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돌아온 전미도의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1월 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에서 '클레어'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전미도.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3일, 딱 3주간의 짧은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전미도 배우가 함께했다.

▲ 다시 돌아온 전미도의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1월 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에서 '클레어'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전미도.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3일, 딱 3주간의 짧은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전미도 배우가 함께했다. ⓒ 곽우신


"저는 사실 올해 다 <어쩌면 해피엔딩>만 해서요. 중간에 콘서트 하느라 제주도도 갔다 오고 이러다 보니까…. (웃음) 다른 분들은 다른 작품 갔다 와서 다시 리마인드해야 하는 게 있었는데, 저는 되게 익숙하더라고요. 대사나 이런 것들을 제가 제일 많이 기억하고 있었어요. 원래 저는 한 작품 끝나면 다 잊어버리거든요. (웃음)"

배우 전미도의 2017년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꽉 채워져 있다. 지난 2016년 12월 20일 개막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초연을 2017년 3월 5일까지 훌륭하게 마쳤다. 그리고 여름에는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어쩌면 해피엔딩 음악회>를 소화했고, 10월 23일부터 오는 12일까지 3주간 짧게 관객을 찾는 앙코르 공연까지 나섰다. 중간에 다른 작품 없이 온전히 <어쩌면 해피엔딩>과 함께하는 1년이다.

그 밑바탕에는 이 작품을 향한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었다. 초연 창작 뮤지컬 중에서 이 정도로 호응을 받으며 빠르게 돌아온 작품은 드물다. 좋은 대본, 좋은 음악, 좋은 배우가 만났고, 좋은 작품에 목말라 있던 좋은 관객들은 <어쩌면 해피엔딩>을 놓치지 않고 알아봐 줬다. 무대, 희곡, 배우, 관객의 완벽한 하모니랄까.

"일단 작가와 작곡가가 반 이상 한 것 같아요. (웃음) 그냥 읽기만 해도 전해져오는, 되게 잘 쓰인 대본에 음악까지 완성도 높잖아요. 1차 창작자들이 이렇게 너무 많은 걸 해줬고, 그 대본의 감성을 잘 이해하고 구현해 낼 수 있는 연출을 또 만났죠. 음악 감독도 그렇고, 거기에 작품을 잘 스타트해 줄 수 있는 배우들도 만난 것 같아요. 3박자가 다 잘 맞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웃음)

보시는 분들이 느끼는 것처럼 저도 똑같이 이 작품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하면서도 저도 힐링이 되고, 너무 재밌고, 끝나고 나면 막 후련하고…. 이런 느낌의 공연을 하는 게 되게 오랜만이었어요. 소극장 뮤지컬 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거든요, <김종욱 찾기> 이후로. 그 작품도 3인 구도인데 여기도 3인이잖아요. 이상하게 참 3인극에 소극장 뮤지컬 하는 게 보는 사람도 재밌지만 하는 사람도 너무너무 재밌거든요. 그런 느낌을 다시 한번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받았던 것 같아요."

다시 돌아온 전미도의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1월 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에서 '클레어'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전미도.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3일, 딱 3주간의 짧은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전미도 배우가 함께했다.

▲ 사랑스러운, '러블리' 전미도 “‘사랑스럽다’는 얘기 많이 해주셔요. ‘이런, 내가 이런 발랄한 역할을 처음 했나?’ 싶을 정도로요. ‘저한테 이런 면이 있는 걸 처음 보셨나?’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저는 이 작품에서 특별히 더 그렇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많이들 사랑스럽다고 해주시는 게…. 네…. 좀…. (웃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웃음)” ⓒ 곽우신


물론 그 '좋은 배우'의 중심에 전미도를 빼놓을 수 없다. 넓은 스펙트럼, 깊이 있는 캐릭터 이해력, 매력적인 보컬과 뛰어난 표현력까지…. 돌아온 <어쩌면 해피엔딩>에, 빠져서는 안 될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전미도였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전미도는 정작 이 작품에 참여한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최근에야 알았다.

"사람들이 표현을 잘 안 하잖아요. 이 프로덕션(네오)은 진짜 저한테 일언반구도 없어요! (웃음) 웬만하면 칭찬 듣기가 힘들어요. 저는 그래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거든요…. 이 공연에서 저를 처음 보시고 팬 카페 가입해주시는 분들도 계시는 걸 보고 '아, 내가 나쁘진 않은가 보다' 정도 생각했죠.

