앞에 선을 보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창작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이 가진 가능성은 더욱 무궁무진하다. 해진과 세훈의 글이 각자에게 생명을 주었던 것처럼, 거창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이미 많은 관객이 <팬레터>를 보고 울고 웃는다. 많은 관객에게 그러했듯, 또 해진과 세훈이 서로에게 그랬듯, 이 <팬레터>가 한국 뮤지컬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조금은 바라봐도 되지 않을까. 그 정도의 기대는 할 수 있는 작품 아닐까.

문인에게 보내는 조선 최초의 '팬레터' 뮤지컬 <팬레터> 공연 사진 및 포스터. 재연 공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는 지난 2017년 11월 1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개막하여 오는 2월 4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경성시대 순수문학 문인 모임 '칠인회'에서 일을 돕고 있는 세훈은, 평소 동경하던 해진 선생님에게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팬레터를 보낸다. 팬레터에 마음이 동한 해진은 히카루를 사랑하게 되고, 해진을 실망시킬 수 없었던 세훈은 점점 편지 속 '히카루'를 연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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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 해외 관극도 함께하며, 잘 만든 서사를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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