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호 KBS새노조 위원장

성재호 KBS새노조 위원장 ⓒ 권우성


인터뷰를 위해 지난 21일 방문한 여의도 KBS 새노조 사무실. 조합원들은 갑자기 잡힌 긴급 회의에 몰두하고 있었다. 길어진 회의 탓에 허겁지겁 회의실 밖으로 나온 성재호 KBS 새노조 위원장은 몹시 바빠 보였다.

어색하게 사진 취재에 응하던 성 위원장은 "파업 중이라 멋진 포즈를 잡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지금 가장 답답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시간이 흐른다는 게 가장 답답하다"고 답했다.

"국민들이 언제까지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떨어진 신뢰와 사랑을 극복해야 그나마 국민들이 공영방송을 봐줄 것이다. 물론 불안감은 없다. 어차피 나갈 사람들이고 청산될 사람들인데 저렇게 버티면서 하루하루 시간을 빼앗고 있다. 박근혜도 어차피 쫓겨날 대통령이었는데 국민들이 하루하루를 아까워하지 않았나. 마찬가지다."

성재호 위원장은 "가능하다면 파업을 11월 말에서 12월 초에는 끝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KBS 새노조 집행부는 고대영 사장이 내려올 때까지 파업 대오를 유지할지 아니면 한 이사가 사퇴해 KBS 이사회 여야 비율이 역전돼 승리의 발판이 마련되면 파업을 잠시 중단할지 논의하고 있다.

성 위원장은 최근 고대영 KBS 사장의 '방송법이 개정되면 사퇴한다'는 '조건부 사퇴 표명'에 대해 "사기극이고 정치적인 술수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고대영 사장의 '조건부 사퇴 표명'에 파업을 접고 새노조와 노선을 달리한 KBS 노동조합(구노조)에 대해서는 "그나마 그쪽에서 파업하던 사람들도 다 새노조 쪽으로 왔다"며 "KBS 노동조합은 오히려 새노조의 파업 대오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지난 9년 동안 KBS 때문에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이 있다. 정상화 과정 속에서라도 그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반성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며 "어떤 식으로든 방송을 통해 그분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다음은 성재호 KBS 새노조 위원장 일문일답.

 성재호 KBS새노조 위원장

성재호 KBS새노조 위원장 ⓒ 권우성


- 오늘(21일)로 벌써 파업 79일차고 MBC에서는 최근 사장이 물러나고 파업을 중단했다. 심정이 어떤가?
"MBC랑 동시에 끝날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먼저 끝날 수도 있고 MBC가 먼저 끝날 수도 있었는데 MBC 상황이 먼저 해결된 거라 본다. 집행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 싸움은 사장 하나를 쫓아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YTN만 봐도 현 정부 하에서 사장이 임명됐지만 출발부터 애를 먹고 있지 않나. 우리 역시 얼추 다 왔다고 생각한다. 걱정해주시는 건 고마운데 내부적으로는 크게 신경도 안 쓰고 별 문제가 없다. 다만 조합원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을까 봐 그거 딱 하나 걱정된다."

- 조합원들의 경우 '이길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게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것 때문에 내재한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MBC의 경우 사장을 내쫓고 파업을 종료했지만 우리 역시 그렇게 할지는 모르겠다. 고대영 체제를 지탱하는 거수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이사들이 자리를 내놓게 된다면 파업 중단을 고려할 수도 있다. 조합원들이 불안해하는 부분은 있겠지만 우리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11월 안에 승리의 교두보를 마련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고 정 안 되더라도 12월 초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보려 한다. 파업이 80일째고 100일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과연 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파업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승리할 때까지 갈 것'이라고 하셨는데.
"당연히 승리할 때까지 간다. 그런데 고대영 사장이 해임될 때까지 파업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파업을 중단하고 현명하게 대처를 할 수도 있다. 우리도 동계 올림픽을 준비해야 하고 채널 경쟁력도 고려해야 한다. '고대영 사장이 생각하는' 채널 경쟁력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잊히면 안 되지 않나. 파업 대오를 내부 투쟁으로 전환할 수도 있고 투쟁의 방법은 여러 가지라 본다. 파업이 길어질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조만간 결단을 내리겠다."

