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가 '단편 영화 활성화'라는 소기의 취지를 넘어 매회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어느덧 5회를 맞은 <전체관람가>는 네 번째 단편영화 제작기에 돌입했다. 앞서 장윤철 감독은 실사 영화와 게임의 컬래버레이션을 구현했고, '에로 영화'로 이름을 날렸던 봉만대 감독은 가족 영화를 찍었다. 이원석 감독은 새로운 장르 '노래방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5회의 주인공 박광현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평균 2000억 원여 제작비가 든다는 액션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을 15분 짜리 단편 영화에 담는다.

3000만 원이라 불가능해서, 가능해진 블록버스터 품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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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3000만 원 초저예산 단편 영화와 블록버스터는 모순적인 조합이다. 당초 이원석 감독 역시 액션 영화를 원했지만 열악한 제작비 탓에 '노래방 뮤지컬'로 선회해야 했다. 이처럼 주어진 제작비는 영화 자체를 규정한다. 박광현 감독은 "3000만 원은 판타지다"며 과감하게 돈으로 제한된 제작 환경을 뛰어넘어 버린다. '제작비 3000만 원'이라는 현실적 조건에 '구걸'과 '협조'로 대응하며 17년간 하고자 했지만 '투자'라는 벽에 막혀 이루지 못했던 꿈을 단편 영화에 과감히 담는데 성공한다.

박광현 감독은 "아마도 장편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3일'의 짧은 시간적 여유에도 불구하고 박광현 감독은 단편 영화 활성화라는 좋은 취지로 영화 <웰컴 투 동막골>(2005), <조작된 도시>(2017)를 함께 했던 스태프부터 유명 디자이너, 심지어 밥차까지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불가능한 제작비가 꿈을 실현시킬 품앗이의 기반이 된 것이다. 덕분에 박광현 감독은 제작 지원을 받은 엑스트라 100명과 제작비 3000만 원으로 세팅한 현장 이외에 무려 카메라 3대의 지원을 비롯해 의상, 미술, 제작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박광현 감독은 그렇게 15분 짜리 단편 블록버스터를 완성했다.

만약에 영웅이 못생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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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2일 방영된 박광현 감독의 단편 영화 '거미맨'을 두고 제작비를 넘어선 품앗이로만 기억하는 것은 아쉽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꽉 찬 '거미맨'이지만, 상업성 측면에서 봤을 때 투자 받기 어려운 소재임은 맞다. 그러나 박광현 감독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이 비운의 'B급 히어로물'을 단편 영화로 실현시켰다. 게다가 불편할 정도로 직관적이고 뚝심 있는 현실 반영 역시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다.

'외모 지상주의'를 주제로 선택한 박광현 감독은 영화 <스파이더맨>을 패러디하면서 오늘날의 현실을 투영했다. 실제 거미는 항문에서 거미줄을 내뿜지만 히어로물 속 '스파이더맨'은 손에서 거미줄을 발사한다. 박광현 감독은 이를 뒤집어 '거미맨'의 항문에서 거미줄이 나오게 만들었다. 또한 늘씬한 몸매의 히어로 대신 배불뚝이에 얇은 팔다리를 갖고 심지어 가면을 벗었을 때 땀에 젖어 갈라진 머리칼이 초라하게 드러나는, 언제나 현실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대머리 아저씨를 영웅으로 등장시켰다. 대신 늘씬하고 잘생긴 건 악당에게 양보했다. 심지어 '거미맨'이 초능력자가 되는 과정도 어린 시절 또래들에게 집단 '왕따'를 당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정했다.

젊음이 가득한 클럽, 악당은 클럽의 '수질 관리'를 탓하며 못생긴 여성 파트너를 발차기로 날려버린다. 소란에 불만을 표출하던 사람들은 가면을 벗은 악당의 멀끔한 외모에 비난 대신 감탄을 날린다. 폭력를 당한 여성의 외모를 본 후 사람들은 오히려 '악당'을 응원하기에 이른다.

이때 암전이 되면서 하늘에서 황금빛 거미가 등장한다. '거미맨'은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에 나오듯 한껏 멋있는 척 등장하려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거미맨은 항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미줄에 의존해 궁색하게 내려오는 것도 모자라, 자신을 악당으로 오인한 경찰들과 동네 떼싸움 같은 장면을 연출하면서 초라하게 등장한다.

잘생긴 악당을 응원하는 사람들... 진짜 영웅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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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정점은 클럽에서의 대치 장면이다. 가면이 벗겨진 뒤에도 여전히 '정의'를 수호하려는 거미맨과 악당은 1대 1 대결을 펼친다. 클럽에 모인 사람들은 분명 악당의 폭력을 목격했으면서도 그의 외모에 매료돼 악당을 응원한다. 악당이 '거미맨'을 날려버릴 때마다 클럽에는 환호성이 울려퍼진다.

가면이 벗겨져 초라하고 악당에게 무참하게 짓밟혀 더 불쌍해진 거미맨 앞에 그의 본명 '수호'를 부르며 첫사랑이 나타난다. '엄청난 뚝심'의 소유자 박광현 감독은 3000만 원의 한계에 타협하지 않고 굳건한 주제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리고 마침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묵직한 판타지 영웅물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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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맨'을 통해 박광현 감독은 질문한다. 늘 이겨야만 혹은 '우생학적 적자'만 주목받는 세상에서 영웅은 무엇일까? 정의롭지만 성공하지 못한 영웅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존재론적 질문과 함께 이 영화는 '외모 지상주의' 세상에도 화두를 남겼다.

15분짜리 '거미맨'은 마치 100분 장편 영화 못지않은 묵직한 감상의 무게를 남겼다. 이명세 감독은 "단편 영화의 형식에 장편 영화를 끼워넣은 듯하다"라고 지적했지만, 박광현 감독의 15분 한계를 넘어선 도전과 주제 의식은 <전체 관람가>의 지평을 무한하게 확장했다. 적은 제작비, 제한된 제작 환경으로 한국의 자본주의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던 영화 '거미맨'은 이렇게 단편의 위상을 새롭게 부상시켰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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