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그룹 에픽하이는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컴백 콘서트를 개최했다.

3일 그룹 에픽하이는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컴백 콘서트를 개최했다. ⓒ YG 엔터테인먼트


2003년 힙합 그룹 에픽하이(타블로, 미쓰라, 투컷)는 앳된 목소리로 10년 뒤 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에픽하이 1집 '10년 뒤에')를 썼다. 에픽하이는 그들이 궁금해했던 10년 뒤를 훌쩍 지나, 어느새 15년 차를 바라보는 베테랑 뮤지션이 됐다. 한국 힙합의 대중화를 이끈 주역, 최고의 '리리시스트(lyricist)'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멤버 전원 유부남이 됐다.

한편, 말로 설명 못할 고난들도 겪었다. 신곡 'BLEED'의 가사처럼 은퇴와 해체를 몇 번이나 고민하기도 했다. 정규 9집 <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은 지난 14년간의 모든 서사가 모여 완성된 앨범이다.

지난 3, 4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에픽하이의 컴백 콘서트가 열렸다. 5집 인트로 'Be'에 이어, 신보의 첫 곡인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로 공연이 시작됐다. 날이 선 두 사람의 랩, 저스트 블레이즈나 초기 카니예 웨스트를 연상케 하는 소울 샘플링은 곡의 무게를 더했다. '산전수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에픽하이의 커리어를 축약하기에 충분했고 당당한 오프닝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3일 그룹 에픽하이는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컴백 콘서트를 개최했다.

ⓒ YG 엔터테인먼트


"바람 잘 날 없지. 내 일기장은 해마다 절판 위기에 빠지네. 지금의 난 37쇄. 알 수 없어." / 에픽하이 정규 9집 앨범 수록곡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중에서

이어 에픽하이는 '노땡큐', '부르즈 할리파', '1분 1초', 'BLEED' 등 추억의 노래와 신곡들을 고루 섞어 들려줬다. 'Fan'에서 투컷이 보여주던 춤실력 역시 여전했다. 20대 중반인 나는 에픽하이를 통해 힙합을 만났다. 'One'을 부를 때는 중학생이었던 2008년으로 돌아간 듯 했고, 8집 <신발장>의 수록곡을 들을 때는 군대에서 CD플레이어를 들으며 마음을 위로하던 숱한 날들이 떠올랐다.

아이유, 싸이, 이하이... 연일 막강한 게스트까지

최근 음원 차트와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연애소설'을 부를 때는 스페셜 게스트로 아이유가 등장했다. 아이유는 공연 전날(3일) 부산 콘서트를 마치고 왔지만 맑은 목소리로 팬들에게 인사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마치 아이유 콘서트에 온 것처럼 '금요일에 만나요', '밤편지'를 따라 불렀다.

3회에 걸쳐 열린 에픽하이 콘서트는 연일 막강한 게스트들과 함께 했다. 첫날 공연에는 임창정과 악동뮤지션 수현, 두번째 공연에는 아이유가 함께 했으며, 마지막 공연에는 이하이, 싸이가 깜짝 출연했다. 타블로의 막역한 친구들인 하동균과 넬 김종완은 3회 차 공연에 모두 참여하며 '우울한 동갑내기 감성'을 전달했다.

 3일 그룹 에픽하이는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컴백 콘서트를 개최했다.

ⓒ YG 엔터테인먼트


이 날 공연에서 가장 인상깊은 순간은 '어른 즈음에'를 부를 때였다. 에픽하이 멤버들끼리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타블로는 '잘 지내고 있냐'고 노래의 운을 뗐다. 한때 에픽하이가 혁명('Lesson2')을 외쳤고, 홀로 거니는 서울의 풍경('혼자라도')을 노래했다면, 지금 세 남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들은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문배동 단골집')을, 애 키우는 일의 어려움('어른 즈음에')을 말한다. 뮤지션들은 이런 식으로 나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늘어가는 전화번호들과 인사 대신 주고받는 명함들 속엔 없지. 창문 밖에서 내 이름 외쳐대던 친구들이 주던 평화." 에픽하이 정규 9집 앨범 수록곡 '어른 즈음에' 중에서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에픽하이는 <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이라는 앨범 제목에 대해 결코 자신감의 표출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만만해보이는 이 제목은 사실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격려였다고. 행복으로 가득 찬 공연장 밖으로 나가면 다시 고뇌들이 닥쳐 오겠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해냈다'는 것이다.

 3일 그룹 에픽하이는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컴백 콘서트를 개최했다.

ⓒ YG 엔터테인먼트


타블로는 "자신들의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모두 자신들에게 큰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타블로는 '빈차'를 부르기 전에, 이 말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고 'New Beautiful', 'High Technology' 등 신나는 곡들을 부르던 그였다. 그의 복잡한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피처링을 맡은 오혁 파트를 멤버 세 명이 나눠 불렀다. 오혁에 비하면 어설픈 노래 솜씨일지 모르겠지만 결코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예정된 앵콜 요청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에픽하이는 네 곡의 앵콜을 이어갔다. 앵콜곡 'Born Hater'를 부르던 도중 타블로는 잠시 음악을 멈추고 'Your Life Is God'이라는 메시지를 타올 위에 써나갔다. 뒤이어 미쓰라는 "14년 동안 무대에 설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타블로가 추는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풀 버전은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유통기한은 있다. 에픽하이라는 팀이 영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객석을 가득 채운 이들의 삶도, 나의 20대도 영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무력해지지는 않았다. 고민으로 점철된 일상이 이따금 선사하는 행복에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에픽하이의 음악을 플레이 리스트에 가득 넣어놓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