저는 사실 공연 평을 잘 안 봐서, 이렇게까지 사랑해주시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으로 다른 사람이 올린 제 사진을 볼 수 있는 걸 얼마 전에 알았어요. 거기에 <어쩌면 해피엔딩> 사진이 정말 많은데, 그 밑에 보니까 다 후기들을 써주셨더라고요. 그거 보고 알았어요. '아, 관객들이 진짜로 이 작품을 좋아하시는구나!' 그리고 '내가 하는 클레어를 되게 사랑해주는구나'라고. 이번 앙코르 때 정말 많이 느꼈어요."

내 문을 두드려줘서 고마웠어

다시 돌아온 전미도의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1월 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에서 '클레어'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전미도.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3일, 딱 3주간의 짧은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전미도 배우가 함께했다.

▲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받는 클레어와 올리버 “사람은 미워서 헤어지지만, 클레어와 올리버는 상대를 생각해서 헤어지잖아요. 그 마음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됐어요. 누군가를 진짜 사랑한다는 건 그 정도까진 가야 이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저도 그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 곽우신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배경은 미래의 한국이다. 사람처럼 생기고, 사람처럼 말하는 '헬퍼봇'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일상이 된 시대. 하지만, 새로운 버전의 기계가 나오면 구버전의 헬퍼봇은 버려지거나 방치된다. 버려진 헬퍼봇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정해진 구역을 함부로 벗어나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이 공간에서 대부분의 로봇은 완전히 기능이 정지될 날을 기다리며 조용히 녹슬어가고 있다. 하지만 올리버는 달랐다. 버전 5의 그는 제주도로 떠난 전 주인이자 친구 제임스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듀크 엘링턴의 LP를 듣는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자신을 수리할 부품마저 단종되어 생산되지 않을 즈음,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다른 헬퍼봇을 만난다.

이전 주인의 아픔을 옆에서 보고 겪은 클레어. 사랑은 영원하지도 않고, 사랑 같은 건 해서도 안 된다고 믿는 버전 6 헬퍼봇은 충전기가 망가져 전원이 꺼질 위기에 처한다. 아파트 문을 죄다 두드려도 돌아오는 건 침묵과 무시뿐이다. 완전히 방전되기 직전, 클레어는 올리버네 집 문을 두드리고, 올리버는 전원이 꺼진 클레어를 수리해준다. 버전이 높아서 감수성이 더 풍부하지만, 내구성이 약한 클레어. 조금은 투박하지만, 끝까지 가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한 올리버. 고장과 영원한 이별로 결말이 예정돼 있지만, 두 로봇은 사랑을 시작한다. 미래가 배경인 작품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두 헬퍼봇 덕분에 작품은 따뜻하고 낭만적이다. 여기에는 김동연 연출의 터치도 한몫했다.

"김동연 연출에게는 따뜻함이 있어요. 대학교 때도 그랬대요. '뭘 해도 따뜻하다' 이런 얘길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개인적으로 (김)동연 연출을 거의 10년 전에 처음 만났어요. 제가 처음 여자 주인공을 할 때 연출이셨거든요. 그때 좋았던 기억이 지금까지 이렇게 오고 있어요. 사람 자체가 이~렇게 따뜻하고,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화도 잘 안 내고, 연습 분위기나 모든 환경을 권위적이거나 무섭게 하지 않고, 배우를 긴장하게 만들지 않아요. 오히려 더 편하고 안정되게 만들어 줘서,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에요.

(정)욱진이도 그 얘기 하더라고요. 제일 좋대요. (웃음) 왜냐면 자기가 뭘 해도 '그거 안 돼'라고 커트 안 한다고. (웃음) 돌려서 말씀을 잘 하시거든요. 배우를 정말 잘 다루는 연출, 사람을 되게 잘 다루는 연출인 것 같아요. 그게 또 '잠재력을 끌어낸다'는 차원하고는 다른 게, 배우들을 '어 이거 해도 되나'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그러면서 연출로서 해야 하는 몫은 또 정확하게 해주시는 분이니까요. '무한 신뢰'죠, 사실."

다시 돌아온 전미도의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1월 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에서 '클레어'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전미도.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3일, 딱 3주간의 짧은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전미도 배우가 함께했다.

