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안에서 훈련 대기 중인 모습

부대안에서 훈련 대기 중인 모습ⓒ 박정훈


이문세가 내년 2월까지 전국투어 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누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친구처럼 늘 가깝게 느껴지는 연예인들의 존재는 생각 이상으로 소중하다. 지금의 연예인들과는 다르지만 예전 라디오는 지금보다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 만남의 창구였다. 그 칙칙 거리는 소음과 함께 전해지던 음악과 이야기들. 그것을 통해 웃고 울던 그 시대를 생각하면 막연히 생각에 잠긴다. 작은 라디오 앞에서 웃음을 참으며 혼자 상상 속에 빠졌던 시절. 겨울 날씨 때문인가? 지금보다 몇 배 아니 몇 십 배 누군가가 그립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된 96년의 여름. 갓 신병이었던 나는 부대생활에 적응이 덜 돼 있던 나. 그런 내게 무더운 날씨의 부대안의 여름날들은 하루하루가 현실의 시계와 너무도 달랐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에 경외심이 생길 정도로 그 안의 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더운 여름 회색의 진압복을 입고 데모진압 훈련하는 것은 영화 속 삼청교육대에 강제 입소한 느낌까지 들게 했다. 게다가 밤에는 야간순찰까지. 그 당시 의무경찰을 자원입대한 나는 전혀 기대와 다른 현실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현실에 지옥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종종 잠기기도 했다.

영화와 방송을 좋아라하던 내게 부대 내무반 안에서의 TV시청은 금기였다. 당연히 음악도 듣지 못했다. 간혹 TV를 힐끔거렸다가는 주먹과 경찰봉이 날아왔다. 차라리 다행이었던 것은 그 졸병 시절엔 깊은 우울감에 TV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회에서의 자유가 사라진 그 시절 그 공간. 몇 십 년 전의 부대생활과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출동하는 버스안에서의 모습

출동하는 버스안에서의 모습ⓒ 박정훈


"쉿~조용히 하고 이리 와"

피곤함에 쓰러지기 직전인 어느 날 늦은 새벽. 고참 하나가 불침번인 나를 침상구석으로 조용히 불렀다. 얼굴도 성격도 무서운 잔인한 고참. 험악한 인상인 그가 씨익 웃었다. 어두운 적색의 취침조명에 비친 그의 얼굴은 기괴함 그 자체였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잔뜩 경계심을 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무언가 허리춤에서 조심스레 꺼냈다. 어둠 속에 보이는 검고 동그란 물체. 어두워서 처음엔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보니 '앗, 이건? 설마….'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내게 건넨 건 바로 작은 이어폰이었다. 당시 내무반은 휴게시간이든 아니든 음악 감상도 금지였다. 그 와중에 그 고참은 내가 딱해 보였는지 자신도 몰래 듣던 음악을 듣게 해주려고 그 컴컴한 새벽에 이어폰을 건넨 것이었다.

 광화문 연가가 실린 이문세 5집

광화문 연가가 실린 이문세 5집ⓒ 이문세 홈페이지 갈무리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 - 이문세 '광화문연가' 중에서.

어두운 내무반. 그 곳에서 이어폰을 통해 전해지는 음악소리는 나를 전율케 했다. 그 흔하디흔하게 듣던 음악. 본의 아니게 강제로 못 듣다가 듣게 되니 그저 감동이었다. '몰래 먹는 빵이 더 맛있다고 했던가?' '음악이 이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얇은 선에 이어진 이어폰을 통해 내 귀로 전해지는 음악은 마치 나를 전기에 감전시켰다. 난 감전돼버린 채로 구름위에 둥둥 떠다녔다.

가수 이문세의 '광화문연가'는 잠시 현실에서 다른 세계로 소환시켰다. 음악소리에 눈을 감자 나는 덕수궁 돌담길에 와있었다. 어두운 내무반 중앙에서 적색의 조명을 받으며 신나게 헤어진 여자 친구와 춤추며 걷고 있었다.

누군가 국가가 허용한 합법적 마약이 음악이라고 했을 때 동의하지 못하던 나도 그 순간만큼은 무한 동의됐다. 음악은 대단히 합법적인 마약이라고. 물론 아주 건전한.

잠깐의 꿈을 깬 뒤 또 다시 지루한 일상이 반복됐다. 자유가 사라진 그 시간들은 다신 상상하고 싶지 않도록 고통스러웠다. 부대 안에서의 하루는 밖에서의 3~4일의 시간과 절대적 총량이 맞먹었다. '구타는 없다'던 군대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다 웬 쓸데없는 암기사항과 훈련은 그렇게 많은지. X세대 어쩌고 하던 그 시절에도 그 군대라는 시설 안에서는 타임머신을 탄 듯 다들 과거로 회귀한 듯 했다.

무심한 무더위는 나를 더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다. 군대체질이 아닌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도 무겁고 버거웠다. 자신이 혼나지 않기 위해 본인이 저지른 잘못을 태연히 졸병인 내게 뒤집어씌우는 고참들을 보며 작은 사회라던 군대는 너무 치졸하고 비겁했다.

