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영의 자야, 백석을 만나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을 맡은 배우 곽선영의 프로필 및 공연 이미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2016년 초연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이번에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연출, 극본/작사, 작품상 3관왕을 받은 바 있다. 백석의 시를 가사로 활용한 이 작품은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다룬 극으로, 서정적인 멜로디로 여운을 만든다. 지난 10월 19일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8일까지 공연된다.

▲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 “이 작품은, 뭔가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에요. 제가 생각을 해봤어요. 왜 자꾸 이런 마음이 들까. 그런데 못 찾겠더라고요. (웃음) 잘 모르겠어요. (웃음) 바보 같아. 그런데 뭔가 꼭 단정 지어서 표현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에요. 이렇다고 하기에는 또 다른 면들이 있고. 또 이런 면들이 있는데 다 얘기하자니 너무 많고. 한 단어로 표현하자니 마땅한 게 없는, 그런 희한한 작품이에요.”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인 자야 김영한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작품의 재연 공연 오디션이 있던 날, 현장은 '이 배우'가 자야 역에 지원하기 위해 온다는 소식에 술렁였다고 한다. 아직 이 배우와 함께 작업한 경험이 없는 오세혁 연출은 속으로 다짐했단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라고 해도, 나는 연출이니까 인지도와 관계없이 엄격하게 심사해야지.'

하지만 한복도 입지 않은 채 이 배우가 오디션장에 들어선 순간, 오세혁 연출은 속으로 외쳤다고 한다.

'자야다!'

그렇게 오디션을 치른 배우 곽선영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재연 1차팀에 더블 캐스팅으로 무사히 합류하게 된다. 정작 배우는 이런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며 부끄러워했다. 곽선영은 그런 배우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 실력과 경력을 바탕으로 대학로에서 신뢰받는 배우이지만, 그 스스로 항상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낮춘다. 스스로 칭찬하는 데 인색하고, 자신의 모자람을 아쉬워하면서도, 작품과 인물에 대한 애정과 신념은 굳건하다.

지난해 뮤지컬 <줄리 앤 폴> 리딩 때 만난 이후(관련 기사: 사랑은 세상을 바꾼다, 그녀는 아직 기적을 믿는다) 1년 여 만에 재회했지만, 그는 변한 게 없었다. 질문 하나마다 숙고해서 천천히 뱉어내는 대답도 그대로였고, 달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눌변도 아닌 담담한 화법도 여전했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하기 보다는, 순리대로 흘러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연기하며 노래하는 배우. 이 작품을 만나서도 그는 거스름 없이 자야의 애달픔을 받아들였고 그대로 무대에서 객석으로 옮기고 있었다.

지난 6일, 서울 대학로의 카페에서 배우 곽선영이 덜어낸 여백을 들여다보았다.

그냥 좋아서 고른 작품, 그 인연

곽선영의 자야, 백석을 만나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을 맡은 배우 곽선영의 프로필 및 공연 이미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2016년 초연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이번에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연출, 극본/작사, 작품상 3관왕을 받은 바 있다. 백석의 시를 가사로 활용한 이 작품은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다룬 극으로, 서정적인 멜로디로 여운을 만든다. 지난 10월 19일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8일까지 공연된다.

▲ 곽선영의 자야, 관객을 만나다 “제 자야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나요? 저는 저 스스로 팬이 많지 않은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나요? 정말 저를 좋아해주시나요? 윤심덕은 제가 도중에 하차를 해서, 저를 기다리는 분들이 계셨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자야는….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헤헤.”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그냥 지냈어요, 잘. (웃음) '열일'하겠다는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고는 있는데, 그렇다고 바로 작품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좋은 작품이 바로 있었다면 시작했겠지만 그때는 잡혀 있는 스케줄이 없었죠. 뮤지컬 <사의 찬미>도 이야기는 되고 있었지만 확정은 아니었고요. 다행히 복귀를 생각할 무렵에 제안을 받아서 모든 게 딱딱 떨어졌죠. 대본도 열심히 보고, 노래도 다시 연습하고 광고도 열심히 찍고…. (웃음) 차근차근 준비했어요.

