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이라는 가사로 유명한 자우림의 '일탈'도 한때 KBS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당시 가사를 심의하던 한 심의위원은 해당 부분을 두고 "이런 노랫말은 도저히 방송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자우림의 '일탈' 앨범 커버

자우림의 '일탈' 앨범 커버 ⓒ 자우림


1997년 '일탈'이 나왔을 당시 자우림은 "노랫말을 바꿔서 다시 녹음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방송에 못 나간다고 '일탈'이라는 곡이 없어지는 것도 아냐"라고 말하며 가사를 바꾸지 않았다. 만일 자우림이 마음을 바꿔 재심의를 받기 위해 가사를 바꿨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이라는 가사를 노래방에서 두 번 다시 지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EXID의 '덜덜덜'이 얼마 전 KBS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쉿'이라는 가사가 영어 비속어인 'shit'과 유사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EXID는 '쉿'을 'ZIP(집)'으로 바꿔 빠르게 재심의를 받긴 했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다는 인상을 준다. EXID 멤버들은 "전혀 예상을 못 했다", "당황스러웠다"며 당혹감을 표했다.

EXID, 완전함으로 컴백 EXID(LE, 정화, 하니, 솔지, 혜린)가 7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 Full Moon > 쇼케이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 앨범 < ECLIPSE >가 솔지의 부재를 월식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앨범 < Full Moon >은 솔지가 참
여, 완전함을 뜻하고 있다. 솔지는 건강상의 이유로 방송활동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EXID ⓒ 이정민


욕설 등 비속어 심의 1순위... 납득 못할 이유도

올해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노래들이 KBS서 '방송 부적격 판정' 딱지를 달았다. 방송 부적격 판정 사유로는 주로 '욕설·비속어·저속한 표현'으로 인한 것들이 대부분. 싸이의 유명한 노래 'I LUV IT'도 '가시 발라먹어, 씨 발라먹어'가 해당 사유로 인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야 인마'(몬스타엑스 'Now or Never')나 '젠장'(프라이머리 '다이어트'), '걔 소리해도'(킬라그램 '컬러링'), '존잘' (015B '친구와 연인'), '꼰대르비아'(윤종신 '살아온 자 살아갈 자'), '쪽팔림'(브레이브걸스 '롤린') 등의 가사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그다음으로 '인스타그램'(개리의 '고민')이나 '다마고치'(전자양 '오컬트') 혹은 '바비 돌'(이효리 '변하지 않는 건), '벤츠'(비와이 '우노'), '페라리'(사무엘 '123'), '브이앱'(방탄소년단 '파이드 파이퍼') 등 특정 상품 브랜드를 언급했다는 이유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도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다마고치 같은 단어들은 특정 브랜드이긴 하나 일반 명사처럼 폭넓게 쓰인다는 점에서 KBS의 방송 부적격 판정이 아쉬운 결정임에는 틀림없다.

'외설적인 가사'라는 이유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노래도 많다. 대체로 정사 장면을 직간접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에서다. '스치는 니 입술 입안의 선분홍 내 안에 들어온 부드러운 레드야/다리를 겹쳐 앉고 맨살을 비비는 우린'(장재인 '벨벳')이나 '칵테일 쉐이크 잇 하듯이 너와 소파 위에서 섞이고 파'(워너 '아일랜드'), '양기가 넘쳐'(아이콘 '벌떼') 등이다.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다소 황당한 이유도 있다. 미소의 노래 '낄끼빠빠' 중에 '낄끼'라는 말이 단지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이유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이 나거나 박인호의 '우리도 핵무기'라는 노래가 '불안감·공포감'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기도 했다. NCT127의 경우 '머리를 맞춰. 너의 머리를 터뜨려'라는 가사가 '폭력 행위를 묘사한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삐까뻔쩍'(피오 '맨즈나잇') 같은 표현은 일본어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적격이라고 한다.

 빅뱅 '에라 모르겠다' 뮤직비디오 중 일부분

빅뱅 '에라 모르겠다' 뮤직비디오 중 일부분 ⓒ YG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후 가수들의 대처도 제각각이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주로 문제가 된 가사 내용을 수정해 재심의를 받아 방송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편. 위에서 언급한 EXID '덜덜덜'이 그런 경우다.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은 곡이 아닌 다른 곡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는 반면 부적격 판정을 받은 가사를 수정 없이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빅뱅의 '에라 모르겠다'도 가사 속 특정 단어들이 결국 부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가사를 수정하지도 않았고 재심의를 받지도 않았다. 당시 KBS에서만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은 노래 '에라 모르겠다'로 인해 'KBS가 YG 가수들을 고의적으로 배제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가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KBS가 가장 엄격한 편'이라고 평가받는다. 단, 올해 '이명박 헌정곡'으로 논란이 된 이승환 '돈의 신'의 경우 오직 MBC에서만 부적격 판정을 받는 등의 언제나 예외는 있다.

