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힘을 합쳐서 각자의 원수들에게 복수해 주는 거예요. 복수 품앗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네요. 부암동 복수자 소셜클럽, 어때요?"

홍도희(라미란 분)는 코웃음을 치며 기막혀 했다. 사기를 치는 것 아니냐며 의심스러워 했다. 이미숙(명세빈 분)은 두손을 저어가며 만류하느라 진땀을 뺐다. 가부장제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았던 그가 남편에게 복수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김정혜(이요원 분)의 엉뚱하지만 진심이 담긴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그들은 자잘한 복수들을 성공시키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끝내 완벽한 복수를 성사시키고야 만다. 그렇다, '복자 클럽'의 승리다.

부암동 복수자들 <부암동 복수자들>의 한 장면

▲ 부암동 복수자들 <부암동 복수자들>의 한 장면 ⓒ tvN


악의 축이었던 홍상만(김형일 분), 백영표(정석용 분), 이병수(최병모 분)는 그들이 저질렀던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에 갇히게 됐다. '복자 클럽'의 그것이 사적 복수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적 복수, 즉 법의 심판을 받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추악했던 실체들이 세상에 낱낱이 까발려지며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사회적 지위마저 깡그리 잃어버리고 말았다. 오만방자했던 세 사람은 모든 면에서 빈털터리가 됐다. 그야말로 통쾌하고 후련한 '사이다' 복수였다.

무엇보다 가장 반가웠던 건, 홍도희 · 이미숙 · 김정혜 세 사람이 잃어버렸던 '나'를 찾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집안이나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말이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김정혜는 해외로 배낭 여행을 떠났고, 이미숙은 딸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되찾았다. 홍도희는 자녀들의 응원을 받아 박승우(김사권 분)와 연애를 시작했다. 가부장제의 고통 속에 살아왔던 복자 클럽 멤버들에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된 셈이다.

부암동 복수자들 <부암동 복수자들>의 한 장면

▲ 부암동 복수자들 <부암동 복수자들>의 한 장면 ⓒ tvN


"당신한테서 날 빼면 뭐가 남는데?"
"내가 남겠지."
"네 까짓 게 뭔데?
"나, 김정혜야!"


복자 클럽 멤버들의 이와 같은 극적인 변화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역시 '나'라는 존재의 (재)발견, 다시 말해 주체성의 획득 때문이었다. 가부장제 체제에서 여성들은 '아내' 혹은 '엄마'라는 역할에 갇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 의식은 희미해지게 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권력'은 자연스레 남성에게 귀속되기 마련인데, 여성들은 과도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때 과도한 희생과 폭력 감수는 마치 '미덕'으로 여겨지고, 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비난을 당하기까지 한다.

솔직히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조금 회의적이었다. tvN <부암동 복수자들>이 얻어낼 수 있는 성취에 대해서 말이다. 섣부른 개과천선과 가정의 봉합이라는 어설픈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부장제 내부에서 싸움을 이어나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닐 뿐더러 이건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를 때려부수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고 봤다. 그런데 이미숙과 김정혜는 과감하게 '이혼'을 선언했고, 불합리한 가부장제의 온상이었던 가정을 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부암동 복수자들 <부암동 복수자들>의 한 장면

▲ 부암동 복수자들 <부암동 복수자들>의 한 장면 ⓒ tvN


여성학자 정희진은 『아주 친밀한 폭력』에서 "'아내 폭력'에 대한 가족 유지적 접근이 과연 '아내 폭력' 문제의 대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부정적"이라 밝힌 바 있다. 그는 "피해 여성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폭력 가정을 떠나지 못해서 가족 폭력이 지속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현재의 가족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을 피해자, 가해자, 사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한, 우리가 그토록 지켜야 하는 가족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가족인가를 새롭게 질문하지 않는 한, 가정 폭력은 근절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미숙과 김정혜가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지금의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사고 방식에 붙잡혀 있었다면, 그래서 '사람을 고쳐 쓰려는 시도'를 계속 했다면, 과연 마지막 회의 그 행복한 미소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또 다시 여러가지 양태의 가정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로 남았을 게 불 보듯 뻔하다. <부암동 복수자들>은 백영표와 이병수가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가정 폭력이 '개인 인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감안하면 무의미한 장면일 것이다.

 <부암동 복수자들>의 한 장면

<부암동 복수자들>의 한 장면 ⓒ tvN


<부암동 복수자들>은 이미숙과 김정혜가 이혼을 선택함으로써 주체적 개인이자 사회적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젖혔다. 또, '엄마'라는 역할에 묶여 살아왔던 홍도희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부암동 복수자들>의 복수가 진짜 '사이다'일 수 있었던 까닭은 '복자 클럽' 멤버들이 자신들의 원수를 처단하는 저차원적인 복수를 넘어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고차원적 복수를 성사시켰다는 데 있다.

휴식기를 갖고 1년 만에 다시 뭉친 '복자 클럽' 멤버들은 카페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갓난아이를 안고, 큰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아내에게 소리를 치며 화내는 남편을 목격한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 나간다. 아직도 '복자 클럽'에겐 복수해야 할 대상들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린 가족보다 나은 남이 될 것"이라는 김정혜의 말처럼, 그들의 연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6.330%를 기록하며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부암동 복수자들>의 시즌2를 기대해 본다.

부암동 복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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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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