원래 <사의 찬미> 끝나고 <줄리 앤 폴>은 하기로 예정돼 있었어요. 그런데 <사의 찬미> 연습하는 기간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오디션 제의를 받았죠. 좋은 작품이기도 하고 하고 싶었던 역할이기도 했기에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가 좋아서…. 갑자기 몰아서 열일을 하게 됐어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좋죠 저는. 사실 연말에 <줄리 앤 폴> 이후엔 또 없는데? (웃음)"

<줄리 앤 폴> 리딩 공연 당시 인터뷰 때 '열일'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작품으로 돌아오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가 대학로로 돌아온 건 예상치 못한 잉태 소식에 중도 하차했던 '윤심덕'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면서부터였다. 뮤지컬 <사의 찬미>를 마친 후 연말에 본 공연으로 돌아오는 <줄리 앤 폴> 합류도 예상했던 바였다.

하지만 <사의 찬미>와 <줄리 앤 폴> 사이에 그의 새 필모그래피가 추가되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자야. 많은 배우가 참여하고 싶었던, 그래서 꽤나 치열했던 오디션을 통과하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곽선영은, 자신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음을 애써 증명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보여주었다. 관객의 반응도 뜨거웠다. 물론 어디까지나 외부의 여러 평가 중 하나일 뿐, 곽선영 개인은 이런 이야기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다만, 이 작품의 오디션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초연을 봤는데, 이게 가사의 전부 그리고 대사의 일부가 백석의 시잖아요.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신기하게 인물의 정서가 다 와 닿는 거예요. '시가 가지고 있는 힘이 이런 거야?' 저는 시에 대해 잘 모르고, 시집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충격을 받았죠. 또, 이 작품의 넘버(노래)가 가지고 있는 힘도 대단하더라고요. 서정적인 느낌을 노래를 통해서 콱콱 쏘니까….

공연을 보고 나서 한참 동안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여운 끝에 '아, 나도 하고 싶다. 저거 좀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디션 보러 오라고 말씀해주셨을 때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정말 잘하고 싶었죠."

그렇게 본 오디션이었는데, 곽선영은 자신이 "어쩌다 보니" 통과했다고 설명한다. 그저 기억나는 건, 노래와 대사가 끝난 후 오세혁 연출의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자신이 내놓은 답이었다. 그때의 질문과 답변을 배우가 복기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이 작품에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잘 맞는 옷을 찾아 입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션을 마쳤는데, '이 작품을 왜 하고 싶으세요?'라고 오세혁 연출이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그냥 좋다'고만 얘기했어요. 그냥 좋더라고요. 물론,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들이 당연히 있긴 했죠. 하지만 마냥 좋았고, 좋으면 그런 세세한 이유는 굳이 필요 없는 거잖아요. 연출께서 그 대답이 마음에 드셨대요. 연출도 그냥 좋으면, 그게 좋으신 분인가 봐요. (웃음)"

'좋아한다'는 감정

곽선영의 자야, 백석을 만나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을 맡은 배우 곽선영의 프로필 및 공연 이미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2016년 초연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이번에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연출, 극본/작사, 작품상 3관왕을 받은 바 있다. 백석의 시를 가사로 활용한 이 작품은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다룬 극으로, 서정적인 멜로디로 여운을 만든다. 지난 10월 19일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8일까지 공연된다.

▲ 자연인 곽선영이 자야였다면? "제가 그 시대에 태어난 여인이라면,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 마냥 자신은 없지만, 떠나보내거나 쫓아가지 않는다거나 하는 선택은 똑같이 했을 것 같네요. (웃음) 기다리는 게 제 몫이니까요."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지만, 그 이유들을 다 하나하나 풀어내기 보다는 그저 뭉뚱그려 '좋아서'라는 말로 표현할 때가 더 적확한 때가 있다. 배우가 작품에 매료된 것도, 연출이 배우를 마음에 들어한 것도 그저 '좋아서'였다. '좋다'라는 말의 함의가 이렇게 크고 넓은지를 새삼 되새겨보게 된다. 아마도 자야가 바보 같을 정도로 백석을 기다린 것도 그가 '좋아서'였을 테다. 이런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곽선영과 자야는 어쩌면 비슷한지도 모른다.

