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37> 메인포스터

<로마서 8:37> 메인포스터ⓒ 루스이소니도스


01.

이 영화의 타이틀인 <로마서> 8장 37절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타이틀부터 직접적으로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이 작품 <로마서 8:37>은 연출자인 신연식 감독이 5년 전 한 유명 교회의 설립자가 속해있는 재단으로부터 그의 평소 목회 철학이 담겨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의뢰받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감독 본인이 기독교인이라는 배경이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그는 특정 집단에게만 사유 되는 것이 아닌 사회 전체가 신앙의 말을 사유하며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지만 취재를 하면 할수록 기독교 사회에 퍼져있는 깊고 짙은 부정과 복잡한 죄악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 사회와 기독교계가 함께 자신을 돌아볼 기회의 담론을 던져보고자 했다고. 이는 감독이 자신의 제작 노트를 통해 직접 밝힌 부분이다. 실제로 영화를 직접 관람하고 나면 이 작품이 하나의 종교 집단의 비리를 고발하거나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인간이 맹목적 믿음과 자기 확신 앞에 얼마나 유약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려내고 있으며, 그 유약함과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된 죄악들이 어떤 추악한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는지를 이해시킨다.

02.

이 작품에서 특징적인 것이 하나 있다면 영화의 한 호흡이 끝날 때마다 삽입되어 있는 성경 구절이다. 마치 하나의 잘 짜여진 구조물을 보는 듯, 영화 속에서 이 성경 구절들은 어떤 장면을 설명하기도 하고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를 지지하던 구절들은 종국에 이 작품의 타이틀, 로마서 8장 37절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과정을 잘 따르다 보면 이 작품을 통해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물론 성경 구절들을 사전에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더 큰 울림이 있겠지만, 앞서 설명했던 대로 이 작품은 종교적 문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보편적인 문제들을 그 속에 담아내고 있기에 이해에 큰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작들을 통해서도 문자와 영상이 서로 주고받는 의미들에 집중했던 신연식 감독 특유의 연출이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지독한 자기 확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요섭.

지독한 자기 확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요섭.ⓒ 루스이소니도스


03.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집중적으로 파헤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세 가지 그릇된 행위, 맹목적 믿음, 자기 확신, 그리고 그릇된 집단의 회합이다. 이는 모두 믿음과 관련이 있다. 이 세 가지 믿음은 존경받는 목사이자 친형이나 다름없는 요섭(서동갑 역)을 돕기 위해 그가 선교 중인 부순 교회에 간사로 들어가는 기섭(이현호 역)의 이야기와 함께 호흡하며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독교계에서 범접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선배 목사의 부정에 맞서 싸우는 줄 알았던 요섭이 자신과 함께 성장해 온 여성 신도들을 성추행했다는 추악한 사실과 마주한 기섭의 심리와 함께 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영화는 실제 국내 종교계의 그릇된 자들이 행해온 문제적 사건들을 건드리게 된다. 이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감독이 취재하는 과정에서 직접 목격한 것들이기에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부분들이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감독은 인간의 그릇된 믿음을 종교적 믿음에서 끌어내기 위해 차용하고 있을 뿐, 이 작품을 바라볼 때 협소한 시각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04.

차마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위로 그 대가를 치르려는 요섭은 가까운 사이인 기섭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 자기 확신을 보인다. 피해자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행위에 대한 적절한 처벌, 진실한 반성이 없었음에도 자신이 나아가야 할 선교에 대한 확신과 믿음만을 강조한다. 자신에게는 그런 의무가 있기 때문에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이 영화의 첫 번째 그릇된 믿음이다. 그런 요섭의 비인륜적 행위로 인해 기독교 전체에 얼룩이 남을 것으로 예상하자, 부순 교회의 권력을 중심에 두고 서로 헐뜯기 바쁘던 계파는 정확한 조사 대신 사건을 빨리 덮고 요섭의 죄를 사하려고 한다. 특히 요섭과 대척점에 있던 선배 목사는 마치 자신이 신의 권위를 대신 이양이라도 받은 양 행세한다. 영화의 두 번째 잘못된 믿음이다. 마지막으로 맹목적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기섭 스스로 느끼게 되는 요소들이 있다. 기섭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자라온 지민(이지민 역)과 숱한 여신도들이 과거의 아픔을 안은 채로 힘들어 하는 동안, 여전히 자신이 믿어온 종교와 요섭을 비롯한 주변 환경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던 인물. 그랬기 때문에 목사 안수의 기회도 마다하고 요섭을 돕고자 했다. 영화가 갈무리되는 지점에 이르러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이렇게 뇌까린다.

"거짓 평화, 그것에 취했던 게 제 죄였던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몰랐던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몰랐던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루스이소니도스


05.

영화는 이 모든 일이 단순히 누구 한 사람의 잘못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요섭이라는 인물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으로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그의 잘못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고만 하는 집단의 모습은 물론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믿는 대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이들에게도 잘못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선과 악, 혹은 믿음과 거짓과 같은 단순한 흑백논리로 해석되는 것도 아니고, 잘못을 저지른 한 사람의 죄도 아니라는 것과도 상통한다.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끊임없는 의심을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바라보아야만, 진정한 나를 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이 한마디가 작품 속에 녹여내고 싶었던 모든 주제를 아우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믿음으로 관계와 삶을 이루어가는 인간이 가장 약한 존재가 되었을 때, 과연 자신의 죄와 타인의 죄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영화 <로마서 8:37>은 마치 그에 대한 대답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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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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