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tvN < SNL 코리아 > '테이프 커팅식' 중 한 장면. ⓒ tvN


"이제라도 많은 분들이 우리가 왜 그런 류의 콩트를 하지 못했는지 알게 돼 다행입니다." (신동엽)

비록 '또'의 김슬기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정권이 교체된 이후 '여의도 텔레토비'의 새로운 모습을 < SNL 코리아 시즌9 > 마지막회에서 볼 수 있었다. 돌아온 '여의도 텔레토비'는 < SNL 코리아 > 초기의 야성을 보여주는 듯 '수위 높은' 풍자로 넘실거렸다. 박근혜와 최순실 패러디도 다시 등장했다.

신동엽은 마지막회의 마무리가 돼서야 어렵게 말을 꺼냈다. 왜 그동안 정치 풍자를 못했는지. '여의도 텔레토비'로 포문을 연 정치 풍자를 박근혜 정권의 외압으로 인해 더 이상 맘껏 하지 못하게 된 안타까운 현실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은 없을 것 같다.

18일, < SNL 코리아 시즌9 >가 끝났다.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었다. 마지막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신동엽의 말에 이세영, 김민교 등 < SNL 코리아 >와 역사를 같이 했던 크루들은 하염없이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정치 풍자'의 계절에 태어난

2011년 말 대통령 선거를 12개월 앞둔 정치 풍자의 계절에 태어난 < SNL 코리아>. 스타트를 끊은 건 감독 장진이었다.

"SNL은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포인트가 정치 풍자라고 생각한다. 채널이 흔들리더라도 정치 풍자를 밀고 나갈 예정이다." (장진 감독)

지난 2011년 11월 < SNL 코리아> 제작발표회에서 장진 감독이 정치 풍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장진 감독이 공언했던 것처럼 시즌3까지 < SNL 코리아>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강도 높은 풍자 발언과 대선에 대한 언급으로 풍성한 잔칫상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면 장진의 "채널이 흔들리더라도"는 의미심장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 tvN


"새누리당이 저희가 만드는 '여의도 텔레토비를 편파적인 프로그램으로 지목했다. 유독 박근혜 후보를 풍자하는 '또'라는 배역이 욕도 많이 하고 다른 후보들보다 훨씬 안 좋게 묘사됐다고 하는데 이 정도 풍자에 제재가 들어올 수도 있겠다. 아무튼 다시 한 번 박근혜 후보 쪽을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저희 제작진은 했다. 잘못하면 프로그램이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이제부터 박 후보에 관련된 캐릭터는 조금도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으로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장진)

장진 감독이 대통령 선거 직전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를 시작하면서 했던 오프닝 멘트는 급기야 현실이 되고 말았다. 말이 씨가 된 것일까. < SNL 코리아 시즌3 > '여의도 텔레토비'로 채널은 물론 CJ E&M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 tvN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 tvN


'여의도 텔레토비'는 이후 글로벌 텔레토비 등으로 코너에 변화를 꾀했으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사라지고 만다. 장진 감독 역시 석연치 않게 < SNL 코리아 시즌3 > 종영 후 하차하면서 외압 논란에 시달렸다. 장진 본인이 직접 나서서 "외압이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청와대에서 < SNL 코리아> 작가 성향을 조사했다는 폭로가 나왔고 사측에서도 '여의도 텔레토비' 원고를 사전 검토했다는 말이 나오는 등 후폭풍이 잇따랐다.

정부 출범을 하기 이전부터 갖은 미움을 다 받았으나 '여의도 텔레토비'는 결국 < SNL 코리아> 사상 가장 성공한 (어쩌면 유일한) 코너가 됐다. < SNL 코리아 시즌9 >이 지나면서 많은 코너들이 피고 졌지만 '여의도 텔레토비'만큼 파급력을 지니고 사랑받은 코너는 없었다. 당시 '여의도 텔레토비'서 콩트를 선보였던 김슬기, 김원해, 김민교, 이상훈 등 크루들 역시 모두 성공적으로 방송계에 안착했다.