노래하나로 여름날의 성냥팔이 소녀로 환원된 나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출동대기중인 모습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출동대기중인 모습ⓒ 박정훈


그 무덥던 여름의 어느 날 난 심한 갈증을 느꼈다. 타는 목마름은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었다. 바로 그동안 못 들었던 음악이 너무 듣고 싶었다. 습도가 너무도 가득했던 그 여름밤. 야간 순찰을 나온 잠시 쉬는 시간 나는 아직 군대를 안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담배 한 대 피러간 고참 몰래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늦은 밤 다이얼을 돌렸다.

다행히 친구가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난 두서없이 그 시절 가장 듣고 싶었던 노래를 전화기 너머로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탈영했냐"고 놀라던 친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수화기 너머로 노래를 들려줬다. 바로 이문세의 '조조할인'. 그 순간만큼은 여자 친구와 콘서트 장에서 듣는 것보다 감미롭고 행복했다.

"하지만 우리 함께한 순간 이젠 주말의 명화 됐지만
가끔씩 나는 그리워져요. 풋내 가득한 첫사랑" - 이문세 '조조할인'(with 이적) 중에서.

잠시 눈뜬 채 꿈을 꿨다. 노래가사처럼 환한 햇살 속에서 수줍게 웃고 있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노래는 콘서트장의 소리보다 더욱 황홀했다. 그 아름다운 가사 하나 하나가 나를 꿈 많고 행복했던 시절로 보내줬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너무 추워 성냥하나를 켤 때마다 자신이 상상하던 꿈을 꾸었던 것처럼. 무더운 밤 그렇게 나는 더운 여름날의 성냥팔이 소녀로 환원됐다. 그해 여름 서울역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공중전화 박스 속의 나를 쳐다봤다. 나의 얼굴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흘렀다. 나의 자존감과 자유가 결결히 찢겨가던 그 시간. 탈출구 없던 나는 그렇게 무력하게 사람들 앞에 한 동안 서있었다. 신기하게도 가슴은 현실의 무력감에 흔들리는데 내 몸은 수화기 속의 노래로 신나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가 전했주었던 위로. 공중전화기 너머로 듣던 이문세의 '조조할인'

 조조할인이 실린 이문세 10집

조조할인이 실린 이문세 10집ⓒ 이문세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게 나를 잠시나마 치유했던 그 노래. 바로 '조조할인'을 부른 가수 이문세. 그가 암투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몇 년 전 접했다. 덜컥 걱정이 됐다. 다행히도 그의 수술은 잘되었고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계속 하기 위해 성대의 암세포를 다 제거하지 않았다고 전해 들었다.

그로 인해 늦은 밤 라디오를 들으며 킥킥 웃으며 꿈을 키우고 지냈던 시간들이 머리위로 스쳐갔다. 그 당시 별밤지기로 상상을 초월했던 그의 인기. 당대의 개그맨으로 인정받는 이경규가 조연일 정도로 막강했던 그의 입심. 그는 그런 자신의 능력을 담아 라디오라는 매체하나로 청소년들을 수많은 밤 자신의 길로 인도했었다.

한 동안 그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 아니 음악자체에 담을 쌓고 지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열심히 치던 기타코드까지 잊어가며 살았다. 그렇게 지내다 갑작스레 나의 기억에 복기된 그의 노래로 다시 그가 떠올랐다.

가수 이문세의 수많은 히트곡들이 있지만, 유독 내게 큰 위로를 전해준 노래는 바로 '조조할인' 이다. 물론 광화문연가라는 아픔을 주었던 노래도 있지만 내게 으뜸인 그의 노래는 바로 그 노래다.

문득 다시 그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스마트폰의 월 정액제 음악상품을 결재했다. 나는 그렇게 몇 십년 만에 그와 재회했다. 내 사춘기와 청춘을 구제해줬던 그와 그의 노래들. 나뿐아니라 나와 같은 세대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던 그의 노래는 아직도 내게 유효했다. 그의 말과 노래로 위로받고 용기를 받았던 나는 다시 그에게 내 어깨를 토닥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노래를 듣고 한 동안 방송에서 보지 못한 그에 대한 갈증이 더해졌다. 다행히도 그의 공연소식이 들린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는 뒤로하고 그의 공연이라도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해본다. 별밤지기라는 사춘기 고민상담자이자 가수이고 엔터테이너였던 그. 사춘기가 지난 나이든 어른임에도 난 아직 그의 위로가 필요하다. 물론 그의 입담도. 그가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오늘 밤 깊게 바라고 바래본다.

"아직도 생각나요. 그 아침 햇살 속에
수줍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이" - 이문세 '조조할인'(with 이적) 중에서.

그가 오래전 남겨주고 앞으로도 들려줄 노래. 조조할인. 그 노래를 들으며 고통스럽던 그 시절을 이제는 추억으로 치환한다. 더불어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곁에 추억을 넘어 가슴속에 남은 그 노래. 잠시 눈을 감고 허밍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경기미디어리포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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