▲ 전미도에게, 올리버 같은 사람은 어떤 느낌? “저는 좋아요. 기본적으로 따뜻하잖아요. 따뜻한데 약간 고집 있는 게 전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되게 고집 피우다가도 자기 사람에게 한없이 다 오픈하고 베풀잖아요. 두 로봇이 기억을 지우겠다고 결정하게 된 것도, 클레어는 우리가 곧 수명이 다할 거라는 걸 받아들이는데 올리버는 그러지 못하잖아요. 올리버가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에, 그래서 클레어는 '너'를 위해서 지울 수 있죠. 올리버는 ‘난 괜찮으니까, 내가 힘든 건 내가 스스로 그냥 감당하겠다’라는 입장이라서 안 지운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 잘 없잖아요. 진짜 없죠. 그래서 이 이야기가 아름답고 되게 따뜻하고 되게 그렇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 곽우신


뮤지컬에서 '좋은 무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는 매우 많다. 대본과 음악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이를 연출이 잘 조율해 스테이지에 올려야 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이 과정에 성공한 작품 중 하나다. 무대 위에서 울고 웃는 '따뜻한 로봇' 덕분에 관객은 가슴 속 훈풍 한 아름씩 안아 들고 객석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음악의 선율 위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잘 녹아든 덕도 크다.

"저는 (<어쩌면 해피엔딩>이)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두 로봇만의 관계가 아니라, 또 로봇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오잖아요. 그 관계를 맺어가는, '신의'라는 걸 갖게 되기까지의 그 과정, 그리고 사랑하게 되고 난 이후의 관계 설정에 관한 이야기. 그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들은 또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 본질적인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래서 더 (헬퍼봇들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거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관계는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사회생활을 하면 누구나 다 관계를 맺어야 하고,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라서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다시 한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와 관계 맺는다는 거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일상적으로 느껴졌던 일들이나 감정이 되게 특별하게 보이잖아요. 그들(헬퍼봇)은 처음 겪는 감정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다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는 게, 관객 여러분 각자 자신의 모습들을 보는 거 같아서, 그 본질적인 걸 건드리고 있어서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우린, 우린 왜 사랑했을까

다시 돌아온 전미도의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1월 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에서 '클레어'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전미도.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3일, 딱 3주간의 짧은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전미도 배우가 함께했다.

▲ 클레어와 올리버의 감정 “클레어와 올리버가 ‘이게 사랑이란 감정인가?’라고 느껴서 다시 만나서 처음으로 스킨십하는 신 있잖아요. 그러고 나서 ‘허! 이게 무슨 감정이지?’하고 노래하는 데…. 거기까지의 시퀀스가 저한테는 하이라이트인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아름다워요. 저도 하면서 자꾸 눈물이 날 거 같고요. 진짜로…. 그 밑에 받쳐주는 음악 자체도 그렇고, 처음으로 이렇게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질 때 그…. 사람이 하면 그게 욕망처럼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들은 욕망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마치 아이들이 이렇게 뽀뽀하고 나서 막 ‘꺄르르 꺄르르’ 웃는 것처럼요. 그 장면이 제일 사랑스러운 것 같아요.” ⓒ 곽우신


"우린, 우린 왜 사랑했을까. 우린 왜 그냥 스쳐 가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을까. 우린 왜 끝이 분명한 그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을까. 도대체 우린, 우린 뭐가 좋았을까. 흐르는 시간 속 결국 모든 게 흩어질 걸 알면서. 입을 맞추던 서로를 꼭 안던 그때 우린, 우린 왜 사랑했을까."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No.01 '우린 왜 사랑했을까' 중에서

"사람이랑 똑같은 것 같아요. 대사 중에 나오잖아요. 헬퍼봇에게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감정이 입력되어 있지 않다고. 근데 두 로봇이 오류가 난 거예요. 원래 입력돼 있던 다른 감정들을 교류하다 보니까 자신들도 모르게 사랑이란 감정이 탁 들어오는 거잖아요. 그들의 용어로 하면 오작동이 일어나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도 역시나 '내가 저 사람 사랑해야지' 작정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느닷없이 나도 모르게, 생각지도 못하게, 교통사고 당하는 것처럼 오는 거잖아요. 그 둘도 역시나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아무리 이성적으로 막 '이건 안 되는 거야'라고 선서도 하고, 약속하고 다 했지만…. 그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거죠."

