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꾼> 메인포스터

<꾼> 메인포스터 ⓒ 쇼박스


01.

범죄를 위해 모인 무리가 이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보여주는 하이스트 무비는 – 혹은 케이퍼 무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오션스 일레븐>(2001) 시리즈가 대표적이고, 국내에서도 <범죄의 재구성>(2004), <도둑들>(2012), <타짜>(2006), <감시자들>(2013)이 그에 속한다.

대신 유사한 장르가 반복되다 보면 큰 틀은 유사하게 가져가되, 일종의 변용을 통해 신선함을 확보하려는 노력들이 일어나는데, 국내에서는 <감시자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하이스트 무비의 형식은 그대로 가져갔지만,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무리가 범죄를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저지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설정. 이를 하이스트 무비의 변용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스토리 상의 변용은 그대로 적중하여 550만 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던 바 있다. 여기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은 범죄자라고 특정된 하이스트 무비를 이끌어가는 대상 때문이다. 그 때문에 단순한 팀 업 무비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장창원 감독의 첫 연출작인 <꾼> 역시 약간의 변용이 가미된 하이스트 무비로 볼 수 있다. 일종의 범죄를 실행하기 위해 모인 무리가 협력하여 소기의 성과를 달성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 다만, 이 작품에서 변용이 가미되었다고 한 것은 현직 검사인 박희수(유지태 역)가 이 팀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며, 종반에 등장하는 스토리의 전복을 통해 모든 인물이 각자의 목적을 갖고 움직였음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꾼 스틸컷 케이퍼 무비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영화 <꾼>

▲ 꾼 스틸컷 케이퍼 무비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영화 <꾼> ⓒ 쇼박스


02.

하이스트 무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두 가지를 꼽자면 아무래도 잘 짜인 스토리와 완성된 캐릭터다. 이 두 가지가 다른 작품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기는 하지만,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그려내는 연출이 중요하고, 그 안에서 뒤섞이며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인물들에 시선이 집중되는 하이스트 무비에서는 그 무게에 더욱 힘이 실린다. <타짜>에서 정 마담(김혜수)의 이미지가 아직까지 회자되고, 뛰어난 손놀림으로 매 시리즈마다 인상 깊은 활약을 선보이는 라이너스 콜드웰(맷 데이먼 역)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바로 역할의 편차 없이 잘 완성된 스토리와 그에 맞는 캐릭터의 완성도 때문이다. <도둑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또 어떤가? 화려한 캐스팅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 높은 완성도의 캐릭터들이 함께하는 하이스트 무비의 매력은 언제나 관객들의 즐거움을 채우는 데 모자람이 없다.

이번 영화 <꾼>에서도 캐릭터의 생동감은 의외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솔직히 기존에 제작된 하이스트 무비들 가운데 이 작품에 캐스팅된 배우들의 티켓 파워는 낮은 편에 속한다. 그나마 유지태와 현빈에게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스크린에서 큰 성적을 거둔 적은 없었던 배우다. 하지만 잘 설정된 캐릭터와 그에 모자라지 않는 연기는 꽤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 바깥에 있는,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를 작품 속으로 그대로 가져와 활용하는 감독의 노련함이 이 부분에서 돋보인다. 때마다 활력을 불어넣는 고석동(배성우 역)과 김과장(안세하 역)은 물론, 부정한 자기 확신에 빠져 기회만 노리는 부패한 검사를 연기하는 유지태의 모습도 <올드보이>에서 보여준 악역의 연장선 상에서 흥미롭게 보인다.

03.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진행성에는 큰 흠결이 없어 보이지만, 섬세함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이다. 특히 마지막에서 전복되는 이야기는 큰 반전에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모든 인물이 박희수 검사에 대한 피해자로 설명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괴리. 특히 단순한 피라미드 사기의 피해자일 뿐이었던 인물들이 검사를 상대로 완벽한 사기를 칠 정도의 전문성을 갖게 된다는 해설은 영화적 허용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작품의 타이틀이 <꾼>이기는 하나, 딱히 그 배경을 들여다보고 나면 정말 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박 검사와 황지성(현빈) 뿐일 정도다. 더구나 춘자(나나 역)와 같은 특정 인물의 배경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이다. 이는 박희수의 악행을 단순히 황지성의 아빠인 황유석(정진영 역)의 죽음으로만 연결 지으려는 시도에서 발생하는 단조로움인데, 그렇게 마무리하기에는 애써 완성해놓은 캐릭터들의 다채로움이 아쉽다. 한마디로 인물 각각은 빛을 내고 있음에도, 이야기 속에서 그 빛을 더하지는 못하고 있다 할 것이다.

 서로의 이해에 의해 속이고 이용하는 관계일 뿐인 두 사람.

서로의 이해에 의해 속이고 이용하는 관계일 뿐인 두 사람. ⓒ 쇼박스


04.

분량상의 문제 때문인지 정치권과의 결탁에 대한 부분, 언론과 관련된 소재들이 더 깊게 설명되지 않은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뒤집어보자면 이 영화에는 어떤 범죄를 저지른다는 행위 이면에 누군가의 부정을 처단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때문에 이 부분이야말로 희대의 사기꾼으로 등장하는 장두칠이라는 인물의 배후와 박희수 검사의 욕망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었다. 성의원(최일화 역)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박 검사의 모습이나 후반부에서 박 검사의 행동으로 위기에 처하는 고위 관직자들의 모습을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냈더라면 하이스트 무비의 변용으로서 그 역할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영화의 마지막을,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용도로 역시 인터넷상의 동영상을 활용하는 방식은 너무 안일하지 않았나 싶다. 지극히 안정적이면서도 특별할 것 없는 이 장치로 인해 고조되었던 갈등과 긴장이 해소되는 경과가 너무 짧아지고 말았다. 물론 이 역시 다른 장치를 활용할 경우 분량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겠으나 이로 인해 다소 힘이 빠지고 만다.

05.

작품의 마지막에서 노골적으로 이 작품의 다음 수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 역시 흥미롭다. 보통의 경우에 하이스트 무비를 제작 단계에서부터 시리즈물로 생각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등장하는 인물이 많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많은 제작비를 쓰게 되기 때문. 먼저 공개를 한 뒤에 흥행이 보장될 경우 그다음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모든 작품들이 그러했다.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 2>(가제)의 제작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의중을 미리 드러냈다고 하더라도 <꾼>의 다음 작품이 제작되기 위해서 역시 흥행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번 작품의 제작비는 40-50억 정도로, 스케일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수준이다. 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증가할 제작비를 막을 도리는 없다. 과연 <꾼>은 작품을 통해 선언한 대로 차기작을 무사히 그려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작품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 궁금함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영화 무비 현빈 유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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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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