"저와 자야 여사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시대가 다르니까 비교하기가 애매하지만, 그녀가 이해됐어요. 나도 그때 태어났으면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자야가 백석을 기다리는 것에 공감해요. 그녀에게는 백석이 전부이니까요. 멀리 돌고 돌아서 오더라도 어쨌든 결국 나에게 돌아오잖아요. 백석이 사랑하는 여인은 나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 오랜 기다림을 감내했던 것 같기도 해요.

물론 후회도 했을 것 같아요, 수없이. 때로는 원망도 하고. 때로는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다독이기도 하고…. 그런 게 반복됐겠죠, 평생. 그러다가 백석의 시가 세상에 나오면서, 그 시 안에서 자신을 발견했을 것 같아요. '백석이 나를 사랑했구나'라고. 나를 사랑하는 백석을 그 시 안에서 발견했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했다는 확신이 생겼으니 그거로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오로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살았다는 것으로 풀어가는 극이지만, 그게 정말 맞다면, 다른 건 필요 없는 상태이지 않았을까요.

그렇다고 실제로 백석 같은 사람은 싫어요. 싫어요!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아니, 사랑하면, 그 말에 책임지는 건 곁에 있어주는 거잖아요.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좋을 때 같이 나눠주는 게 사랑인데, 그분은…. (웃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이 여인도 주고, 저 여인도 주고, 나(자야)도 주고! 그걸 자야 여사가 알았을지 몰랐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자유로운 영혼은 안 맞는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전 싫어요. 어, 그러네! 자야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네요. 그 사람이 왜 좋을까?

이건 사실 <사의 찬미>에서 윤심덕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김우진이 왜 좋을까?'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왜 좋을까'라는 이유를 세세히 찾지 않았어요. '좋았으니까. 너무 사랑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랬겠지'라고만 남겨뒀어요. 그 사랑을 믿고, 저는 그 외의 것들을 수행하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왜 좋은지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저는 말할 수 없거든요. 진짜 사랑하면, 그 이유를 세세하게 찾을 수 없잖아요."

곽선영의 자야, 백석을 만나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을 맡은 배우 곽선영의 프로필 및 공연 이미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2016년 초연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이번에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연출, 극본/작사, 작품상 3관왕을 받은 바 있다. 백석의 시를 가사로 활용한 이 작품은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다룬 극으로, 서정적인 멜로디로 여운을 만든다. 지난 10월 19일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8일까지 공연된다.

▲ 곽선영에게 이 작품의 의미 “한 번 더 어른이 되는, 한 계단과 같은 작품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냥 사람으로서도…. 음,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얘기는 했는데, 또 막상 생각해보니 딱히 이유는 없네요. 오늘은 참 바보 같은 곽선영이네요. (웃음) 아, 왜 이러지? 이 작품 이상해. 말을 못 하겠어. 말이 잘 안 나오네요. 설명하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감정은 자주 논리적이지 않다. 인과관계가 명확하지도 않고, 특별한 계기나 분명한 조건 없이 타오르기도 하고 사그라지기도 한다.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 명료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또 어떨 때는 그 부분을 굳이 만들지 않고 여백으로 남기는 게 더 와닿을 때도 있다. 자야가 백석을 사랑한 이유를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야를 만드는 과정에서 곽선영이 접근하는 방법도 약간은 여지를 남기는 식이었다.

"지금 참여한 배우들이 모두 <백석 평전>과 <내 사랑 백석> 두 권은 기본적으로 읽었어요. 자야 여사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그 책을 중점적으로 봤고, 그 둘 사이의 관련된 기사라든가, 자야 여사가 백석의 연인이라고 주장했을 때 아니라고 반박했던 글들도 많이 찾아봤어요. 그런데 그러다가 그만뒀어요. 이 작품이 얘기하고 싶은 건 백석에 대한 자야의 사랑이고, 그녀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잖아요.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이 너무 주관적이기도 하고 미화된 그녀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그걸 온전히 믿어주자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랑에 중점을 두고 더 이상의 불필요한 정보는 차단을 했어요."