클레어와 올리버는 연애를 시작한다. 이 사랑의 결말이 불행으로 정해져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서로에 대한 끌림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서까지 했건만, 결국 사랑해버리고 마는 그들. 왜일까? 아파트의 수많은 헬퍼봇들 중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프로그래밍 돼 있지도 않은 로봇들인 클레어와 올리버가 만났을까. 잠깐의 필요에 의한 교류가 아니라, 왜 그들은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까.

"타이밍이라는 것도 무시할 순 없는 거 같아요. 계속 여러 집을 두드렸는데 그중에 한 집이 유일하게 안에 헬퍼봇이 있었고, 그것도 반응을 해줬고, 너무 기가 막히게 그 집 앞에서 방전이 돼서 꺼지잖아요. 그 운명적인 타이밍을 무시할 수 없는 거 같아요.

그리고 막상 사랑이 시작될 때는, 사실상 둘 다 공통으로 외로움이라는 걸 가지고 있었을 거 같아요. 이게 외로움이라고 자신들은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대사 중에도 이런 맥락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당신하고 나하고 모르고 지낸 시간이 이만큼인데. 갑자기 인제 와서 나한테 왜 이렇게 관심을 보이느냐'라고 말할 때, '지루해서요'라고 대답하거든요. 그 말은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몰라서 마땅히 찾아낸 단어가 '지루하다'는 것이지, 사실은 외로웠다는 얘기거든요.

근데 올리버 역시도 제임스가 오기 전까지는 방 안에서 혼자 계속 지냈기 때문에, 유일하게 만난 사람이 우체부였잖아요. 자기도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그 원초적인 외로움이 있었을 거 같아요. 근데 그 둘이 같이 여행을 떠나면서 함께 있게 되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이제 서로 비어있던 어떤 무엇이 채워지면서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

다시 돌아온 전미도의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1월 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에서 '클레어'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전미도.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3일, 딱 3주간의 짧은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전미도 배우가 함께했다.

▲ 전미도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들 “시간이 지나도 제 머릿속에 사진을 탁탁탁 찍어놓은 것처럼 절대로 안 잊히는 그런 순간들이 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도 있고, 친구들과 우정의 시간도 있고, 가족들하고의 시간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절대로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 왜 안 잊혀질까 생각해보면 정말 순수했을 때의 순간이더라고요. 내가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깨끗하고 순수했나?’할 정도로, 내가 생각해도 ‘너무너무너무 아름다운 경험을 했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 곽우신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으며 빠져들었지만,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버전 6인 클레어는 자꾸만 잔 고장을 일으킨다. 그때마다 올리버는 장비를 꺼내 클레어를 수리하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응급조치뿐이다. 주기는 빨라지고 증상은 심해진다. 클레어는 망가져 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올리버를 견딜 수가 없다. 올리버는 자신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려는 클레어를 견딜 수가 없다. 어떻게든 참아내려고 하지만, 사랑을 알아버린 이들에겐 사랑의 달콤함만큼이나 고통도 진하게 다가온다. 결국, 이들은 서로의 기억을 저장된 메모리에서 지우기로 결심한다. 마치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하지만 올리버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너무 아프지만 그 이상으로 소중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고장이 난 클레어가 아파트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올리버는 이 만남의 끝을 알고 있다. 어쩌면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시 만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클레어의 두드림에 조심스레 문을 여는 올리버. 클레어는 올리버를 아는 듯, 모르는 듯 그에게 다가선다. 그들은 어쩌면, 괜찮을지 모르는 해피엔딩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이 사랑의 쳇바퀴도 언젠가 완전히 망가져 버릴 텐데, 결국 한쪽이(아마도 클레어가 먼저) 완전히 멈추는 순간이 오고, 그 사랑의 과정마저 반복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텐데. 전미도라면 어떻게 할까. 이 과정은 가치 있는 걸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전미도 배우 공연 사진 및 프로필 이미지.

