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에 오랜만에 깜짝 놀랄 만한 대형 이적이 발생했다. 21일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가대표 포수인 강민호가 FA자격을 얻어 삼성 라이온즈로 팀을 옮긴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팬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롯데가 강민호와의 협상결렬을 발표한지 하루도 되지 않아 삼성은 4년 총액 80억 원의 조건으로 강민호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강민호는 자타공인 롯데를 상징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2004년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 전체 17순위로 롯데에 지명된 이래 강민호는 무려 14년간 거인군단의 든든한 안방마님 자리를 지켰다. 또 이대호와 더불어 '사직의 아이돌'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롯데에서 통산 149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7, 218홈런 778타점을 기록했으며, 올해도 크고 작은 잔부상에 시달리면서도 129경기나 출전해 5년만의 가을야구 진출에 힘을 보탰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롯데의 강민호" 응원가는 한번쯤 들어봤을만큼 야구팬들에게 '강민호'와 '롯데'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처럼 보였다. 선수층이 넓지 않은 국내 야구의 특성상, 강민호처럼 기량과 실적이 검증된 주전급 포수의 이적도 흔치 않은 사례다.

 지난 6월 13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대 기아 타이거즈의 프로야구 경기. 7회말 2사 1,2루 롯데 강민호가 역전 3점 홈런을 터트린 뒤 포효하고 있다.

지난 6월 13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대 기아 타이거즈의 프로야구 경기. 7회말 2사 1,2루 롯데 강민호가 역전 3점 홈런을 터트린 뒤 포효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민호는 왜 부산을 떠났을까

롯데는 2013년 강민호가 첫 FA 자격을 획득했던 시점에도 4년 75억으로 당시로서는 최고대우를 보장하며 강민호의 가치를 인정해줬다. 최근 몇 년간 KBO리그를 강타한  FA 몸값 폭등의 본격적인 시작은 강민호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민호 역시 롯데에 대한 깊은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냉철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영원한 의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롯데는 당초 강민호에게 삼성이 제시한 조건과 같은 4년 80억의 계약을 제시했으나 선수가 시장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전력보강이 시급한 삼성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민호를 잡는 데 성공했다.

워낙 충격적인 이적이었던 만큼 여러 가지 의문점과 엇갈린 평가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단 많은 야구 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은 역시 '강민호가 부산을 떠난 이유'다.

롯데와 삼성이 강민호에게 '공식적으로 제시한(것으로 알려진)' 계약 규모는 동일하다. 같은 값이면 이미 프랜차이즈 스타 대접을 받고 있는 팀에서 명예롭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명분으로나 실리로나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지방 구단에서 뛰던 선수들이 생활 환경이 더 편리한 수도권 구단으로의 이적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롯데의 연고지 부산과 삼성의 연고지 대구는 같은 영남권으로 큰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전력적인 측면에서 봐도 리빌딩을 새롭게 시작한 삼성보다는 롯데가 당장 가을야구에 더 가깝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석연치 않은 부분이 하나둘이 아니다 보니, 많은 야구 팬들은 강민호의 계약조건이 알려진 것보다 축소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알려진 금액보다 10억 이상이 차이가 난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강민호와 삼성 측은 이에 대해 근거없는 소문이라고 주장하며 "발표액 이외에 추가된 금액은 한푼도 없다"고 단호히 부정했다.

일각에서는 결국 '보장액'의 차이로 보는 해석도 있다. 같은 총액이라도 삼성의 제시한 조건은 순수한 보장액이었고, 롯데가 제시한 계약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만일 여러 가지 옵션이 추가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는 선수 입장에서 매우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롯데 자이언츠, 내부FA 유출... 팬들의 원성

강민호와 롯데의 결별 배경을 두고 오히려 구단 측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몸이 재산인 프로야구 선수가 더 나은 조건을 쫓아 떠나는 것이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조건에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은 이상, 강민호처럼 한 구단에서 오랜 시간 헌신해왔고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가 FA 자격을 얻었다고 하루 아침에 훌쩍 떠나는 것도 그리 쉬운 결정만은 아니다.

그런데 롯데는 몇 년째 그 어려운 걸 기어코 해내고(?) 있다. 실제로 롯데는 간판스타들의 내부 FA 유출이 계속되고 있다. 2011년 해외 진출을 선언했다가 6년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한 이대호를 제외하면 2013년 김주찬(기아), 2014년 장원준(두산)은 모두 롯데를 떠나 타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잡았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니지만 롯데에서 최전성기를 보낸 '부전드' 홍성흔(전 두산, 은퇴)도 2012년 다시 FA 자격을 얻자마자 친정팀 두산으로 컴백했다.

황재균(KT)도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KBO리그로 다시 유턴하면서 친정팀 롯데가 아닌 kt행을 선택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롯데와 헤어진 이후 FA 대박은 물론이고 심지어 우승까지 모두 거머쥐었으니 결과적으로 롯데를 떠난게 올바른 선택이었던 셈이다.

설마했던 강민호마저 팀을 떠나게 되면서 이제 롯데에서만 선수생활을 보낸 '원클럽 맨'이라고 할 만한 프랜차이즈 스타는 손아섭 정도만이 남았다. 지금으로서는 메이저리그 도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손아섭도 팀에 잔류한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KBO 역사상 최장 기간, 1992년 우승 이후 25년 연속 무관에 허덕이고 있는 롯데다. 이렇게 핵심 선수들의 이탈이 계속된다면 내년 가을야구는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물론 몸값이 지나치게 오르거나 해외진출 의지가 확고해 구단이 잡을 수 없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유독 정상급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게 되면 롯데를 떠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단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 구단이 간판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 협상력에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재미있는 사실은 강민호를 영입한 삼성 역시 얼마 전까지 최형우(기아)-차우찬(LG)-박석민(NC) 등 내부 FA들을 줄줄이 놓쳐 비판을 들었다는 것.

 지난 8월 22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 경기 2 회초 1사 상황에서 롯데 강민호가 타격하고 있다. 강민호는 4회초 솔로 홈런으로 추가점을 기록했다.

지난 8월 22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 경기 2 회초 1사 상황에서 롯데 강민호가 타격하고 있다. 강민호는 4회초 솔로 홈런으로 추가점을 기록했다. ⓒ 연합뉴스


국대급 포수 강민호의 자리는 누가 메울 수 있을까

롯데는 당장 강민호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유망주 나종덕을 비롯하여 김사훈, 안중열 등이 있지만 경험이 중요한 포수 포지션에서 아직 강민호의 존재감을 메우기에는 부족하다. 손아섭의 거취도 빨리 결정을 내려야한다. 이대호, 송승준이 모두 30대 중반으로 남은 선수생활이 길지 않은 상황이다. 확실한 전력보강이 없다면 롯데의 미래는 더 암울해질 수도 있다.

삼성은 공수를 겸비한 강민호의 영입으로 포수와 중심타선을 보강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하고 있다. 한동안 FA시장에서 소극적인 투자로 비판을 받았던 것과 달리, 오랜만에 '큰 손'으로 돌아온 것도 의미가 있다. 리빌딩을 진행중인 삼성으로서는 젊은 선수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강민호의 노련한 리더십에게도 거는 기대가 크다.

삼성은 일단 강민호의 영입을 끝으로 FA 시장에서는 한발 물러나고 외국인 선수 영입과 내부 육성에 주력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FA시장에는 아직 민병헌, 김현수, 손아섭 등 공격력이 뛰어난 외야수 대어들이 남아있다. 2년 연속 가을야구 탈락으로 절치부심한 삼성의 지갑이 다시 한번 열릴 지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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