민주화 이후 방송사에서 더욱 '엄격해진 잣대'

그렇다면 언제부터 방송 3사가 가요 관련 심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걸까. 1996년 음반과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공연윤리위원회의 대중음악 사전 심의가 중단된 이후 방송국이 자체 심의를 강화했다.

그후 '방송 3사의 가요 심의가 부적절하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은 20년간 꾸준히 있었다. 1997년 <한겨레>에 한 시민은 "음반 사전심의 제도가 폐지된 마당에 방송 부적격 판정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며 "방송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새로 나오는 노래를 얼마든지 제압하겠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Take2' 뮤직비디오 중 일부분

서태지와 아이들 'Take2' 뮤직비디오 중 일부분 ⓒ 서태지


서태지나 H.O.T. 그리고 윤도현 같은 가수들도 '방송 부적격 판정'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1998년에 발매된 서태지의 '테이크투'의 경우 '머저리 같은 니가', '깡통 같은 자식들', '더럽게 좀 굴지마' 같은 가사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며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다.

당시 양현석의 노래 '무시'(언론 비판)나 '악마의 연기'(핵으로 인한 파괴와 오염 비판), '약한 자가 패배하는 세상' 등도 가사가 과격하다는 이유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은 "왜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의 노래는 전부 방송 금지인가", "서태지와 아이들을 탄압하지 말라"라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1998년 9월 <동아일보>)

H.O.T.는 자살이 소재인 노래 '모나데'나 '늑대와 양'('에이 늑대 빌어먹을 짐승 같은 놈들') 같은 곡들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1998년 박노해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윤도현의 '이 땅에 살기 위하여'는 방송 3사로부터 모두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MBC는 "보수층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말로, KBS는 "선동적인 묘사로 국민 정서를 해친다"는 말로 방송 부적격 딱지를 붙였다. '이 땅에 살기 위하여'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온 이 땅/우리의 노동으로 일떠세운 이 땅에/사람으로 살기 위하여/우리는 쫓기고 쓰러지고 통곡하면서/온몸으로 투쟁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윤도현은 '선동적'이라는 심의 내용에 대해 "엉뚱하다"며 "건전한 문화를 위해 심의한다면서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자는 우리 노래는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금지됐다"고 밝힌 바 있다.

 '가혹하고 이기적인'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가혹하고 이기적인'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 DanalEntertainment


용산 참사와 4대강 사업 등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노래에 대해서도 부적격 판정이라는 철퇴가 떨어졌다. 용산 참사를 노래한 한동준의 '가혹하고 이기적인'('붉은 화염이 점점 밀려와 희망을 찾긴 너무 늦은 듯해/가혹하고 이기적인 질서에 쫓겨서 망루까지 올랐어/더 이상 짓밟히긴 싫어 훗날엔 타는 영혼 없기를')은 "사회 갈등 조장 및 직설적인 표현"이라는 이유에서, '흐르는 강물처럼'('거짓의 연속으로 거친 숨을 쉬는 걸 우린 알고 있잖아/저 강과 함께 흘러온 오랜 세월의 이치와 생명 절망의 늪은 막아야지')은 '부정적인 가치관 조성' 등이 방송 부적격 판정의 사유가 됐다. 표현의 자유에 전형적으로 반하는 판정인 셈이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대표곡 '졸업'은 '짝짓기'나 '팔려가는' 등의 특정 가사만 떼어다가 노래 전체의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교미 행위나 성매매를 연상시킨다'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기도 했다.

2011년 민주당 김재윤 의원은 "KBS가 사회 현실이나 정부 비판을 다룬 노래를 방송 금지곡으로 판정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KBS가 방송금지 판정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는 '방송 부적격 판정'에 대해 사회적인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 의견가는 "청소년들이 들었을 때 좋지 않은 의견을 미치는 경우 보통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리는데 심사를 하는 이들은 기성세대들이다. 이들이 열린 시각으로 판정을 진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며 "물론 욕설이나 소수자를 비하하는 노래의 경우 걸러내는 게 맞지만 어떤 노래에 부적격 판정을 내릴지 그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는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방송부적격판정 자우림 빅뱅 EXID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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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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