덜어내는 법에 대하여

곽선영의 자야, 백석을 만나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을 맡은 배우 곽선영의 프로필 및 공연 이미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2016년 초연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이번에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연출, 극본/작사, 작품상 3관왕을 받은 바 있다. 백석의 시를 가사로 활용한 이 작품은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다룬 극으로, 서정적인 멜로디로 여운을 만든다. 지난 10월 19일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8일까지 공연된다.

▲ 가장 힘들었던 점 “연습할 때, 떠나보내는 걸 반복하는 게 힘들었어요. 결국, 다시 돌아오기는 하지만, 계속 그리워하고, 매번 떠나보내고, 다시 기다리고, 짧은 만남이 있다가 또 떠나보내는 게 반복되는 게…. 이거 공연 어떡하나 싶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죠. 속 시원하게 말하는 장면도 없고 계속 참아내고 참아내다 보니까,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는 게 가장 큰 숙제였어요. 연습실은 모두가 눈물바다였어요. 테이블 작업을 하다가도, 연출이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예시가 있었어’만 들어도 눈물이 나올 정도여서…. 참는 게 진짜 힘들죠.”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지난 초연 때 자야 역을 맡았던 최연우 배우는, 인터뷰 때 자야를 만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입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했다고 답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천재시인 백석의 연인, '논란의 나타샤'를 되살린 여인) 절제미가 돋보이는 담백한 작품이기에, 배우도 자연스레 색을 덧칠하기 보다는 빼내는 것일까. 1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같은 작품, 같은 역을 맡은 다른 배우가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참 신기하게도, 배우 곽선영도 자야를 통해 배운 바가 최연우와 비슷했다.

"자야는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하다못해 전작(<사의 찬미>)에서는 '널 사랑해', '널 증오해',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직접적으로 다 표현했잖아요. 하지만 여기선 '가지 마'라고 하고 싶어도 '갔다 와'라고 보내주고…. 제가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표현하지 않고 담아내는 점, 참아내는 점, 아끼는 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여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참아내고 살아냈는지.

덕분에 비워내는 것과 덜어내는 것의 '귀함'을 배웠어요. 저희가 작품을, 캐릭터를 맡아서 작업을 할 때 실존인물의 경우에는 그의 역사가 있잖아요. 배경과 자료들이 많으니까, 그거를 안고만 있어도 충분히 인물이, 역할이 창조가 되는 건데…. 생각으로 그렇게 하고, 마음이 그렇게 하려고 해도, 사람 본능이 자꾸 무대에서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윤심덕은 여기서 더 치명적이어야 해'라든지, 아니면 '여기서 이런 사연의 슬픔을 더 보여주고 싶어'라는 욕심이 생기죠.

그런데 이 작품은 안 하면 안 할수록,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담백해지고 더 멋스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뭐를 안 해야겠구나. 뭔가가 채워졌다면, 무언가를 더 안 해도, 그게 더 좋을 수 있구나'라는 걸 배웠어요."

곽선영의 자야, 백석을 만나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을 맡은 배우 곽선영의 프로필 및 공연 이미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2016년 초연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이번에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연출, 극본/작사, 작품상 3관왕을 받은 바 있다. 백석의 시를 가사로 활용한 이 작품은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다룬 극으로, 서정적인 멜로디로 여운을 만든다. 지난 10월 19일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8일까지 공연된다.

▲ 재회 그리고 감정의 해소 “저는 기억력이 나쁜 건지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힘들었던, 행복했던 기억을 가끔 물어보시면 딱히 없어요. 그 기억을 갖고 그 기억에 매달려서 살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그냥 매 순간이 좋고…. 싫은 일도 물론 있지만, 좋은 일이 또 생기니까 잊게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그런지 무대를 내려와서는 오히려 감정적으로 괜찮아요. 억누르고 있다가 마지막에 백석한테 자야가 먼저 손을 내밀며 ‘갑시다’라고 뱉고 나서는 뭔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걸로 다 됐으니까….”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비워둔 만큼,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할 곳이 생겼다. 작품이 올라오는 무대가 바뀌었기에 조금은 공간감이 달라지고, 동선 등 자잘한 요소들이 변경되기는 했지만 초연에 이어 재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관객의 사랑을 널리 받고 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도 관객들이 보내주는 사랑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 더 애쓰고 있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 작품에 감동했던 배우이기에, 자신이 느낀 감동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관객분들께서 이 작품을 많이 좋아해 주시는 걸 느껴요. 일단 많이 우신다는 건, 그만큼 같이 느끼고 공감해주신다는 얘기니까요. 집중해주신다는 얘기니까요. 객석도 많이 차고. (웃음) 관객분들이 다 촉촉해지시더라고요.

