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계가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해 보이콧까지 했는데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지 화가 난다"며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을 전락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지난해 5월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유성호


200. 이용관 – 중앙대 연극영화과 교수

지난 30일 발표된 국정원 개혁위원회의 '문예계 내 左(좌)성향 인물 현황'(블랙리스트) 249인 명단 중 이용관 부산영화제 전 집행위원장 이름은 200번째에 들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블랙리스트지만 이명박 정권 때의 이력이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리스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용관 전 위원장은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좌파 영화제' 이름 덧칠하기가 진행될 당시에도 제거 대상으로 꼽혔다. 당시 부산영화제에 대한 좌파 공세는 이용관 전 위원장 개인에 대한 공세나 다름없었다.

이명박 정권에서 이용관 전 위원장은 위기를 꿋꿋이 버텨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2014년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빌미로 대표적 친박 측근이던 서병수 부산시장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에 정치적 압박을 가했다. 개인 비리가 나오지 않자 주변 인사들까지 먼지 털이식 수사를 벌였다. 그럼에도 이용관 전 위원장이 자진 사퇴를 거부하자 검찰 고발 등의 방법으로 2016년 사실상 강제해임 시켰다. 이명박 정권이 하지 못 했던 일을 완수한 것이다.

그 후 올해까지 2년 연속 부산국제영화제는 파행을 겪었다. 영화인들의 투쟁은 올해 개·폐막식의 레드카펫까지 이어졌지만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서병수 시장 사과와 이용관 명예회복을 원했던 영화인들의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 집행부는 결국 올해 영화제 폐막을 끝으로 물러났다.

영화계, 이용관 복귀는 부산영화제 정상화 필수조건

 영화인들의 거센 반발 속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레드카펫 대신 일반 출입구로 들어서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영화인들의 거센 반발 속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레드카펫 대신 일반 출입구로 들어서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 부산국제영화제


새로운 집행부 구성을 통해 재편을 앞둔 부산영화제의 핵심은 이용관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과 이후 거취 문제에 있다. 영화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은 부산영화제 정상화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영화단체들은 부산영화제의 정상화의 최소 조건으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고, 구체적으로 서병수 시장에 의해 쫓겨났던 2016년 2월 25일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한 상태다. 즉 이용관 전 위원장의 복귀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는 뜻이다.

부산영화제를 이끌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은 이사회를 통해 선임한다. 이사회는 부산시와 영화계 추천 인사가 각각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사회 소집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대부분 새로운 집행부 구성에 대해서는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영화인 이사들은 "영화계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서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는 상태다. 

부산 지역에서는 정치적 비중 있는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모습이나, 국내 영화계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복귀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완전히 새판을 짜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용관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영화계 인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 전 위원장은 강제 퇴임 이후 박근혜 정권과 서병수 부산시장에 계속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과정에서 부산영화제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수차례 밝혔으나, 영화계의 요구가 워낙 거세지면서 이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자신을 위해 싸웠던 영화인들이 정상적인 복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위상과 권위가 실추된 영화제의 회복과 이후 세대교체 등을 완수하고 명예롭게 물러나라는 요구를 외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부에서 거론됐다가 없던 일이 됐던 명예 집행위원장 제안을 개인적으로 원치 않았음에도 고민했던 이유도 비슷했다. 영화계 전체의 요구라면 거부할 명분이 마땅치 않기에 고민했던 것이다.

부산영화제 사무국 분위기 또한 이 전 위원장에게 무게를 싣는 쪽이다. 지난 8월 집단성명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을 요구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올해 영화제 과정에서 모든 스태프들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쳤던 것도 부산영화제 안정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란 큰 기둥이 사라진 상태에서 직원들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이 전 위원장뿐인 것이다.

