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MBC 라디오가 정상 방송을 재개했다.

20일 MBC 라디오가 정상 방송을 재개했다. ⓒ MBC 노조


"여러분께서는 지금 MBC 라디오 음악여행을 듣고 계십니다. 11월 20일 월요일 MBC 라디오가 다시 시작합니다. 기다려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 시절을 상징하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15일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아래 MBC 노조)가 총파업 중단과 방송 복귀를 선언한 직후, MBC 라디오에서는 위와 같은 손정은 아나운서와 박경추 아나운서의 안내 멘트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를 마주하는 MBC 구성원들이나 청취자들의 심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경추 아나운서와 손정은 아나운서는 지난 2012년 총파업 이후 5년간 방송 일선에서 철저히 배제됐었다. 그런 이들이, 김장겸 전 사장 해임 이후 MBC와 MBC 라디오의 '밝은 미래'를 다짐하는 선봉에 섰기 때문이다.

이 멘트를 녹음할 당시, 담담한 두 아나운서와 달리 정작 이를 지켜보던 라디오 PD들이 더 '울컥해' 했다는 후문이다. 이 짧은 라디오 안내 멘트가 뭐라고, MBC 사측은 이 짧은 스팟 광고를 포함해 이들의 목소리가 국민들의 귀에 가 닿는 것을 그리 철저하고도 악질적으로 막아섰을까.

그렇게, 20일부로 MBC 라디오가 정규 방송을 재개했다. 김 전 사장이 해임된 지 7일 만이고, MBC 노조가 파업 철회를 선언한 지 5일 만이다. 오전 5시 표준FM <건강한 아침 이진입니다>와 FM4U <세상을 여는 아침 이재은입니다>을 시작으로 양대 라디오는 이날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그중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이 하차하고, 새로운 진행자와 함께 재개된 <변창립의 시선집중>의 이날 방송은 국민들과 청취자들의 '시선 집중'을 받기에 충분했다. 

주목할 만한 <시선집중>의 변화

"지난 17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저희 <시선집중>이 70여 일간 멈춰서 섰습니다. 음악 방송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국민의 소중한 자산인 전파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길고 복잡한 이야기로 핑계 대거나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공영방송 MBC를 지키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한 가장 큰 책임은 저희 MBC 구성원 모두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방송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돈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방송, 강한 자보다 약한 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송,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방송으로 갚아나가겠습니다. 짧게는 두 달여, 길게는 수년간 불편함을 참고 인내해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거듭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바른 방향으로 다시 달리겠습니다."

이날 오프닝 멘트와 변창립 아나운서의 다짐은 담백했지만, 호소력 짙었다. 피소자 신분인 신동호 국장 후임으로 마이크를 잡은 변 아나운서는 부당 전보의 피해자로 심의국에서 근무해 왔다.

1984년에 입사한 MBC 최고참 아나운서인 변 아나운서. "공영방송 MBC를 지키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한 가장 큰 책임은 저희 엠비시 구성원 모두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분명 진정성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무게감을 던져주고 있었다. 이날 <시선집중>은 확실히 변 아나운서의 진행도, 오프닝 멘트도, 방송 내용도 확실히 어떤 '상징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부당 전보로 아나운서국 떠났던 변창립-박경추,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출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가 총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업무 복귀를 시작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 로비에서 부당 전보로 아나운서국을 떠났던 변창립(가운데), 박경추(오른쪽 두번째) 아나운서가 본연의 업무를 하기 위해 출근하자, 동료 아나운서들이 안부를 물으며 반기고 있다.

