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호실>의 한 장면.

영화 <7호실>의 한 장면. 임대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압구정에서 DVD방을 연 두식(신하균 분). 예상과 달리, 찾아오는 손님이 드물어 하루 매출이 3만 원에 불과하다. ⓒ 명필름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7호실>은 웃음과 슬픔의 정감을 포갰다. 차마 미소를 안 짓곤 못 배길 장면을 보다가 웃음을 좀 내려 하면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진다. 웃음을 한바탕 내고 나면 비애가 살포시 찾아온다. <7호실>이 역점을 둔 건 코미디이지만, 자아내는 웃음엔 유쾌함보다는 '웃픈'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임대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압구정에서 DVD방을 연 두식(신하균 분). 예상과 달리, 찾아오는 손님이 드물어 하루 매출이 3만 원에 불과하다. 알바생 태정(도경수 분)은 그 여파로 두식에게서 200만 원에 달하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는 DVD방을 두식은 그만 매물로 내놓으려 하지만, 사고로 또 다른 알바생 한욱(김동영 분)이 죽자 어쩔 줄 몰라 한다.

두식은 자영업자의 '짠내'나는 현실이 그대로 투영된 인물이다. 손님이 많을 것이란 복덕방 얘기에 속아, 권리금만 1억 원을 내고 DVD방을 열었다 낭패를 보는 두식. 건물주는 두식의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밀린 월세를 독촉하더니 급기야 보증금과 월세를 올리려 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의 '자비 없음'은 두식을 대리기사로 '투잡'을 뛰게 한다.

한국 사회의 그늘이 짙게 깔린 'DVD방'

 영화 <7호실>의 한 장면.

영화 <7호실>의 한 장면. 두식은 자영업자의 '짠내'나는 현실이 그대로 투영된 인물이다. 손님이 많을 것이란 복덕방 얘기에 속아, 권리금만 1억 원을 내고 DVD방을 열었다 낭패를 본다. ⓒ 명필름


두식의 고단함은 먹이사슬마냥 알바생으로 연결된다. DVD방 알바로 학자금 빚을 갚으려 했던 태정은 임금이 체불되고, 한욱은 최저임금 6470원에 한참 못 미치는 4000원을 받고 일을 한다. 최정점의 건물주에서 밑바닥 알바생으로 내려오는 구조에서 두식은 그 사이에 '웃픔'을 낳으며 좌충우돌하는 중간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알바생의 희생이 깔린, 살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한 것이다.

전작 <10분>에서 직장 초년생의 고단함을 사실감 있게 그려냈던 이종승 감독은 한국 사회의 그늘을 <7호실>의 DVD방에다 또 한 번 채웠다. 두식 밑에서 일하는 알바생은 노동의 사각지대에 처해있으면서도, 알바를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안고 DVD방에 머무른다. 두식이 DVD방을 제값을 받고 털어내고자 창업 전선에 뛰어든 어느 교감 선생님을 꼬드기는 작업은 지금 타고 있는 지옥선을 나 먼저 탈출해보겠다는 일종의 '각자도생' 선언이다.

지옥선을 건조하는 데 뼈대가 되어줬던 보증금과 월세 상승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지옥선의 최대 피해자는 먹이사슬의 하단, 알바생이다. 한욱은 방수가 안 된 천장에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을 없애려다 감전이 되고, 태정은 늘어나는 빚에 결국 돈을 받는 조건으로 마약상에게서 약을 보관하는 일을 맡는다.

이런 결과는 다시 중간자 두식에게 업보로 돌아간다. 두식으로선 DVD방에서 한욱이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 매물이 잘 나가지 않을 것 같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형사는 하필 약이 보관된 DVD방에 들락거리려 한다.

한국 사회의 '웃픈 현실' 극대화한 <7호실>

 영화 <7호실>의 한 장면

영화 <7호실>의 한 장면. 각기 사연이 첨예하게 걸린 7호실을 놓고, 두식(신하균 분)과 태정(도경수 분)이 벌이는 몸싸움은 을과 을이 살아보겠다고 서로를 물어뜯는 싸움일 뿐이다. ⓒ 명필름


유독 건물주는 이 '피해의 서사'에 포함되지 않는 유독 예외적 존재다. 건물주는 모습 한 번 드러내지 않는다. 건물의 하자로 알바생의 죽음을 야기했지만 하자에 대한 건물주의 책임은 전무하다. 각기 사연이 첨예하게 걸린 7호실을 놓고, 두식과 태정이 벌이는 몸싸움은 을과 을이 살아보겠다고 서로를 물어뜯는 싸움일 뿐이다. 두식과 태정은 이 지옥선에서 탈출하려 서로를 쥐어 잡으며 발버둥을 치지만, 그런들 그 배에서 빠져나올 리 만무하다.

<7호실>이 그린 현실은 '웃픈 현실'의 저변이 확대됐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1988년 <칠수와 만수>나 탄광 노동자를 그린 1990년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영화가 당시 한국 노동자의 비루함을 비췄다면, <7호실>의 모습은 임대료의 가파른 상승으로 자영업자마저 궁지에 몰린 이때, 건물과 토지의 소유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계층의 양극화를 반영한 것이요, 건물 가격은 하루 멀다 하고 치솟건만 팍팍해지는 개인의 삶을 비춰낸 것이다.

'해맑음'과 '비운'의 표정을 동시에 가진 신하균은 나름의 개성을 토대로 <7호실>에서도 발군의 연기를 한다. 다소 과장처럼 보일 수 있는 몸짓과 행동이 신하균의 표정과 연기에선 납득이 되고,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블랙코미디'를 느끼게 하는 동력이 되어준다. 2014년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로 일찍이 연기에 입문한 도경수는 신하균과 대립에서 꿀리지 않는 모습을 선보인다. 깨알 같은 감초 연기로 웃음을 더해주는 조연 배우들 호연도 볼만하다.

다만 한욱이 '조선족'이라는 설정은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에 이어 중국 동포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가는 지점이다. 특히 서사의 완결성을 위해 '조선족'이라는 설정을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편으로 영화가 그린 한욱의 모습과 결말은 이 땅의 이방인이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처우는 차치하고, 목숨마저 보잘것없이 치부되어버리는 단면을 그려낸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7호실 신하균 디오 이종승 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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