- 그렇다면 '출구전략'을 어떻게 세우고 있나.
"집행부에서 논의 중이다. 지금으로선 고대영 사장이 물러나겠다는 뜻을 갖고 있지 않고 KBS가 동계 올림픽을 치르든 말든 예능이 결방되든 말든 자기 임기만 채우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로선 빨리 해임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해임에 동의하는 이사분들을 모셔야 하지 않나 싶다."

- 최근 이사들이 있는 곳에서 장외 투쟁을 이어나가는 것도 그 전략의 연장선상인가.
"그렇다. 고대영을 해임시킬 수 있는 이사들을 설득시킬 수밖에 없다. 동시에 그 사람들이 공영방송 이사로서 자격이 있는지도 묻는 거다. 애초에 맡을 자격이 없다고 본다. 방송법에 따르면 KBS 이사는 각 부문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감사원이나 방통위가 법에 따라 이 사람들에 대해 자격이 있는지 판단을 해서 이사들을 사퇴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KBS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촛불 국민들이 우리에게 준 숙제이자 과업이다. 촛불 국민들이 뭐라고 했나. 적폐를 청산하라고 하지 않았나."

"망가진 KBS 부끄러워... '언론적폐 청산', 촛불국민이 준 숙제"

 성재호 KBS새노조 위원장

성재호 KBS새노조 위원장 ⓒ 권우성


- 아무래도 2016년 촛불 집회 당시 'KBS가 망가졌다'는 걸 좀 더 체감했겠다.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우리 취재 차량에 '니들도 공범'이라고 붉은색 페인트로 어느 국민이 써놨을 때... 그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왜 오해를 받지?'라며 가슴이 아픈 게 아니라 '우리가 범죄자'라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나도 공범자가 됐구나. 당시 기자들이 현장에 접근을 못 했고 마이크도 잡기 어려웠다. 나도 앞에 나가 연설을 했지만 연설을 하는 와중에도 나를 향해 욕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국민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KBS가 해온 짓이 있는데."

- KBS 뉴스가 신뢰도나 영향력에서 1위를 할 때도 있었는데.
"얼마 전 했던 어느 조사에서는 10위권 안에도 못 들었다. 그걸 봐서라도 현 경영진은 자격이 없는 거다. 1등 하던 회사를 삼류로 만들어 버렸으면 부끄러워서라도 나가야지. 이인호 이사장이 '누가 물러나라고 하느냐'고 '많은 국민들은 KBS가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고영주도 똑같은 소릴 했다. 우리가 보기엔 미친 소리다."

- 방통위나 정권을 잡은 민주당 측에서 총파업에 개입해 이 사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촛불 국민들이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의 뜻을 받든다면 그런 식으로는 할 수 없다. 결정적으로 우리들도 권력이 개입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건 그들이 가진 권한을 국민의 요구에 의해 합법적으로 행사하라는 거다. 고영주 이사장에 대해서도 합법적으로 해임할 수 있는 근거들이 있고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으면 따라야 한다. 그것마저 외면한다면 적폐 세력을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고대영 사장도 충분히 해임 사유가 넘치고 대통령이 해임시켜도 무방하다고 보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부담스럽다. 구성원의 요구에 맞춰 절차대로 행하는 거지."

- KBS가 정상화 됐을 때 이것 하나만큼은 되돌려 놓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지금은 파업 승리가 눈앞의 과제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약속을 드리긴 어렵다. 사실 참 많지만 지난 9년 동안 KBS 때문에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이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용산참사 희생자분들부터 세월호 유가족들도 마찬가지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이나 농민들도. 공영방송의 보도로 인해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으셨다. 그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반성을 하고 정상화 과정 속에서라도 그분들의 바람을 실을 수 있는 것들을 시급하게 해야 한다."

- 지난 10일 KBS 노동조합(구노조)에서 파업을 중단해 조합원들의 동력이 떨어지거나 그러진 않았나.
"정반대다. 그나마 그쪽에서 파업했던 사람들은 다 이쪽으로 왔다. KBS 노동조합은 이미 추석 전에 파업 자체를 지명 파업으로 전환해 파업 인원이 전국적으로 100명도 되지 않았다. 그들이 파업 대오에 영향을 미친 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KBS 새노조 조합원이 2200명 정도 되는데 다음번에는 교섭대표 노조를 우리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성재호 KBS새노조 공영방송_총파업 언론노조_총파업 KBS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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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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