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 강사 이체 감독과 수강생들이 직접 영화를 촬영하는 모습.

광주영상미디어클럽 강사 이체 감독과 회원들이 직접 영화를 촬영하는 모습. ⓒ SISFF


자연상태에서 모든 에너지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흐른다. 그러나 어떤 생명체는 이같은 자연법칙을 거슬러 가치 있는 결정을 빚어내곤 한다. 삶 그리고 청춘의 특권이다.


지난날 나는 청춘이 물리적 젊음에 한정된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난해 우연히 찾은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영화 <엄마의 편지>를 만나고, 다시 올해 이 영화의 메이킹필름인 <노인을 위한 영화는 있다>를 보고 그토록 좁았던 나를 반성한다.


사무엘 울만은 시 <청춘>에서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6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고 썼다. 그는 이 시에서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 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고 청춘관을 밝혔다. 돌아보니 과연 그가 옳다.


어디 육십뿐이겠는가. 백세인생이 더는 구호로만 느껴지지 않는 요즘 이 세상에선, 팔십의 노인도 카메라를 들고 연기를 한다고 나선다. 일흔을 넘겨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 영화인을 몇 알지 못하는 나와 같은 독자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서울노인영화제를 방문할 것을 권한다. 매년 가을 빼놓지 않고 열리는 이 영화제에선 스무 살 젊음 못지않은 푸르름을 간직한 노인들이 만든 영화가 극장 스크린에 걸린다. <노인을 위한 영화는 있다>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한 편이다.


노인을 위한 영화는 '있다'

 
 
 2017 서울노인영화제 공식 포스터.

2017 서울노인영화제 공식 포스터. ⓒ SISFF


<노인을 위한 영화는 있다>는 지난달 막을 내린 제10회 서울노인영화제 단편경쟁 부문 출품작이다. 앞에 적은 것처럼 지난해 출품작인 <엄마의 편지>의 메이킹필름으로, 생애 첫 영화를 제작하는 어르신들이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담아내 유쾌함을 던진다.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절절한 연기로 유명 배우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한 이춘자 할머니를 캐스팅하는 과정이나 이를 마땅치 않아 하는 자녀들에게 영화를 처음 선보이는 순간도 그대로 담아냈다.


메이킹필름은 영화 제작 뒷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엮은 필름을 말한다. 보통 영화홍보에 필요한 영상을 얻기 위해 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노인을 위한 영화는 있다>처럼 따로 편집을 거쳐 별도의 작품으로 발표하는 건 흔치 않은 경우다. 제작진은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추억하는 차원에서 현장 영상을 촬영했는데 나중에 영상을 보니 워낙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아 따로 영화로 제작했다고 만든 배경을 전했다. 메이킹필름 촬영은 제작진 가운데 한 명인 윤병훼 씨가 맡았다.

 

영화는 꽤 재미 있다. 60대 초반부터 80대까지 아우르는 광주영상미디어클럽 회원들이 어려움을 딛고 <엄마의 편지>처럼 강한 힘을 가진 작품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메이킹필름의 특성상 <엄마의 편지>를 본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겠으나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나 이 메이킹필름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 확신한다.

 

한 번도 연기해본 적 없는 이춘자 할머니에게 생애 단 한 번 독립영화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회원이 연기를 지도하는 장면, 슬레이트 치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작업하는 과정, 촬영을 위해 찾은 시골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들을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 지도하는 모습,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재능 있는 작곡가 최준씨가 주제곡을 작곡하며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털어놓는 장면, 영화의 백미라 할 만한 할머니의 오열 장면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여주는 대목 등이 제법 흥미롭다.


사람을 늙게 하는 편견, 그 편견을 깨부수는 영화

 
 
노인을 위한 영화는 있다 영화는 지난해 서울노인영화제 단편경쟁 부문 출품작 <엄마의 편지> 제작과정을 담은 메이킹필름이다. <엄마의 편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들에게 편지를 전하고자 길을 떠난 한 시골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았다.

▲ 노인을 위한 영화는 있다 영화는 지난해 서울노인영화제 단편경쟁 부문 출품작 <엄마의 편지> 제작과정을 담은 메이킹필름이다. <엄마의 편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들에게 편지를 전하고자 길을 떠난 한 시골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았다. ⓒ SISFF


영화를 보고 난 뒤 드는 가장 큰 감정은 놀라움이다. 나이 든 감독·스태프·배우들의 열정이 주는 놀라움, 나이 든 사람에겐 이런 작품을 만들 만한 열정이 없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내 안의 편견과 만나는 놀라움이다. 편견만큼 사람을 늙게 하는 것도 없다. 만약 당신이 당신도 모르는 새 나와 같은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 영화만큼 좋은 치료약도 없을 것이다.


운이 좋은 나는 지난해 우연히 찾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영화제를 찾은 영화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 장면이 <노인을 위한 영화는 있다>에 그대로 담겨 내 첫 영화 데뷔작이 되었다. 잊을 수 없는 영광이다.


지난해 <엄마의 편지>를 보고서 크게 감동해 기사를 작성했다. 내가 느낀 감동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자 함이었으나 막상 영화를 보고 싶다고 댓글을 단 독자들에게 영화를 볼 방법을 알려주지 못했다. 영화제가 끝나버린 뒤였고 따로 상영계획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광주영상미디어클럽이 <엄마의 편지>를 유튜브를 통해 일반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서 여러분이 느낀 바를 댓글로 달아준다면 제작자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작품에 대한 관심은 청춘을 간직한 모든 예술가를 들뜨게 하는 법이니.


[영화 <엄마의 편지>]
 

(관련 기사: 영화관의 모든 관객을 울린 16분짜리 영화)
 
덧붙이는 글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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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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