어쩌면 제가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공연을 봤을 때, 보고 나서 여운이 한참 남았던 것 같은 게 아닐까요? 저도 그 여운이 남았고 백석이 궁금해졌고 백석의 시가 궁금해졌어요. 생활이 바빠서 많이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그 몇 가지 찾아본 것에서도 또 깊은 감명을 받았죠. 그렇게 백석의 시를 알고 나니까 이 작품을 다시 보면 또 어떨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 순환이 생겼는데, 관객 분들도 그런 걸 똑같이 느끼지 않으셨을까요? 자꾸자꾸 궁금하고, 자꾸자꾸 새로운 걸 발견하시니까 작품을 보러 와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자야와 같이 느끼고, 공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재밌으니까 또 보러 와주시고, 웃음과 감동을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라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자야의 마음을 잘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그냥 시를 한 편 본 것 같은 여운을, 제가 느꼈던 여운을 관객 분들도 똑같이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

지난 10월 19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오는 2018년 1월 28일까지 상연된다. 하지만 이번 재연에 새롭게 합류한 1차 팀 배우들은 곧 하차하고, 초연 때 같이했던 배우들의 2차 팀으로 개비된다. 곽선영의 자야는 오는 12월 10일이 마지막 공연이다. 남은 회차는 이제 단 여섯 번뿐이다.

"너무 아쉬워요. 저희들 다 똑같이 그 얘기 하거든요. 두 달 동안 연습 정말 뜨겁게 했고, 그에 비해 공연이 너무 짧은 거 아니냐는 생각을 전부 다 하고 있어요. 뭐 아쉬우면, 아쉬움으로 남겨두고 또 기회가 닿으면 더 잘 만들어서 와야죠. 아, 그래도 아쉬워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정말 이상한 공연이에요. 그만큼 애정이 있는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자야랑 재회할 수 있을까요? 음…. 나 쓸 거예요,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나 쓸 거예요? (웃음) 잘 모르겠어요. 음, 오세혁 연출이 절 불러주실까요? 만나고 싶어요. 한 번은 불러주겠...죠? (웃음) 특별한 일정은 아직 없고요. 당분간은 쉽니다. 또 좋은 기회가 오면, 오디션이든 작품이든 참여해야죠. 내년 봄 전까지는 쉬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은. 일부러 광고만 찍는 건 절대 아니고요! 광고 쪽에서 저를 찾아주셔서요. 왜 공연은 나 안 찾아주지? 공연도 저 찾아주면 좋은데, 무대하고 싶은데…. 작품이 없네, 나를 찾는 작품이 없어. (웃음) 아직 이야기가 되고 있거나 연락을 받은 작품은 없어요. 좋은 기회가 또 오겠죠."

곽선영의 자야, 백석을 만나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을 맡은 배우 곽선영의 프로필 및 공연 이미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2016년 초연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이번에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연출, 극본/작사, 작품상 3관왕을 받은 바 있다. 백석의 시를 가사로 활용한 이 작품은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다룬 극으로, 서정적인 멜로디로 여운을 만든다. 지난 10월 19일 개막하여 오는 2018년 1월 28일까지 공연된다.

▲ 창작극에 임하는 마음가짐 “창작 뮤지컬을 할 때는 항상, 이 작품을 동료들 그리고 후배들이 하고 싶게끔 만들고 싶어요. 배우들이 욕심낼만한 좋은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어릴 때부터 있었거든요. '내가 했던 작품을, 내가 계속 나이를 먹은 후 어린 후배들이 하게 되면 꼭 봐야지'라는 생각이요. <줄리 앤 폴> 때도 그런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본 공연이 올라가면 내가 꼭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던 거죠. 의리의 문제도 있고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그렇고, 좋은 작품은 계속계속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 (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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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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