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수상작인 영화 <죄 많은 여인>의 한 장면

2017년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수상작인 영화 <죄 많은 여인>의 한 장면 ⓒ 한국영화아카데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작은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여인>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과정을 거친 감독의 첫 번째 영화가 의미 있는 상을 수상한 것이다. <죄 많은 여인>은 주연을 맡은 전여빈 배우가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2관왕이 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전주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으로 수상한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 역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작품이다. 이들 작품들은 현물 지원으로 이뤄진 장비와 후반작업을 제외하면 실제 현장에 투입된 비용은 7천만 원 안팎에 불과한 초저예산 영화였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극장 개봉을 통해 4만 4천 관객을 동원하며 저예산독립영화 흥행 성공신화를 이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투입된 제작비 대비 수익을 낸 독립영화였다. <죄 많은 여인> 역시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 만들었고, 비슷한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화려한 수상에 늘어나는 근심

한국영화아카데미(유영식 원장)가 국내외 영화제를 휩쓸면서 주목받고 있다. 발군을 실력을 발휘하며 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만 미장센단편영화제 2개 부문 최우수작품상이 아카데미 감독 작품이었고, 지난해 개봉했던 <연애담>은 올해 부일영화상과 춘사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두각은 장편과정이 개설된 2007년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상의 경우 2008년 백승빈 감독의 <장례식의 멤버>가 특별언급됐고, 2009년에는 소성민 감독의 <나는 곤경에 처했다>가 2010년에는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이 연이어 수상을 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홍석재 감독의 <소셜 포비아>나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도 대표적 작품들이다.

영화진흥위원회 게시물 중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는 것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입시 안내 공고 일 만큼 안팎의 관심도 상당하다. 평균 경쟁률이 15:1 정도인데, 올해는 연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영상포트폴리오 연출과정도 모집하면서 예년보다 높은 20: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8월에는 미국의 영화전문지 <헐리우드리포터>가 선정한 세계 15대 영화학교에 선정되며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하지만 화려한 수상 이면으로 기존의 성과가 모두 사라질 위기감이 생길만큼 어두운 그림자가 덮이고 있는 것은 요즘 아카데미가 처한 딜레마다. 내년 3월에 부산으로 강제 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간 쌓인 역량과 위상이 모두 무너질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영화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치열하게 이뤄지는 교육과정에 있다. 촬영 전 수개월 동안 시나리오도 숙성과정을 거치는 데다 편집도 6개월 이상 걸리고 과정마다 논쟁과 비판이 이어지면서 높은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5천만 원~8천만 원 정도의 초저예산 제작비로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한국영화산업의 중심의 충무로의 지원 덕분이었다. 고가 촬영 장비와 기자재 등을 현물로 지원 받고, 필요한 영화 인프라가 갖춰진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부산 이전으로 인한 '경쟁력 상실' 우려

 지난 2월 한국영화 아카데미 졸업식과 입학식 모습

지난 2월 한국영화 아카데미 졸업식과 입학식 모습 ⓒ 한국영화아카데미


문제는 부산으로 이전하면 이런 조건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경쟁력이 상실된다는 데 있다. 일반적인 지역영화학교로의 전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한 관계자는 "대책 없는 부산 이전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부산에 영화 제작의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카데미 관계자는 "교육과정이 영화를 만드는 작업인데, 부산에 메이저 제작사들이 없다 보니 인력의 문제가 따른다"며 "서울의 경우 초저예산으로 작업해도 친구나 지인들을 통한 제작 인력이 수급이 쉬워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데, 부산은 그게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한 "아카데미가 국내외 영화제와 흥행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서 여러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신인 배우들을 작품에 써달라는 요청도 많아 기획사들과 공조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는 오가는 거리 때문에 출연 등에 어려움이 있다"며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현재 장편과정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 부산으로 이전한 상태에서는 지금처럼 저예산으로 질적 수준이 높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정부 기관의 지방 이전 방침에 따라 내년에는 이전에 예정돼 있다. 지난해 개교한 부산 수영구의 아시아영화학교가 자리한 곳에 건물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도 마련되지 않아,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있는 대부분의 교수나 학생들 입장에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데도 이전만 강조할 뿐, 기반 마련에는 소극적인 자세다. 간단히 학교만 옮기면 된다는 인식이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아카데미 관계자는 "지방자치발전위원회를 통해 최소한의 예산이라도 확보하려고 하는데, 위원장이 공석이라 아무 진척도 없고 이를 해결해 줘야 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마저 공석이 길어지면서 속만 끓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지난 9월부터 부산 쪽에 학생들이 기숙사로 활용할 공간을 물색했으나 기숙사 예산 지원 문제가 확정되지 않으니 계약조차 할 수 없었다"며 "지금도 어떤 진척도 없다. 아카데미의 추락이 우려되는 상항"이라고 말했다.

이전 입장만을 강조하던 문화체육관광부나 영화진흥위원회,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등이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이전 불가피 하다면 제대로 준비해야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제작한 주요 작품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제작한 주요 작품 ⓒ 한국영화아카데미


아카데미의 내년 예산도 올해 대비 10% 삭감될 기조로 알려지고 있어, 이전 이후의 운영도 근심거리다. 예산을 줄이기만 하고 아무런 대책 마련이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학교만 옮기라는 것에 대해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물론 충무로 영화계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영화계 인사들은 이전을 서두르기보다는 책임 있는 기관의 대표자 인선이 완료된 후에 최소한의 인프라 구축 등을 논의해 제대로 준비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힘겹게 구축해 놓은 성과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김이다 PD는 "이전부터 반대한다는 입장을 계속 전달했고 전임 영진위원장과 면담도 했다. 법에 따라 이전이 불가피하다면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며 "아무 대책 없이 학교만 옮기게 하는 것은 그간 쌓아온 아카데미를 역량을 죽이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2기 출신 김정진 감독은 "정부 방침에 따라 옮겨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해도 인프라 조성은 필요하다"며 "그런 대책도 없이 학교만 옮기라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비판했다. 아카데미를 지원해 온 한 영화제작자 관계자도 "그간 쌓아올린 위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준비 없는 이전은 재고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충무로의 대체적인 여론은 부정적이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국제영화비즈니스아카데미 한선희 교수는 "지역영화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부산이 잠재력이 있기에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이전이 영화산업의 균형발전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당장의 인프라는 취약해 곧바로 성과가 나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이전의 효과를 기대해야 할 것"이라며 "서울을 벗어난 새로운 영화에 대한 수요도 있고 의욕도 있는 만큼 계획대로 이전해야 한다는데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부산 영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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