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과는 다른 스타일로 한국 영화를 할리우드에 가깝게 한 최동훈 감독의 정점 <타짜>.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과는 다른 스타일로 한국 영화를 할리우드에 가깝게 한 최동훈 감독의 정점 <타짜>. ⓒ ?CJ엔터테인먼트


2004년 <범죄의 재구성>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올라선 최동훈 감독. 데뷔 13년이 된 현재까지 불과 5편의 작품밖에 내놓지 않았지만 단 한 편도 흥행에서 고배를 마시지 않았다. 더욱이 최근 내놓은 두 편 <도둑들>과 <암살>이 1000만 명을 넘으며 윤제균 감독과 더불어 현재까지 유이한 2편의 1000만 이상 관객 동원 감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야구로 치면 홈런왕과 장타율 1위의 최강 거포다.

그 흥행 이상 가는, 아니 버금가는 작품들이었을까?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이 던진 웰메이드 충격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세련'된 영화라는 게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감히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과는 다른 스타일로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공교롭게도 한국영화 흥행에 새역사를 쓴 최근 두 작품이 그의 역량을 가장 집약시켰음에도 오히려 그의 역량이 퇴보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한다. '최동훈 스타일'은 확립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각인되었지만, 사실 데뷔작과 두 번째 작품인 <타짜>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었기에 진정 긍정적 진보가 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최동훈의 인생작이자 정점은 <타짜>이다.

최동훈 감독의 '인생작', 영화 <타짜>

 도박판에서 모든 걸 잃고 나서 타짜로의 길에 들어선 고니. 그에게 타짜 인생은 무엇인가.

도박판에서 모든 걸 잃고 나서 타짜로의 길에 들어선 고니. 그에게 타짜 인생은 무엇인가. ⓒ CJ엔터테인먼트


허영만·김세영 원작, 전설의 만화 <타짜>의 존재에 최동훈 감독이 직접 각본까지 진행했으니 보기 전에도 100% 충만한 기대감이 용솟음친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며 그런저런 인생을 살아가는 고니(조승우 분)는 우연히 공장 한편에 차려진 도박판에 낀다. 3년 모은 돈을 한 번에 날리고도 모자라 누나의 이혼 위자료도 모두 날려 먹는다. 뒤늦게 모두 타짜들의 '짜고 친 판'이었다는 걸 알고 그 일행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고니, 어느 도박판에서 모든 걸 잃고 여지없이 깽판을 치고 있던 와중 전국 최고의 타짜 평경장(백윤식 분) 눈에 띈다. 고니는 득달같이 달려가 제자로 받아들일 것을 부탁하고 타짜로의 길에 들어선다. 지방원정 중 알게 된 설계자 정 마담(김혜수 분), 그녀에게로 향하는 욕망과 그녀가 내뿜는 욕망에 끌려 평경장을 떠나 그녀와 함께하게 된 고니다. 잘나가는 그들, 하지만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순 없다.

이번에는 경찰 단속을 피하던 와중 만나게 된 소시민적 타짜 고광렬(유해진 분)과 파트너가 되어 전국을 유랑하는 고니,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게 된 화란과 안정적인 삶을 꿈꾸지만 정마담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정 마담 뿐이랴? 그를 도박의 길로 들어서게 한 일당, 평경장, 정 마담, 고광렬 등과 얽히고설킨 모든 이들이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이 타짜 인생은 무엇인가.

영화 <타짜>가 잡아낸 '순간의 욕망'

 타짜에게 있어 '순간의 욕망'은 모든 것이다.

타짜에게 있어 '순간의 욕망'은 모든 것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총 4부로 구성된 만화 <타짜>의 1부인 '지리산 작두'를 영화화한 영화 <타짜>는, 만화와 같이 주인공 고니의 타짜 인생을 그렸다. 정확히는 고니가 타짜의 길로 들어선 후 그의 타짜 인생 1막 정도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그러하기에 이 영화에서 고니의 타짜 인생은 곧 '욕망'이다.

도박의 길에 한 번 들어서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말, 몸소 겪어봐서 잘 알고 있다. 외국에서 1년여 살았을 때 일이 끝나면 카지노에 매일 '출근해' 블랙잭을 했다. 매일 지니고 가는 돈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큰 10만 원. 10만 원을 따던지 10만 원을 잃던지. 그러던 중 하던 일을 때려 친 직후인 연말, 하룻밤 새 100만 원을 잃는다. 수중에 돈이 없는 상황,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위기에 겨우 다시 일을 잡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일을 잡고 돈이 조금씩 생기니 다시 카지노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다. 마음잡고 철저한 자기관리 하에 '투 잡'으로서의 블랙잭을 다시 시작하지만, 잘 될 턱이 있나. 고니가 계속해서 파트너를 바꿔 가면서까지 전국 도박판을 유랑하는 이유가 뭔가. 누나에 대한 미안함? 돈을 향한 소유욕? 스승님의 복수? 사랑? 우정? 이 모든 게 조금씩은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 '순간'이다. 수많은 종류와 이유의 욕망이 들끓는 도박판에 자리하고 있는 그 순간 말이다. 승리의 짜릿함과 황홀감, 패배의 쓰라림과 무력감, 그 모든 걸 넘어선 도박판의 흥분. 도박판이야말로 내가 진정 나일 수 있는 유일한 자리라는 느낌과 믿음의 발로다. <타짜>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즉 페이소스를 서사와 이야기와 캐릭터의 향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놓았다.

서사와 이야기와 캐릭터

 최동훈 감독의 스타일, 서사와 이야기와 캐릭터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한다. 그 최후의 목적은 '재미'가 아닐까.

최동훈 감독의 스타일, 서사와 이야기와 캐릭터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한다. 그 최후의 목적은 '재미'가 아닐까. ⓒ ?CJ엔터테인먼트


<타짜>를 보고 가장 와닿는 건 페이소스 이전의 서사와 이야기와 캐릭터의 향연이다. 서사와 이야기는 고니의 '타짜 인생 역전'으로 완성된다. 계속되는 우연의 연속으로 다른 파트너와 다른 인생을 사는 듯하지만, 또 다른 필연의 연속으로 이전의 파트너를 만나고 이전의 파트너와 관련된 이를 만나 내려가고 올라가는 일을 반복한다.

천부적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는 보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만하다. 마음 놓고 즐기되, 기본 이상의 질적 양적 퀄리티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다. 그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건, 최동훈 스타일의 기반이 되는 캐릭터와 대사에 있다.

최동훈 감독 작품들이 꽉 차 있다고 느끼는 건 기본적으로 캐릭터들의 빈틈없는 생각과 행동과 대사에 있다. 상당한 숫자의 주연급 조연들이 출연해 각자의 개성을 최대치로 발휘하며 하나같이 영화 스토리라인에 주요하게 기여하는데, 그래서 시종일관 어느 한 장면, 어느 한 캐릭터에도 집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타짜>는 최동훈 감독의 그런 감각과 역량이 최대한으로 완벽에 가깝게 구현된 영화라 하겠다. 몇 번을 봐도 새로운 게 보이고, 몇 번을 봐도 뒤가 궁금해지고, 몇 번을 봐도 끝나는 게 아쉬운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에게서 '스티븐 킹'의 향기가 스멀스멀 나는 건, <타짜>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비단 나뿐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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