▲ 부당 전보로 아나운서국 떠났던 변창립-박경추,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출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가 총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업무 복귀를 시작한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 로비에서 부당 전보로 아나운서국을 떠났던 변창립(가운데), 박경추(오른쪽 두번째) 아나운서가 본연의 업무를 하기 위해 출근하자, 동료 아나운서들이 안부를 물으며 반기고 있다. ⓒ 유성호


이날 정상화된 <시선집중>이 처음으로 전화 인터뷰한 이는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었다. 인터뷰이의 선정과 섭외 자체가 무척이나 상징적이라고 할까. 변 아나운서는 "파업을 옆에서 지켜보시면서 또 그동안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을 가슴 아프게 또 목격하시면서 앞으로 언론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유 위원장은 "사장이 누가 되든 누가 이사가 되든 흔들림 없이 언론의 공정성을 지켜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라고 본다"며 "특히나 저희와 같은 현장 피해자들 현장에서 큰 피해를 호소하고 있을 때 취재하는 동시에 아픈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역할도 해 주시길 부탁한다"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MBC는 왜곡 보도를 일삼거나 의도적으로 세월호 관련 이슈를 철저히 무시해 왔다. 소위 '보도금지', '방송금지' 지침이 윗선으로부터 하달됐다는 사실 역시 지난 8월 라디오 PD들의 기자회견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날 <시선집중>의 유 위원장과의 전화 인터뷰는 상징적일 수밖에 없었다. 변 아나운서는 최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이유로 고사를 하려고 했다. 나는 내년에는 안식년에 들어가고 내후년에는 정년을 맞는다. 그런데 후배들이 '이건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MBC 정상화를 위한 길에 의미 있는 작업'이라며 힘들더라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는 거의 협박하더라.

우리나라 정세나 천재지변이 일어난 상황에서 그런 이유로 (프로그램이) 음악만 내보내는 파행을 빚어야 하느냐며.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호했던 것 같다. 일단은 당분간 임시 진행자라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더 이상 마이크 앞에 서지 못할 거란 생각으로 5년을 보냈다", <미디어오늘>)

MBC 정상화의 신호탄들

MBC 라디오는 지난 9월 4일 노조의 총파업 이후 진행자 없는 음악방송으로 파행 운영돼 왔다. 이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가 한 "청취자분들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다시 만나도 좋은 방송, MBC 문화방송. 디스크자키 배철수입니다.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클로징 멘트는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했다.

그랬던 배철수와 함께, MBC 라디오의 간판 DJ도 이날 모두 복귀했다. 변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와 함께 이들 DJ들의 오프닝도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두시의 데이트> 지석진은 "84일 전 했던 약속이었던, 다시 돌아오는 날 웃으며 보자는 약속을 지키러 왔다"며 복귀 방송을 시작했다.

<굿모닝FM 노홍철입니다>의 DJ 노홍철 역시 "반팔티에 슬리퍼 신고 클로징 인사를 했던 내가 패딩 점퍼를 입고 다시 오프닝 인사를 한다"며 "어두웠던 날이 가고 새로운 날이 왔다. 기다려왔던 분들이 있어 가능했다.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큰절 올린다"는 인사로 청취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처럼, 84일 동안 DJ의 멘트 없이 음악만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MBC 라디오 청취자들 역시 이날을 "새로운 날"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MBC 라디오의 정규방송 재개야말로 MBC 정상화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라디오스타>나 <나 혼자 산다>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지난주부터 정상 방송을 내보냈다. 대부분이 외주 제작 드라마나 정상화의 시동을 건 라디오, 예능 부문과 달리 시사보도 부문의 정상화는 시간이 좀 더 걸릴 전망이다. MBC 경영진 전체의 재편이 보도 정상화의 중요 이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록 '배현진 <뉴스데스크>' 체제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지만, 시사보도 부문을 포함한 온전한 'MBC 정상화'의 출발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시선집중>의 변화 역시, 김장겸 전 사장 이후 MBC 정상화 수순의 '좋은 신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공영방송 MBC의 구성원들이 "달라지겠다"고 한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만 남았다.

 지난 13일 MBC 김장겸 사장에 대한 해임이 최종 확정된 가운데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 로비에서 파업 72일차 집회를 진행하며 김연국 노조위원장이 발언을 진행하고 있다. 2017.11.14

지난 13일 MBC 김장겸 사장에 대한 해임이 최종 확정된 가운데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 로비에서 파업 72일차 집회를 진행하며 김연국 노조위원장이 발언을 진행하고 있다. 2017.11.14 ⓒ 최윤석



MBC라디오 손정은 박경추 변창립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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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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