구조적 독립성 확보도 중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영화의 바다로… 제22회 BIFF 개막식 사회 맡은 장동건-윤아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수많은 시민이 참석해 개막작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2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21일까지 세계 75개국 300편의 작품이 해운대 영화의전당과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CGV센텀시티, 메가박스 해운대,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32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야외무대인사, 오픈토크, 핸드프린팅 등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수많은 시민이 참석해 개막작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부산영화제는 제도적 구조적 독립성 확보와 세대교체도 수년 안에 이뤄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지난해 정관개정을 통해 부산영화제는 부산시와 영화계가 5: 5의 비율로 이사회와 집행위원장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부산시 추천 이사들 중 영화계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여럿 있고 가부동수 일 때 이사장이 결정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집행위원장은 "실질적 독립성이 확보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영구적인 독립성 확보에는 미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자신의 사퇴 조건으로 완전한 독립성 확보를 요구했던 이 전 위원장은 이마저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자 영화제 구성원들에게 서운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치적 권력이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훼손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관 개정을 다시 해 영화인 이사진이 과반 이상을 차지해 정치권력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는 영화제를 만들어 놓는 것은 새로운 집행부에 요구되는 역할이다. 이용관 전 위원장이 복귀를 통해 마무리해야 할 책무라는 것이다.

영화계의 사과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서병수 시장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이용관 전 위원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서 시장은 영화인들로부터 '뻔뻔하다, 후안무치하다'는 비판을 듣고 있음에도 부산영화제 사태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서 시장으로선 이 전 위원장의 존재가 상당히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서 시장은 2015년 11월 시장 공관으로 찾아간 이 위원장이 "개인비리가 없으니 기회를 주면 내년까지 마무리하고 떠나겠다"고 제안했으나 "법대로 하자"며 일축했다. 이 전 위원장 역시 "그럼 법대로 해보자"며 자리를 나왔다.

이후 두 사람은 지난 5월 이 전 위원장이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서 시장이 조문객으로 오며 다시 마주쳤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위원장은 서 시장의 악수 요청을 손바닥으로 막아서며 거부했다. 이 전 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에 일조한 부산시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당시 김세훈 영진위원장의 악수 요청도 거부할 만큼 영화제를 망치는데 동조한 인물들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를 지냈고, 지금도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는 한 영화인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유일한 전투력은 이용관 전 위원장이었다며, 영화제를 망쳐놓은 서병수 시장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이용관 전 위원장의 복귀와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산 영화인들 서병수 시장과 일전불사 다짐
 지난 10월 20일 열린 '영화네트워크 부산' 발기인 대회에 참석한 영화인들

지난 10월 20일 열린 '영화네트워크 부산' 발기인 대회에 참석한 영화인들 ⓒ 성하훈


부산지역 영화계 인사들은 재선을 꿈꾸고 있는 서병수 시장이 이용관 전 위원장의 복귀를 막으려 하거나 방해할 것으로 예상하고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서 시장이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며 영화제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뗐지만 이사 선임 권한을 통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격 없는 지역 인사들이 영화제 집행부 자리에 욕심을 내는 것이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부산지역 인사들은 부산영화제 기간이었던 지난 10월 20일 동서대학교에서 '영화네트워크 부산' 발기인대회를 열어 부산영화제 사태 해결에 지역 영화인들이 일정한 역할을 맡기로 했다. 76명의 부산지역 영화인들은 발기문을 통해 "블랙리스트 파문의 대표적 사례인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는 부산 시민이 애써 길러낸 문화 자산을 바로 '지역의 권력'이 파괴했고, 그 권력이 지금까지도 책임과 진실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를 분노하게 한다."고 서 시장과의 일전 불사 의지를 밝혔다.

이어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둘러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허물어진 영화제의 회복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며 기존의 조직과 단체, 이해관계와 장르를 넘어서서 담대한 목표와 확고한 공공성을 추구하는 새롭고 더 강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당장 시급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상화' 등에 기여하고자 하고자 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올해 부산영화제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한 중견 영화제작자는 "이용관 전 위원장의 복귀는 부산영화제 정상화의 상징이기에 당연하게 이뤄져야 할 일"이라며, 한편으로 "재판 전에 직위해제 당해 영화제에서 내쫓긴 전양준 전 부집행위원장도 역시도 20년 간 영화제 발전에 기여한 공이 훨씬 크기 때문에 명예로운 복귀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찬욱 감독 역시 "영화에 대한 많은 것들을 전양준 전 부위원장을 통해 배웠고, 모욕을 당하시는데도 도와드릴 수 없어 힘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며 "저희 세대가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잘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 이용관 전양준 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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