트럼프 "나는 SNL을 증오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여의도 텔레토비'를 비롯해 영화 <변호인> 등의 배급을 맡아 미움을 받은 CJ는 더 이상 공격적인 정치 풍자를 하지 못한다. 바야흐로 '검열'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최근 터져나온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도 무관하지 않은 이 '외압'은 '차별화된 정치 풍자'를 공언했던 < SNL 코리아 >에서 '풍자'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유병재는 < SNL 코리아 >가 낳은 대표적인 스타다. ⓒ tvN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 tvN


< SNL >은 미국 NBC에서 1975년부터 시작된 이래 37년째 토요일 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전통적인 버라이어티 쇼다. < SNL 코리아>는 그 버라이어티 쇼의 포맷을 한국으로 수입해 '현지화'한 프로그램. NBC의 < SNL >은 명사들이 매주 호스트로 출연해 거침없는 입담과 패러디, 슬랩스틱 등을 선보인다.

물론 정치 풍자 역시 빠질 수 없다. 한국에 박근혜 대통령을 감쪽 같이 흉내 내는 코미디언 정성호가 있는 것처럼 미국에도 트럼프를 흉내내는 코미디언 알렉 볼드윈이 있다. 몇 번이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 계정을 통해 대놓고 자신을 풍자하는 < SNL >을 가리켜 "나는 < SNL >을 증오한다"고 밝혔을 정도다.

하지만 '정치 풍자'가 빠진 < SNL 코리아>는 대신 시즌4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외모 비하, 소수자 비하, 섹스 어필 등 다소 손쉬운 길을 택한다. < SNL 코리아>가 더 이상 < SNL >이라는 포맷을 빌리지 않아도 될 콩트들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 또 '섹시 콘셉트'를 셀링 포인트로 활용하기도 한다. 유튜브에 들어가 'SNL'을 검색해도 < SNL 코리아>에서 과한 노출이나 '19금 콘셉트'로 진행한 콩트를 묶여 나오는 것. '정치 풍자'가 사라진 자리에 '섹시 콘셉트'가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터져나온 것이 안영미 '욕설 논란'과 이세영의 성희롱 논란 그리고 정이랑의 유방암 환자 모욕 논란이었다. 이는 그저 하나의 돌출된 해프닝이 아니라 (15금으로 바뀐) < SNL 코리아>가 건전한 코미디를 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 < SNL 코리아>는 순식간에 뭇매를 맞고 연이어 '폐지론'까지 고개를 든다.

< SNL 코리아>의 정치 풍자가 다시 고개를 든 건 박근혜 정부 말기였다. 2016년 11월 크루 유세윤이 코너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로, 김민교는 최순실로 분해 다시 한 번 이목을 끌었다. 시즌3의 '여의도 텔레토비'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정도의 풍자는 역부족'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 정도 수준의 '정치 풍자'도 가뭄의 단비 같았던 게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봇물 터지듯 다시 정치 풍자를 선보인 이들은 이 기세를 이어 < SNL 코리아 시즌9 >을 시작한다.

 2017년 10월 21일 방송된 SNL '급식체 특강' 패러디.

10월 21일 방송된 SNL '급식체 특강' 패러디. ⓒ tvN


< SNL 코리아 시즌9 >의 캐치 프레이즈는 '초심으로 돌아가자'였다. 그만큼 '정치 풍자'에 목마른 출연진과 시청자에 답하는 '절실한 선언'이 아니었을까. 시즌9으로 돌아온 < SNL 코리아 시즌9 >은 '미운우리새끼'와 '프로듀스101'을 섞어 만든 정치 풍자 코너 '미운 우리 프로듀스101'를 선보인다. 반응은 이전만큼 뜨겁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런 < SNL 코리아 시즌9 >이 시즌 종료를 선언했다. 폐지가 아닌 시즌 종영이라며 일각에서 일어난 '폐지설'을 부인했지만 통상적으로 시즌 종료와 동시에 다음 시즌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잠정적 폐지'로 보는 게 좀 더 맞을 것이다. 신동엽 역시 마지막 무대에서 '시즌10로 돌아올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만날지 모르겠다'고 알렸다. 37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미국 NBC의 < SNL >과 비교해봐도, <웃찾사>에 이어 또 다시 사라지는 코미디 콩트 프로그램의 조류에 비춰봐도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감히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압'이 아니었으면 < SNL 코리아>의 '성역 없는' 정치 풍자는 이어졌을까? '폐지하지 말아달라' 관심을 갖고 청원하는 이 몇 없이 < SNL 코리아 시즌9 >의 종영을 지켜보는 게 씁쓸하기만 하다.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tvN < SNL 코리아 > 관련 사진 ⓒ tvN



SNL코리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은솔아, 돌잔치 다시 할까?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