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노을> 영화 포스터

▲ <푸른 노을> 영화 포스터 ⓒ 마이더스필름


우리 사회에서 노년층의 비중은 점차 커지는 추세다. 그러나 노년을 조명한 한국 영화는 매우 드물다. 노년의 사랑을 다룬 <그대를 사랑합니다> <장수상회>, 할머니의 마음을 담은 <집으로...>와 <계춘할망>, 젊음과 늙음을 대비시켰던 <은교>, 다큐멘터리 화법으로 노부부의 가슴 뭉클한 사랑을 보여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정도가 극장가에 선보였을 따름이다. <푸른 노을> 역시 어렵사리 만들어진 노년의 이야기다.

용문사의 1500년 된 은행나무 앞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40여 년 동안 사진을 찍으며 살아온 남우(박인환 분)는 스마트폰 등이 나오면서 점차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짐을 느낀다. 3년 만에 찾아온 아들 내외는 시대가 바뀌었다며 사진관을 팔라고 성화다. 치매 진단을 받은 남우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사진관을 정리한 채로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온 사진들을 직접 찾아 전해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수십 년간 찾아가지 않은 세 장의 사진을 주인에게 전해주는 여정에서 쾌활한 길거리 악사 달주(남경읍 분)와 소녀의 품성을 지닌 비디오 가게 주인 은녀(오미희 분)를 만난다.

노년 사진사의 로드 무비 

<푸른 노을>은 남우, 달주, 은녀가 사진의 주인을 찾아가는 로드 무비의 형식을 취한다. 주인공을 맡은 박인환 배우는 <푸른 노을>을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며 떠나는 여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그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푸른 노을>의 시나리오를 봤을 때 작품의 문학성과 내용이 단편 소설 <소나기>를 생각나게 했다"라고 설명한다.

<푸른 노을> 영화의 한 장면

▲ <푸른 노을> 영화의 한 장면 ⓒ 마이더스필름


영화는 치매 진단을 받고 육체가 점차 쇠약해지는 노년의 사진사 남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남우는 평생 사진만을 생각하느라 가정에 소홀했다. 아들은 여전히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의 탓으로 여긴다. 남우, 달주, 은녀가 함께하는 여정에서 그들 각자가 감춰졌던 사연, 그 속에 담긴 아픔과 속내는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은 사라져간 시간을 기록한다. 그 속엔 당시 시간, 인물, 감정 등이 새겨져 있기에 사진을 보면 그 날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르게 마련이다. 극 중에서 어떤 이는 남우에게 "사진 돌려주는 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라고 묻는다. 바꾸어 말하면 기억을 돌려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다. 질문에 남우는 대답한다. "어떤 기억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남우, 달주, 은녀는 사진을 전해주기 위한 여행 속에서 각자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사진을 전달받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와 연결되며 잊었던 행복을 떠올리게 해준다. 또는 괴로움을 배가시키는 경우도 만난다. 전해주는 이들과 받는 이들은 다 같이 상처를 보듬으며 과거와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이것은 미래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 그러면서 현재는 모두를 위한 동행이란 의미를 가진다.

밤과 낮이 공존하는 푸른 노을

<푸른 노을> 영화의 한 장면

▲ <푸른 노을> 영화의 한 장면 ⓒ 마이더스필름


<푸른 노을>에서 주인을 찾는 사진, 발길이 끊긴 사진관, 떨어진 낙엽, 스산한 바람, 앙상한 나무 등은 쓸쓸함 또는 끝자락 같은 아려한 정서를 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여기에 작은 책방, 시외버스 터미널, 포장마차, 허름한 여관 등 공간도 현실감과 극의 밀도를 높여준다. 주연으로 분한 박인환, 오미희, 남경읍의 연기는 인물에 생기와 풍부함을 불어넣었다.

연출을 맡은 박규식 감독은 <푸른 노을>이란 제목을 "푸른 노을(매직 아워)는 밤과 낮이 공존하는 시간대"라며 "인생에서 황혼은 마지막 시간이지만 황혼에도 오늘과 내일이 있다는 뜻으로 붙였다"고 이야기한다. 영화는 많은 노인이 갖는 외로움과 허망함이란 감정, 자신의 삶을 차분히 정리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한편으로 지금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희망 어린 태도로 작은 위로를 건넨다. 세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지금. <푸른 노을>이 주는 따뜻한 메시지가 실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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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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