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리빙보이 인 뉴욕 메인포스터

ⓒ (주)더쿱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1.

매년 수많은 작품들이 제작되지만 모두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명에 따라 사전에 제작이 취소되기도 하고, 수년씩이나 미뤄지기도 하고, 때로는 작업이 모두 끝났지만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 역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작품 소식이 처음 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이었다. 마크 웹 감독의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이 개봉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리빙보이 인 뉴욕>이 제작된다는 소식과 함께 마크 웹 감독이 연출을 맡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감독이 애초에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2편을 함께 계약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어쨌든 두 번째 편이 그의 차기작 중 하나로 이미 결정이 된 상황이다. <리빙보이 인 뉴욕>은 캐스팅 난항 및 시나리오 초안에서 발견된 몇몇 문제들로 인해 차일피일 미뤄지게 됐고, 결국 감독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2편과 또 다른 영화 <어메이징 메리>(2017)의 작업을 마친 뒤에나 시작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인 토마스 역은 <퓨리>(2014), <월 플라워>(2013)의 로건 레먼이나 <위플래쉬>(2015), <다이버전트>(2014) 시리즈의 마일즈 텔러가 맡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02.

감독의 확고한 성향이 잘 구축된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여질지, 그저 반복되는 구태의연한 형식으로 남게 될지는 그 속에 감독의 어떤 의도가 들어있느냐에 의해 구분된다. 단순히 영화 외부에 구현되는 표면의 틀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리빙보이 인 뉴욕>에는 마크 웹 감독이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화두, 인물의 성장과 관련된 이야기가 분명히 들어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리빙보이 인 뉴욕> 역시 그 동안 마크 웹 감독이 만들어온 필모그래피의 연장선 상에서 볼 때 매끄러운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국내 모든 채널의 선재물에서는 감독의 이어온 그런 화두가 아닌, 겉모습만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500일의 썸머>와 비견되는 이유로는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주제가 마땅하지만, 영화는 사랑과 로맨스로 포장되고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영화가 감독의 전작인 <500일의 썸머>와 비슷한 류의 영화일 거라 생각하고 영화관에 들어가는 순간 깊은 절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발현하지만, 그리 좋은 방향이 되지는 못했다.

토마스는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발현하지만, 그리 좋은 방향이 되지는 못했다.ⓒ (주)더쿱


03.

제랄드(제프 브리지스 분)는 감독의 그런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역할이다. 토마스(칼럼 터너 분)의 옆집에 사는 아저씨인 제랄드는 주인공이 고민에 빠질 때마다 등장해 그에게 내면의 성장을 촉구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데?" "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데?"와 같이. <500일의 썸머>의 톰과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토니 파커가 어떤 상황에 의해 성장하는 과정을 겪었다면, 이 영화의 토마스는 누군가의 조력과 보살핌으로 성장한다. 물론 영화의 후반부에서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설정의 바로 직전까지다. 그 이후의 제랄드는 조금 다른 역할을 한다.

04.

주인공의 성장에 대한 관점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의 상당 부분이 할애된다. 토마스는 미미(키어시 클레몬스 분)와의 수동적인 관계에 대해 '그녀가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닉의 존재 때문이라 말한다. 미미와 함께 크로아티아로 떠나지 못하는 것 역시 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의 안위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아버지 에단(피어스 브로스넌 분)과 조한나(케이트 베킨세일 분) 사이의 불륜을 막고자 하는 것 역시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토마스. 하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 이 모든 것들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미미가 "닉과 헤어졌다"고 말해도, "결국 다치게 되는 것은 엄마뿐"이라며 헤어지자고 설득하는 조한나의 말에도 개의치 않는다. 결국 궁극적으로 토마스가 바란 건 미미의 사랑도, 엄마의 안위도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는 대목이다. 토마스는 그저 자신이 욕망하는 것과 해야 마땅한 것의 선이 무너지는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타인의 핑계를 댔을 뿐이다.

 그는 미미의 물음에 대답을 회피한다.

토마스는 미미의 물음에 대답을 회피한다.ⓒ (주)더쿱


05.

이에 대해 마크 웹 감독은 자신의 욕망을 알고 적극적으로 갈구하는 것과 순수하고 좋은 사람인 것과는 별개라 말하고 있다. 서점에서 만난 미미가 조한나와 잠자리를 같이 했냐고 묻는 장면에 이어 토마스와 조한나의 베드신이 등장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는 미미의 질문에 대해 "자신이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는 애매한 태도로 거리를 유지하고, 자신이 설정한 경계선을 겉으로 보기엔 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가 몰랐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감추는 행위는 언젠가 결국 시험 당하게 된다는 것. 감독은 이 부분에서 발생하는 토마스의 취약함을 이용한다. 상황을 개선할 수 없으나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공격당한 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상황을 깨부수는 것뿐. 이에 대해 제랄드는 언젠가 이런 대사를 남겼다.

"우리가 밟아서 깨뜨린 연약한 유리잔을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겁니다. 믿음, 사랑, 그리고 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마지막이 고리타분한 출생의 비밀로 귀결되는 것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마뜩지 못한 감독의 연출을 시나리오가 억지로 끌고 가기라도 하듯이 급격하게 전개되는 후반부는 마음을 식어버리게 만든다. 엄마인 주디스(신시아 닉슨 분)와 제랄드 그리고 에단, 세 사람의 옛이야기에 형성되어 있는 설정 또한 억지스러워 아쉬움을 더한다.

06.

우연치고는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마크 웹 감독과 <500일의 썸머>의 조셉 고든 래빗 그리고 이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의 칼럼 터너에 관한 것. 이전까지 주조연을 오가며 관객들의 기억에 남길 타이틀을 만들지 못했던 조셉 고든 래빗은 마크 웹 감독과의 만남으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81년생인 그의 나이 28살 때의 일이다. 상황은 칼럼 터너도 마찬가지. 몇 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대표작이 없다. 90년생인 그의 나이도 현재 28살. 동일한 시점에 마크 웹이라는 같은 감독을 만난 두 배우가 비슷한 길을 걷게 될지 궁금해진다. 북미에서의 두 작품 흥행 성적 차이가 300배 정도 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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