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인생

ⓒ KBS 2TV


50부작 대장정을 시작했던 KBS 2TV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어느덧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회차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KBS 주말 드라마의 아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23회, 37.9%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측불허의 전개는 '역시 소현경!'이라고 절로 감탄하게 한다. <황금빛 내 인생>은 지난 8월 종영한 KBS 2TV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의 최고 시청률(36.5%)마저 깨버렸다. 이제 시청자들은 소현경 작가의 또 다른 화제작 KBS 2TV <내 딸 서영이>(2012)의 기록(47.6%)을 깰 수 있을지를 관전 포인트로 삼고 있을 정도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은석, 아니 지안

 황금빛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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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빛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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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시청자들을 가슴 졸이게 했던 서태수(천호진 분), 양미정(김혜옥 분)의 가짜 딸 사기 사건은 20회를 기점으로 들통났고 은석이었던 서지안(신혜선 분)은 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와 달리, 찜질방과 거리를 전전하던 은석, 아니 지안은 가족들과 함께 놀러왔던 바닷가에서 홀로 추억에 잠기다 결국 숲에서 약을 입에 털어넣는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였다.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져버린 '친딸 사기 사건'의 시작은 단순했다. 해성그룹 부회장 최재성(전노민 분)과 아내 노명희(나영희 분)는 오래도록 딸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사기꾼들에게 농락 당했다. 이제 은석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해 질 즈음 딸을 유괴했던 당사자들로부터 친딸의 생존 소식이 도착한 것. 유괴범들을 닦달해 서태수, 양미정의 집에 찾아간 두 사람은 딸을 내놓으라고 했고 순간 양미정은 거짓말을 해버린다.

서태수의 사업 실패 이후 가족들은 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왔다. 그 가운데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이었던 서지수(서은수 분)는 가족들의 사랑 아래 부족함 없이 자라온 반면, 쌍둥이 언니 서지안은 그녀가 도전한 세상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갖은 허드렛일은 다 하면서 정규직이 되고자 했지만, 해성 어패럴은 서지안 대신 든든한 집안을 둔 친구 윤하정(백서이 분)을 선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도경과의 악연은 그녀에게 차 수리비 명목의 수모를 안긴다. 더는 버틸 수 없다며 좌절하는 딸 지안을 지켜봤던 엄마 양미정은 도도한 노명희의 요구에 순간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황금빛 내 인생>은 궁핍으로 인해 뒤틀린 선택을 하는 엄마 양미정과 딸 서지안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물신주의'를 짚었다. 지안은 노명희 앞에서 아버지가 차마 진실을 꺼낼 수 없게 만들었고, 노명희는 진실이 밝혀진 후에 양미정에게 "당신의 딸을 괴롭히겠다"고 선전 포고했다. 돌아오지 않는, 그리고 돌아갈 수도 없는 딸이 된 이번 '친딸 사기 사건'은 지안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론으로 마무리 됐다.

엄마와 딸, '물신주의적 욕망'의 행보

 황금빛 내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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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빛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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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숟가락의 빛깔로 세상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는 자신이 타고난 숟가락이 삶을 결정한다는 '운명론적 사고'에 매몰될 수 있다.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운명론적 사고'에 소현경 작가는 도발적인 음모를 통해 그 욕망을 점검한다.

엄마 양미정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자식을 위해서"라고 합리화 했다. 친딸이 죽고 으슥한 인가에서 어린 지수를 만났을 때 양미정은 "그냥 두면 죽었을 거다"며 자신의 딸처럼 끌어안았다. 그 '이기적 모성'은 변함없이 그냥 두면 스스로 무너질 것 같았던 딸 지안에게 향한다. 그리고 나머지 자식들을 위해 딸을 키운 대가인 음식점을 받는다. 서태수의 사업 실패 이후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양미정은 그 모성으로 '돈'을 선택한다.

딸 지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신이 재벌집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안은 단번에 태세를 전환한다. 말리는 아빠도, 동생도 아랑곳 없이, 그간 세상과의 싸움에서 너무 지쳤던 그녀는 선뜻 재벌가의 딸이라는 자리를 받아든다.

그러나 덜컥 받아든 '황금'은 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루 아침에 금수저가 된 지안은 매일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인정 투쟁'의 시간을 버텨야 했다. 밖에서는 고달파도 돌아오면 따스했던 가족 대신, 피보다 진한 재벌가의 위계 속에서 고군분투 했다. 마치 소현경 작가가 88만 원 세대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그 '수저'의 삶도 만만치 않다"고 말하듯, 재벌가로 들어간 지안의 하루하루는 고달프다. 소현경 작가는 흔히 주말 드라마들이 빠지기 쉬운 흙수저 집안의 가족주의 vs. 금수저 집안의 이기주의라는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지안이 무엇을 탐했고, 외면했는가를 이후 과정을 통해 날카롭게 짚어냈다.

진실이 밝혀진 후 양미정, 지안 모녀는 자신들이 저지른 사태에 대한 감당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고 '물신주의적 선택'이 낳은, 생각지도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식을 위해서라며 합리화 했던 미정은 큰 아들에게도 외면 받고 쌍둥이 딸 역시 두 사람 중 누구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잃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황금빛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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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신만을 생각하며 재벌가로 들어갔던 지안은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간 자신의 걷잡을 수 없는 선택에 대해 깊은 회한에 빠진다. 그 결과 법적 처벌 이전에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는 극단적 선택에 도달하게 된다.

'황금빛 내 인생'을 바랐던 엄마와 딸의 이기적 선택은 가장 처절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드라마의 한 장을 마무리했다. 흙수저의 어긋난 로또는 이렇게 자기 반성과 회한으로 종결된 것이다. 흙수저의 도발과 이를 처리하는 것에 집중했던 드라마는 이제 금수저 집안의 반성과 회한이라는 2막을 열고자 한다. 그 2막의 시작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사랑으로 자란 지수의 도발적인 재벌가 행으로 열릴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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