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메달을 받고 있는 덕산중학교 학생들

대회 메달을 받고 있는 덕산중학교 학생들 ⓒ 윤희암


만년 꼴찌 팀의 반란에 학교 측도 놀라고 아이들도 놀랐다. 비록 아마추어 동아리 축구대회지만 충남 예산군 덕산중학교 여자축구팀은 제10회 전국학교스포츠클럽 축구대회에 충남대표로 참가해 여중부 우승을 거머쥐었다.

덕산중학교는 전교생이 101명인 작은 시골 학교다. 여학생의 숫자는 61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명은 여자축구팀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팀에는 특별한 선발 과정도 없다. 여학생이라면 누구나 여자축구팀에서 활동할 수 있다. 바로 그 아이들이 전국 대회에서 우승까지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만년 꼴찌' 머물렀던 덕산중 여자축구팀, 유니폼도 한 벌뿐이었는데...

덕산중학교 여자축구팀은 만년 꼴찌에 머물렀던 팀이다. 지난 5년간 대회에 참가했지만 단 한번도 1승을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팀은 엔트리 18명도 다 채우지 못해 16명만 출전했다. 이번 대회 역시도 참가하는데 의미를 둘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덕산중학교 여자축구팀은 얼마 전 총동창회에서 마련해준 유니폼 한 벌만을 가지고 대회에 참가했다.

감독과 코치는 물론이고 학생들조차 1회전 탈락을 예상하고 가볍게 여행 가듯이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이변이 일어났다. 덕산중학교 여자축구팀은 1차전에서 세종시 대표팀을 3-0으로 가볍게 눌렀다. 이후 팀은 광주 대표 팀과 경북 대표 팀을 각각 1-0으로 이기고 연승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여벌의 유니폼이 없었기 때문이다. 숙박까지 하며 3일 동안 경기를 치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1회전 탈락 후 집으로 돌아올 생각만 한 것이다. 때문에 여벌의 유니폼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팀원들은 2박 3일 동안 매일 세탁기에 유니폼을 빨고, 스팀으로 말려 입었다.   

이와 관련해 윤희암 덕산중학교 교감은 "두 경기 이상 이길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며 "동창회에서 마련해준 유니폼 하나만 가지고 갔다. 아이들은 매일 유니폼을 빨아 입어가며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덕산중학교 축구팀이 손으로 고개를 받치고 있다. 이 동작은 기죽지 말고 고개를 들라는 의미라고 한다.

덕산중학교 축구팀이 손으로 고개를 받치고 있다. 이 동작은 기죽지 말고 고개를 들라는 의미라고 한다. ⓒ 윤희암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덕산중학교 여자축구팀은 강팀 제주를 승부차기 끝에 1-0으로 이겼다. 제주는 지난해 우승팀이다. 결승골을 넣고 팀을 우승으로 이끈 김은지(16, 3학년) 주장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승할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못했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대회에 출전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냥 즐기고 오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승까지 하게 되었다. 대회가 끝나고 정말 많이 울었다."

감독을 맡았던 천세형 체육교사는 "지난해에도 첫 경기에서 지고 탈락했다"며 "올해는 한 게임만 이겨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아이들이 한 경기 한 경기 승리를 거두면서 단합이 되고 실력도 더 향상되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승리에 연연하지 않은 게 우승 비결, 대회 중에도 연습 대신 '산책과 대화'

 클럽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돌아온 덕산중학교 여자축구팀의 환영식.

클럽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돌아온 덕산중학교 여자축구팀의 환영식. ⓒ 이재환


만년 꼴찌 팀의 우승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팀원 중 누구 하나도 긴장하지 않았고, 승부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솔자로 나섰던 윤희암 교감이 가장 많이 긴장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윤 교감은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제자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윤 교감의 말을 들어 보자.  

"다른 팀은 대회 중에도 연습을 했다. 하지만 우리 팀은 연습은 안 하고, 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산책을 했다. 우리는 약팀이라서 더 열심히 해도 부족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인솔자 입장에서 걱정스러웠다. 경기 한 시간 전에 나가서 살짝 몸을 푼 것이 다였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고 경기에 임했다. 아이들이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끝까지 웃으며 즐겁게 경기에 임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클럽 정신에도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고 오겠다며 출전한 경기에서 우승까지 한 덕산중학교 여자축구팀. 이들은 만년 꼴찌 팀임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고 고개를 들어' 멋지게 실력 발휘를 했다. 이들의 승리가 더욱 값지게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덕산중학교여자축구팀 여자축구팀 덕산중학교우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