▲ 반딧불이의 숲 제주도의 숲에서 반딧불이를 찾은 클레어. 그는 유리병에 소중히 반딧불이를 잡아 서울로 올라온다. 올리버에게 화분이 있다면, 클레어에게는 이 반딧불이의 빛이 있다. 하지만 서로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 후,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하늘로 놓아준다. “그것마저도 남아있으면 기억의 한 일부가 될까봐…. 다시 기억이 되살아난다거나 할 수 있잖아요.” ⓒ (주)NEO


"저요? 사실 클레어는 어떻게 결정짓지 않았거든요. 만약에 제가 진짜 로봇이면 한번 지워볼 것 같기는 해요. 저는 상처를 다 안고, 심하게 겹겹이 다 쌓는 편이거든요. (웃음) 사람은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해서 쉽게 그렇게 되지 않잖아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죠. 아주 혹독하게 그냥 그 시간을 다 감당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만약 로봇이라면 그냥 한 번에 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을 하는 이유가 '망각' 때문이잖아요. 우리는 그들(헬퍼봇)처럼 지울 수 없어요. 그들은 사람처럼 망각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이걸 지워야지만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겠죠.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계속 사랑해요. 힘들다고 해서 거기서 그냥 그만두진 않잖아요. 고통스러운 것도 잊어버리고 다시 또 하고, 다시 또 하고…. 그러다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찾게 되는 것처럼, 그들도 계속 사랑을 반복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감정이라든지 추억이라든지 무언가가 같이 남아있을 것 같아요.

그들이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 건 '너무 싫어, 너랑 다신 못 만나겠어'하고 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나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걸 보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니까, 너를 위해서 지우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기억을 지우고 다시 또 사랑하더라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네. 가치 있죠."

끝까지 끝은 아니야

다시 돌아온 전미도의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1월 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에서 '클레어'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전미도.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3일, 딱 3주간의 짧은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전미도 배우가 함께했다.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어려운 점? “무대에서 배우가 대사를 실수하는 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 작품은 더 그런 것 같아요. 대사를 ‘씹는’ 순간 로봇으로서의 연기는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며칠 전에 한 번 씹었거든요. 존을 던이라고 해서…. 아 그 순간 진짜 발가벗겨지는 느낌, 자괴감이 들었어요. 속도감을 계속 가지고 대사를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명확해야 하니까 그런 것들이 힘들다면 힘들죠. 사실 다른 공연에 비교하면 괜찮아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퇴장이 없어서 체력적으로 좀 힘들다는 거? (웃음)” ⓒ 곽우신


<메피스토>의 '메피스토'부터 <어쩌면 해피엔딩>의 '클레어'까지. <스위니 토드>의 '러빗 부인'에서 <베르테르>의 '롯데'까지. 극단과 컴퍼니, 대극장과 소극장을 오가던 배우 전미도는 2017년을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맞았고, 이제 그해를 보내려고 한다. 다양한 작품을 해오다가 쭉 한 작품에 매진했고, 다시 여러 인물의 옷을 입고 이야기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연기하는 이유를 "재밌어서"라는 단순한 답으로 정리하는 그녀. 이처럼 많은 사람을 대변하는 게 절대 쉽지는 않을 듯하다. (관련 기사: 인육파이 만드는 악녀, 그녀가 연기하니까 이해된다)

"조금씩 저한테 다 있는 것 같아요. 평소 때 메피스토 같은 성격이 나오진 않잖아요. (웃음) 극한으로 화가 났다거나, 막 감정이 폭발할 때는 그런 모습이 언뜻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모서리에 있는 부분을 끄집어내서 극대화하려니까 그게 힘들었죠. 평소에는 클레어처럼 그런 발랄한 성격이 대부분인 것 같긴 해요. 근데 또 사람들하고 있을 때는 그런 편이지만, 저 혼자 있을 때는 되게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거든요. 밖에 나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집에 있는 거 좋아하는 '집순이'인데…. (웃음) 다 저의 모습이죠.

그냥 자연스럽게 대본을 읽다 보면 이렇게 툭툭 나오는 게 있더라고요. 대신 어떤 작품을 하고 있다고 그러면 그 캐릭터하고 비슷하게 평상시에도 지내는 것 같아요. 그냥 본능적으로? <스위니토드>에서 러빗 부인할 때는 야한 농담도 하고, 분장실에서 주책바가지처럼 있었죠. 클레어 할 때는 맨날 분장실에서 남자배우들이랑 티격태격 막 골려 먹고…. (웃음) 그 캐릭터에 따라서 시기를 보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베르테르> 롯데 할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웃음)"

덕분에 '못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따라붙는 배우이지만,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단점이 자꾸만 가슴에 걸린다.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도 "저는 사실 노래를 잘 못 하는, 어디 가서 뮤지컬 배우라고 하기 창피한 배우"라며 본인의 가창력을 아쉬워했던 사람이다.

