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앤비(R&B)는 힙합과 더불어 한국에서 많이 사랑받고 있는 음악 장르다.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1990년대에 솔리드와 조규찬, 유영진이 있었고, 2000년대에는 브라운 아이즈, 그리고 휘성을 위시한 엠보트 사단이 있었다. 한때는 바이브레이션과 고음을 강조한 '소몰이 창법'이 곧 알앤비라고 여겨지는 촌극이 펼쳐지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아이돌 중에서 군계일학의 실력을 보유했던 태양, 박재범이 있다. 미디어의 발전으로, 해외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수혈한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했다. 미국에서 먼저 싱글을 발표한 딘(DEAN), 그리고 자이언티나 크러쉬도 대중들의 거대한 지지를 받고 있다. 주류 아이돌 보컬들이 노래하는 방식도 알앤비 보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우리가 인상깊게 지켜보아야 할 알앤비 뮤지션이 한 명 더 있다. 1993년생의 뮤지션 지바노프(jeebanoff, 본명 : 지반)다.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고 스스로 부른다. 2017년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상을 받으며 기량을 인정받았지만, 아직 대중들은 그의 이름을 잘 모른다. 아직 데뷔한 지 오래 되지 않았고, 방송 매체에 많이 노출되지 않았다.

지바노프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뿌리를 둔 뮤지션이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는 현재 흑인음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조류다. 알앤비를 다양한 장르들과 결합시켰으며, 신시사이저와 믹싱을 통해 몽환적인 잔향을 연출하곤 한다. 위켄드(The Weeknd), 미겔(Miguel), 프랭크 오션(Frank Ocean), 갈란트(Gallant), 시저(SZA), 그리고 딘 등을 뽑을 수 있다.

첫 정규 앨범 앞둔 지바노프, 두 장의 EP로 신뢰 충분히 쌓았다

 지바노프의 첫 EP < so fed up >

지바노프의 첫 EP < so fed up > ⓒ 루미넌트엔터테인먼트


지바노프의 가치는 첫 앨범 < so fed up >에서 잘 드러난다. 공통적으로 가라앉는 듯한 정서가 깔려 있지만, 트랙마다 다루는 이야기들은 판이하게 달라서 듣는 재미가 있다. 'hardcore'에서는 하룻밤의 격정적인 무드를 생생하게 연출한다. 그에게 한국대중음악상을 안긴 '삼선동 사거리'에서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고백한다. (성북구 삼선동은 그가 살았던 반지하 방이 있었던 곳이다)

"그땐 몰랐을 걸 내 사람들
펼쳐질 일들과 바라볼 꿈과
내가 함께 묵던 지하방 시간도"

두 번째 EP인 < for the few > 역시 청춘의 순간들을 멋지게 그려낸 무대다. 딥하우스(EDM의 한 갈래)의 절제미를 받아들인 'Belief'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낙관하며 춤춘다. '우린 이제 영화도 볼 수 없고 이제 동물원도 못 가'라고 노래하는 'Table'의 공허함도 꽤 매력적이다. 첫 정규 앨범을 앞두고 발표한 두 장의 EP만으로도 그에 대한 신뢰는 충분히 쌓였다.

내가 그를 처음으로 본 것은, 2017 한국 대중음악상 시상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비니를 눌러쓰고 단상에 오른 지바노프는 자신이 '상을 받을 줄 몰랐다'면서 수줍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음악만큼은 결코 수줍지 않다.

지바노프 삼선동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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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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