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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는 '어차피 잘 먹고 잘 살아 갈 사람들인데, 우리가 걱정해 봐야 아무 소용 없고 부질없다' 정도의 뜻이 담겨 있다.

이 지점에서 '연예인'이라는 대명사가 담은 의미를 다시 한 번 풀어 보자면, '어느 정도 본인이 활동하는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수입이 많은 사람들'을 뭉뚱그린 것에 가깝다.

소시민으로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로는 적절한 문장일 수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알고 있다. 브라운관 속의 모든 연예인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화려하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임시완에게서 포착한 '주눅 든 청춘'의 얼굴

지난 6일 출간된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는 칼럼니스트 이승한씨가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하는 칼럼 '술탄 오브 더 티브이'를 묶은 책이다. 책의 머리말에서 이승한씨는 "책을 내기 위해 원고들을 추리다가, 새삼스레 이 책은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간곡하게 위로해 보기 위해 발버둥친 흔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본인의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을 다룬다. 이승한씨가 연재했던 칼럼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외롭게 가고 있는 사람을 재조명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과 표현으로 미뤄 보건대, 글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쓴 글로 보인다. 연예인으로서 인지도가 높고 낮음과 별개로 말이다.

tvN 금토드라마 <미생> 촬영 스틸컷. 장그래 역의 배우 임시완.
 tvN 금토드라마 <미생> 촬영 스틸컷. 장그래 역의 배우 임시완.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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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의 동명 만화를 원작 삼은 tvN 드라마 <미생>(2014)의 주인공 장그래는, 그렇게 제 몫이 아닌 잘못에 대해서도 사과하고 자책한다. (중략) 소리 높여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법도 하고, 자신을 오해한 사람들을 원망할 법도 하다. 장그래는 그 모든 부조리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참아낸다. 몇 마디 말로 오해가 풀릴 리도, 부조리가 사라질 리도 없으니까.

(중략) <미생>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 임시완은 기자들에게 장그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노라 말했다. "장그래는 본인이 있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와서 환대받지 못했고 사회를 구성하는 데 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거든요. (중략)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에 있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죠." - 본문 13~17쪽 '주눅 든 청춘의 얼굴, 임시완' 중에서

이승한씨의 글은 드라마 <미생>을 본 감상과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의 말, 그리고 배우의 특징까지 잡아내 겹겹이 포갠다. 아이돌로 활동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 춤과 노래가 뛰어난 동료들 사이에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노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 예전 인터뷰와 그의 표정까지 더해지면 '주눅 든 청춘의 얼굴'로 오늘날 청년의 모습을 대신 비추는 배우 임시완이 재구성된다.

쏟아지는 콘텐츠 너머, 시대에 필요한 위로와 토닥임

이승한씨의 책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표지 사진
 이승한씨의 책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표지 사진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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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르게 재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섬세하게 관찰한 뒤에 배우나 가수의 행보를 글로 옮겨 놓는다. 쉽지 않은 작업의 결과가 매주 연재되며 켜켜이 쌓이고, 한 권으로 묶어서 모아놓은 책이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라고 할 수 있겠다.

본인을 '어느 TV 중독자'라고 말하는 이승한씨는 '서툰 위로'나마 칼럼으로 보내고 싶었다고 적었다. 연예인을 포함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춤을 추는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그의 글에서 위로는 때로 '편견에 대신 맞서 싸우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외모 때문에 실력 외의 비난을 듣던 '소녀시대'의 멤버 효연,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태도 논란이 불거진 배우 김유정, 인종 때문에 무례한 말을 들어야 했던 샘 오취리를 다룬 글이다.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에서 이승한씨는 피부색에 손가락질을 해대는 '폭력적인 공동체의 일원'임을 샘 오취리에게 사과하기도 하고, 뛰어난 춤 실력에도 불구하고 외모에 가려 인정받기까지 효연이 보냈던 시간을 되짚는다. 그리고 효연과 같은 상황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말도 남긴다. "저기, 당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거쳐 온 끝에 마침내 세상 앞에서 호탕하게 웃을 수 있게 된 효연의 춤을 보라고" 말이다.

가창력을 인정받았음에도 '웃기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하는' 노라조를 언급하거나 "노래에도 입장이라는 게 있다면 2016년은 <다시 만난 세계>에게 다소 독특한 한 해였을 것"이라며 소녀시대의 노래를 언급하기도 한다.

사회 각계의 이슈와 다양한 사연을 버무려낸 글을 읽다 보면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연예인'이라는 이름의 유리 벽에 몰아넣은 사람들이 사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개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유리 벽에 비친 모습은 사실 바라보는 사람의 편견과 감정이 뿌옇게 투영된 것뿐이라는 것도.

가볍지 않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가 던져주는 토닥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상대방의 입장을 아는 척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그 사람이 활동했던 행보와 발언을 되짚으며 '사소해 보일지라도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대신 증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연예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소박하게나마 자신의 춤을 추는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어디선가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덧붙이는 글 |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이승한, 들개이빨 공저/ 한겨레출판사 펴냄/ 2017.11.6/ 1만3천원)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 어느 TV 중독자가 보내는 서툰 위로

이승한 지음, 들개이빨 그림, 한겨레출판(2017)


태그:#이승한, #연예계, #나는지금나의춤을추고있잖아, #임시완, #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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