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이 정규 2집 <퍼펙트 벨벳(Perfect Velvet)> 으로 돌아왔다. 최근 미니 앨범 <더 레드 썸머(The Red Summer)>가 불과 3개월 전에 나왔으니, 굉장히 빨리 돌아온 편이다. 굉장히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정규 앨범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좋은 작품이 나왔다. 뒤에 이어질 긴 글을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선보인 미니멀한 신디 사운드와 두꺼운 리듬 앤 블루스 풍의 백보컬은 화룡점정을 찍었고 새로 시도된 여러 장르의 혼합은 앞으로의 활동의 밑그림을 그려냈다.

<퍼펙트 벨벳>을 듣기 전에 

본격적으로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레드벨벳이 2가지 콘셉트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레드'와 '벨벳'이 그것인데, 흔히 '레드'는 강렬하고 뜨거운 색채의 사운드를, 벨벳은 반대로 부드럽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보여준다. 여기서 필자가 생각하는 한 가지 차이점을 더 제시하고 싶은데 사운드를 만드는 방식의 차이이다. 그녀들의 정규 1집 <더 레드(The Red)>를 들어보면 베이스 기타, 색소폰, 드럼 세트 등등 실제 악기의 사운드를 사용하여 소리의 벽을 쌓고 있다.

가끔 가상 악기의 사운드를 사용하더라도 미니멀하지 않다. 이 특징은 대다수의 '레드' 콘셉트 음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벨벳' 콘셉트의 음악들은 반대로, 미니멀한 신디사이저 사운드로 베이스와 멜로디를 만들고 빈 사운드를 두꺼운 보컬로 채워 소리의 벽을 쌓는다(물론 '레드' 앨범 내에서도 '벨벳'스러운 트랙이 나오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퍼펙트 벨벳>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벨벳'의 앨범이다.

 레드벨벳 피카부

ⓒ SM 엔터테인먼트


레드벨벳, 자신들의 음악의 밑그림을 그리다

이제 <퍼펙트 벨벳>의 다른 트랙들을 들어보자.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퍼펙트 벨벳>은 단지 과거 레드벨벳의 음악적 방식을 답습하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큰 2가지 새로운 시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선 필자는 베이퍼웨이브가 차용되었다 생각한다. 베이퍼웨이브는 재편집하여 비꼰 1980~1990년대의 문화라 요약할 수 있다. 원본을 극저음으로 만들어 기계음처럼 만들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음질을 저하시키거나 신디 사운드를 흐릿하게 만들어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베이퍼웨이브는 2010년대 와서 힙스터들 사이에서 크게 떠오른 새로운 장르지만, 이 장르가 메인스트림에서 활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베이퍼웨이브'에 대해 궁금하다면 매킨토시 플러스의 '리사 플랭크420/현대의 컴퓨(リサフランク420/現代のコンピュー)'를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1980년대 유명 팝 가수 다이애나 로즈의 'It's your move'를 샘플링한 곡으로, 언급한 베이퍼웨이브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필자는 레드벨벳이 <퍼펙트 벨벳>에서 이러한 베이퍼웨이브 사운드를 어느 정도 차용했다고 생각한다. 'Kingdom Come'의 경우 여러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재편집된 듯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Perfect 10'의 경우에는 비트의 느릿느릿하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베이퍼웨이브'적이라 할만하다. 물론, 'Perfect 10'의 경우에는 하우스 음악에 더 가깝다(하우스 음악이란 간단히 말해 디스코 리듬을 기반으로 하여 재즈, 펑크 등의 음악 장르를 샘플링해 첨가한 일렉트로니카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필자는 이 앨범에 힙합이 차용되었다고 판단한다. 힙합은 정규 1집 <더 레드>의 7번 트랙 'Time Slip'에서 약간 시도한 바 있다. 이번에 시도한 힙합의 색깔은 그때보다 좀 더 뚜렷하다.

'퍼펙트 벨벳'에서는 'Look', 'I Just' 같은 곡에서 시도한 빠른 하이햇 필두의 트랩 비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두 트랙은 힙합의 색깔이 그리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Attaboy'의 경우에는 힙합의 색깔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곡의 경우에는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에서도 힙합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곡이라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이 곡은 힙합의 느낌을 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둥둥대는 베이스를 필두로 해서 만들어진 'Attaboy'의 비트는, 퀄리티를 떠나 시도만으로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레드벨벳 피카부

ⓒ SM 엔터테인먼트


결론, 아이돌은 아티스트로 나아가고 있다

몇 년 전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해당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아이돌의 음악을 알게 모르게 멸시해왔다. 개성없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음악이라고, 음악 생태계를 비주얼로 어지럽히는 교란종이라고 말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리스너들이 보통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구분했다. 물론 그런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 필자도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필자도 그래왔으니까.

그후 수많은 기획사 사장들과 아이돌들이 인식의 전환을 꾀했다. 수많은 해외 프로듀서들이 아이돌 음악을 프로듀싱했고, 기존 가수들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춘, 이른바 '실력파 아이돌'들이 대거 등장했다. 실제로 이러한 노력들은 주효했다. F(x)의 <핑크 테이프(Pink Tape)>, 레드벨벳의 <더 레드>와 같은 앨범은 아이돌 음악의 높아진 수준을 증명하듯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며 평단에서 호평 받았다. 분명 아이돌 음악의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비단 저 두 음반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많은 리스너들이 스스로 '아이돌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No'라고 결론냈었다. 그러나 <퍼펙트 벨벳>은 결론을 뒤집었다. 필자와 함께 'No'를 외쳤던 리스너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퍼펙트 벨벳>을 들어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자문의 답이 'Yes'로 뒤집어지리라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돌은 아티스트로 나아가고 있다.

첨부파일 Perfect velvet.jpg
레드벨벳 아이돌 음악 신보 PERFECT_VELV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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