"사실 지금도 고민하거든요. '진짜 뮤지컬 그만해야 하나?'하고. 얼마 전에도 공연 직전에, 올리버가 먼저 나가고 저는 뒤에 대기하고 있는데 '와, 나 정말 간도 크다. 어떻게 이런 걸 할 생각을 했지'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모르겠어요. 사람들 앞에 서서 연기하는 건 안 무서운데, 노래하는 건 아직 사실 좀 무서워요. 그거를 그냥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한 번도 저 스스로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노래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더, '노래가 아니라 연기한다 생각하고 해야지'라고 계속하는 것 같아요.

제가 좀 그 목표 지점이 좀 높은 거 같긴 해요. 저는 노래 한다 하면 (옥)주현 언니나 차지연씨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물론 장르가 다를 순 있지만, 다르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때가 별로 없어요."

다시 돌아온 전미도의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1월 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에서 '클레어'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전미도.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3일, 딱 3주간의 짧은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도 같은 역으로 전미도 배우가 함께했다.

▲ 전미도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 “클레어와 올리버가 ‘이게 사랑이란 감정인가?’라고 느껴서 다시 만나서 처음으로 스킨십하는 신 있잖아요. 그러고 나서 ‘허! 이게 무슨 감정이지?’하고 노래하는 데…. 거기까지의 시퀀스가 저한테는 하이라이트인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아름다워요. 저도 하면서 자꾸 눈물이 날 거 같고요. 진짜로…. 그 밑에 받쳐주는 음악 자체도 그렇고, 처음으로 이렇게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질 때…. 사람이 하면 그게 욕망처럼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들은 욕망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마치 아이들이 이렇게 뽀뽀하고 나서 막 ‘꺄르르 꺄르르’ 웃는 것처럼요. 그 장면이 제일 사랑스러운 것 같아요.” ⓒ 곽우신


많은 후배가 배우 전미도를 롤 모델로 뽑고, 많은 관계자가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로 그의 이름을 얘기한다. 하지만 전미도는 여전히 많은 고민을 안고 '재미있는' 연기를 오래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자신의 역량을 계발하고, 더 다양한 작품에 도전해보고…. 이전에 했었던 뮤지컬 <원스>나 연극 <비: BEA>는 전미도가 꼭 다시 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그때는 풀리지 않았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았고, 당시보다 그 인물을 훨씬 잘 표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직도 욕심 많은 배우,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배우. 그녀의 연기 인생은 아직 가야 할 길이 걸어온 길보다 훨씬 길다. 아, 뮤지컬 <원스>를 다시 하고 싶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는 뮤지컬도 계속하는 것으로.

"안 해본 건 다 해보고 싶은데…. (웃음) 나이가 들어야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또 있잖아요. 그게 무궁무진하게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되게 막 박사님 역할 이런 거 안 해봤거든요? 한 번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자신이 없었어요. 안 똑똑한데 똑똑한 척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웃음) 뭐 '이번 논문은 어쩌고저쩌고', '무슨 박사와 제가 무슨 연구를 했는데' 이런 말을 한다는 거 자체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거죠, 저 스스로 너무. (웃음) 그런 역할들이라든지, 좀 연륜이 차야지만 할 수 있는 역할들도 그렇고….

남자와 남자가 사랑하는 이야기는 대학로에 많지만, 여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이야기는 아직 우리나라에 별로 없잖아요. 그런 작품도 해보고 싶고요. 꼭 여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게 아니더라도, 중성적인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그런데 그런 역할이 잘 있지는 않더라고요. 그냥 최근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웃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전미도 배우 공연 사진 및 프로필 이미지.

▲ 클레어와의 이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전미도 배우 프로필 이미지. 클레어로 살아온 1년. 이제 오는 12일이면 클레어를 보내고 다른 인물의 옷을 입어야 하는 전미도. 그는 최대한 '쿨'하게 클레어를 보내주려고 한단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시원하게 이별하기 위해 매 회차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녀. 앙코르 기간 전회차 전석 매진의 한 축에는 분명 그가 있었다. 이런 작품에 함께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라며 본인은 "진짜 행운아"라며. 전미도의 클레어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기를 바라본다. ⓒ (주)NEO



전미도 클레어 미도클 어햎 어쩌면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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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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