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1997년 11월 21일 IMF 구제금융 신청, 12월 3일 210억 달러 규모 구제 금융 승인. 이 과정에서 당시 기업체들은 연쇄 도산하고 대규모 실직 및 실업이 발생하는 등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 위기'에 내몰렸다. 다행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며 2000년 12월 모든 차관을 상환하며 어려움을 극복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IMF 후유증이 극에 달했다. 가요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찌보면 IMF 위기는 향후 21세기 가요계의 미래 마저 뒤바꾼 대형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댄스 음악은 NO! <가요톱텐> 폐지 직격탄

 1990년대 가요계를 타임슬립 형태로 다뤘던 KBS 예능드라마 <최고의 한방> 한 장면. 극중 인기 듀엣 제이투(윤시윤-홍경민)는 <가요톱텐> 1위 가수라는 설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1990년대 가요계를 타임슬립 형태로 다뤘던 KBS 예능드라마 <최고의 한방> 한 장면. 극중 인기 듀엣 제이투(윤시윤-홍경민)는 <가요톱텐> 1위 가수라는 설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 KBS, 몬스터유니온


암울했던 사회 분위기로 인해 그 시절 가요계를 지배했던 댄스 음악은 '향락 조장'이라며 마치 IMF 사태의 원흉처럼 취급되곤 했다. 특히 각종 가요 음악 프로그램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당시 가장 큰 권위와 인기를 자랑하던 KBS 2TV 순위제 프로그램 <가요톱텐 >(1981~1998)의 폐지다.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있는 시대와 걸맞지 않는다는 게 폐지의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결국 종영된지 얼마 안되어 1998년 6월 <뮤직뱅크>이 신설되면서 이러한 명분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그룹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이른바 1세대 아이돌들은 각종 규제의 틈바구니에서도 존재감을 키웠고 조성모, 김정민, 박상민 등의 발라드 음악들도 IMF 이후 가요계를 이끌어 나갔다.

재벌 그룹 계열사들의 퇴장... 도매상 연쇄 부도

 1999년 1월 삼성뮤직을 통해 발매된 토이(유희열)의 < A Night IN Seoul >. IMF 사태 이후 2~3년 사이 그룹 계열사 음반 제작 업체들은 대부분 사업을 접고 말았다

1999년 1월 삼성뮤직을 통해 발매된 토이(유희열)의 < A Night IN Seoul >. IMF 사태 이후 2~3년 사이 그룹 계열사 음반 제작 업체들은 대부분 사업을 접고 말았다 ⓒ 이앤이미디어


1992년과 1993년 오렌지(제일기획), 나이세스(삼성전자) 등을 시작으로 1990년대 재벌 그룹들이 계열사를 앞세워 속속 음반 제작에 나섰다. 메탈포스(SKC), 대흥기획(롯데), LG미디어(LG), KNOX(제일제당), DMR(새한미디어) 등이 각각 크래쉬, 솔리드, 윤도현, 낯선사람들 등 다양한 장르의 신인들을 발굴했다. 기존 음반 기획사들과 선의의 경쟁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

하지만 IMF의 영향 속에 결국 그룹 계열사 업체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씩 음반 사업에서 발을 빼고 말았다. 1990년대 중반 삼성뮤직으로 브랜드를 일원화했던 삼성은 위기 속에도 토이, 서태지 컴백 솔로 음반을 내놓으며 생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1999년 이후 완전히 사업을 포기하고 만다. 나머지 업체들 역시 비슷한 시기 업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음반 유통의 큰 축을 담당하던 도매상들의 부도도 가요계의 큰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동양, 국도, 대일레코드 등이 부도로 문을 닫는 바람에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했고 이는 음반 제작자들의 2차 부도로 연결되기에 이른다.

음반 불황의 시발점, 각종 편집 음반으로 불황 타개 모색

 1990년대 팝 편집음반(컴필레이션)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던 < MAX 3 > 표지.  당시 가요-팝 음반 시장에서 기존 인기곡들을 모은 이런 종류의 음반은 나름 불황을 겪던 업계의 효자 상품 중 하나였다

1990년대 팝 편집음반(컴필레이션)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던 < MAX 3 > 표지. 당시 가요-팝 음반 시장에서 기존 인기곡들을 모은 이런 종류의 음반은 나름 불황을 겪던 업계의 효자 상품 중 하나였다 ⓒ 에스티엠


이러한 악재가 이어지면서 1997년 당시 50만장 이상 판매된 음반이 1997년 15종에 달했지만 이듬해 1998년에는 10종으로 대거 축소된다.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새 음반 제작에 어려움을 겪던 일부 제작자들은 기존 히트곡들을 짜깁기한 각종 편집음반 발매로 위기 타개에 나서기도 했다.

<명작>, <걸작>, <추억 만들기> 등의 시리즈들은  발라드 인기곡들을 CD, 테이프 한 장에 대거 담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었기 때문에 아직 MP3가 보급되기 이전인 1990년대 후반 음반 매장의 효자 품목으로 자리매김한다.

<클럽DJ 리믹스> 등의 댄스 모음집, <파워 오브 러브>, <디스 이즈 록 발라드>, <맥스>, <나우> 등의 팝 모음집도 이 무렵의 인기 음반 중 하나였다.

IMF 위기를 힘겹게 넘긴 제작자들... 21세기의 주역이 되다

 지난 11월 소속 연예인들과 함께 할로윈 파티를 가진 SM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인 이수만 대표 프로듀서 (SM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 11월 소속 연예인들과 함께 할로윈 파티를 가진 SM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인 이수만 대표 프로듀서 (SM 공식 인스타그램) ⓒ SM엔터테인먼트


경영난에 몰린 중소규모 제작자들은 사무실을 닫고 사업을 접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대형 스타들을 발굴하면서 위기를 넘긴 곳들도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대한민국 가요계 굴지의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SM, YG 등이 대표적인 기획사다.

1996년 H.O.T., 1997년 S.E.S, 1998년 신화, 1999년 플라이투더스카이를 연이어 성공시킨 SM(이수만 대표 프로듀서)은 2000년대 초반 잠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지만 이를 잘 넘기며 국내 최고 기획사로 발돋움했다.

이무렵 '양군기획'이란 이름으로 야심차게 출발했던 YG(양현석)는 첫 제작 그룹 킵식스의 실패로 쓴 맛을 보기도 했지만 그룹 지누션, 원타임 등 힙합 팀들을 앞세워 사업의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반면 IMF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안타깝게 좌초한 업체 역시 적지 않았다. 1980~90년대 빼어난 음악성을 자랑하던 동아기획, 하나음악 등은 2000년대 초반 간판을 내리고 말았고 다양한 댄스 성향 음반들을 발매하던 월드뮤직 등의 제작사도 문을 닫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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