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다섯 번째 단편영화가 공개됐다. 지난 19일 방송된 <전체관람가>에서는 임필성 감독과 배우 전도연이 합을 맞췄다. 명실상부 전도연의 화제성은 감독의 명망을 압도했다. 그러나 전도연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다섯 번째 단편영화 <보금자리>가 다룬 가족의 모습이었다.

"설마 저게 사실이야?"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실이었다. 지난 2008년 '세 자녀 아파트 특별 분양 제도'를 악용해 아이를 허위 입양한 뒤 아파트를 분양 받은 사례가 적발됐다. 분양권을 되팔아 시세 차익을 챙긴 일당은 아이 역시 파양했다. 국내 보호 시설에 있는 아동은 친부모의 동의 없이 입양이 가능하고 그 대가로 금전이 오가더라도 처벌할 법이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었다(이후 2013년 7월부터 미성년자 입양 및 파양 시 반드시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민법이 개정됐다-편집자 주).

전도연이 설득해낸 가족의 이기심

 전체관람가 전도연

ⓒ JTBC


임필성 감독은 바로 이 공공연한 위법 사례에 착안해 '하우스 푸어'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런데 왜 전도연이었을까? 임필성 감독의 영화 <보금자리> 상영이 끝나고 감독들은 "전도연이 등장한 순간, 전도연의 관점으로 극에 몰입했다"고 입을 모았다. 즉, 아파트 분양을 위해 편법으로 아이를 입양한다는 부정적 설정조차 전도연의 연기력으로 설득시켰다는 뜻이다. 영화계 데뷔 20주년을 맞은 전도연은 독립 영화 진흥을 돕고자 기꺼이 <전체관람가>에 참여했다. 그 어느 때보다 배우 전도연의 존재감이 빛나는 이유다.

전도연이 입양아 '탁'(김푸름 분)을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과 위태로운 태도는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됐다. '가정'을 지키려는 자, 가족을 위태롭게 할 외부자의 경계선이 분명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저 나약한 이방인이었던 한 소년은 순식간에 호러와 스릴러의 주인공으로 돌변해 전도연의 가정을 위협하는 강력한 요소가 된다. 그저 칼을 좋아하고 잡채를 좋아했으며 문도 딸 줄 아는 평범한 소년 탁은 위태롭고 서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15분 단편영화는 마치 150분 장편 영화처럼 느껴졌다.

'가정'을 소재로 한 스릴러물 대부분은 가정을 지키려는 자와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는 자가 대립한다. '가족'은 익숙한 소재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설정으로 스크린에 구현됐다. 전도연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하녀>(2010)는 물론, 김기영 감독의 원작 <하녀>(1960)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비극은 결국 '가정의 안녕'을 지키려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전체관람가 전도연

ⓒ JTBC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가정 파탄'의 주범은 이방인이지만 결국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은 '이기심'이었다. 이는 영화가 끝나고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보금자리>에서도 남편과 아내는 기꺼이 아파트를 분양 받기 위해 입양 사기의 주동자-동조자가 된다. 평범하게 아이 한 명을 키우고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한 부부는 '내집마련'을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른 아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파렴치범이 된다. 심지어 이들 부부는 할당된 아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기까지 한다. 결국 잠시 이용하고 '파양'할 것이면서 말이다. 관객들도 곧 부부, 특히 전도연이 분한 아내의 방어적인 태도에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영화 <보금자리>의 관전 포인트다.

공중파 드라마로 온 가족의 이기심

<전체관람가>에서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위법을 저지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기심을 노골적으로 폭로했다. 반면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이를 좀 더 교묘하게 혹은 유연하게 보여준다. 매주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KBS 2TV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가족의 이기심'을 구체적으로 해부한 작품이다.

 황금빛 내인생

ⓒ KBS 2TV


양미정(김혜옥 분)은 이기심에 자신의 딸 서지안(신혜선 분)과 재벌가 노명희(나영희 분) 딸 서지수(서은수 분)를 바꿨다. 이 사실이 밝혀진 후 양미정의 가정은 파국을 맞은 상황.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과연 양미정뿐일까? 이제 드라마는 양미정이 최은석(노명희의 친딸 이름)을 서지수로 만들었을 때, 노명희의 사정에 대해 설명한다.

그녀는 왜 눈 앞에서 딸을 보고도 줄행랑쳤을까? 노명희는 양미정이 자신의 딸을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온갖 수모를 주며 딸을 되찾아 온다. 20여 년 동안 자신의 딸을 키워준 '은인'이기도 한 양미정을 그저 딸을 빼앗은 파렴치범 취급하는 것이다. 물론 양미정 역시 자신의 친딸을 잃었다는 이유로, 최은석(서지수)의 친부모를 찾지 않은 점 역시 이기적이었다.

수모를 당한 양미정은 순간적으로 어깃장을 놓아, 서지안을 재벌가 친딸인양 보내버린다. 서지안은 어떻게든 재벌 가풍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반면 사실을 알게 된 후 스스로 재벌가로 들어간 서지수는 전혀 다른 태도로 임했다. 서지수는 식탁 예절부터 인사까지 재벌가의 규율을 전혀 따르지 않고 독불장군 식으로 행동한다. 서지수를 환영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그는 모두를 비웃으며 라면을 청한다.

 황금빛 내인생

ⓒ KBS 2TV


<황금빛 내 인생>은 매번 이런 식으로 '가족' 혹은 '가정'이라는 틀을 기준으로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매회 급박하게 전개되는 사건을 보며 시청자들은 호/불호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인다. 누군가는 밥상 머리 예절을 외면하는 서지수를 못마땅해 하고, 또 누군가는 서지안이 쩔쩔매던 상황을 떠올리며 서지수의 도발을 속시원해 한다. 물론 이는 노명희 가족의 배타성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보금자리>는 아파트를 얻기 위해 불법 입양까지 감행하는 가족에 감정을 이입하느냐, 이방인으로 들어온 '탁'에게 시선을 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마찬가지로 <황금빛 내 인생> 역시 양미정의 가족과 노명희의 가족을 어떤 시선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입장에 서게 된다.

이기심에 빠지게 만드는 배경은?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그 '평범한 가족'들이 이러한 불의를 감행하게 만든 배경이다. <보금자리>에서는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내 집 마련'을 위해 평범한 가족도 불법을 넘나들었다. 마찬가지로 <황금빛 내 인생>에서 양미정은 불의의 사고로 인한 입양이었지만 20년 동안 두 딸을 똑같이 사랑하며 가족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황금의 위력' 앞에 자신의 딸(서지안)과 양딸(서지수)의 운명을 바꿔 버린다. <황금빛 내 인생>의 소현경 작가는 이 시대의 '가족 이기주의'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보금자리>의 임필성 감독 역시 이를 직설적으로 짚었다. 그러나 가족만 손가락질 할 수도 없다. 그 이기심의 배후에는 이를 조장하는 사회가 있다. '황금 만능주의' 사회에서는 가족을 지키려 할수록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체 관람가 황금빛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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