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포스터

▲ <범죄도시> 포스터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주)키위미디어그룹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가 관객 수 600만 문턱을 넘어섰다. 올 한 해 개봉한 전체 작품 가운데 흥행수익 5위다. 이전까지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는 강윤성 감독이 연출하고 원톱 주연 경험이 많지 않은 데다 티켓파워가 검증되지 않은 마동석, 윤계상이 주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흥행은 기대 이상이다.

<범죄도시>의 강점은 누가 뭐래도 캐릭터다. OCN 드라마 <38 사기동대>, 영화 <부산행> 등에서 드러난 마동석의 매력이 <범죄도시>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무지막지한 외모와 유머러스함으로 도리어 관객에게 호감을 사는 귀한 매력으로 그는 극 전체를 장악해 이끌어간다.

마동석이 연기한 강력반 형사 마석도는 맨주먹으로 조직폭력배를 때려잡고 흉악 범죄자를 제압하는 거친 인물이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후배 형사를 다독여 가며 수사를 이끄는 속 깊은 성품도 갖췄다. 눈치도 상당해 약삭빠른 범죄자들에 밀리지 않고 수 싸움을 벌인다.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캐릭터지만 관객을 매료시키는 건 캐릭터 마석도가 아니라 배우 마동석임을 모두가 안다.

마동석은 배우 스스로 하나의 장르를 이루는, 그리하여 이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는 대략 이렇겠구나 하는 기대를 품게 하는 그런 배우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반응이 영화 그 자체보다 마동석의 캐릭터에 집중돼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배우가 곧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지는 그런 인물은 그리 많지만은 않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이소룡과 성룡, 실베스타 스텔론과 아놀드 슈워제네거, 한국에서는 임창정과 차태현 정도가 그러할까. 어쩌면 <범죄도시>는 마동석 장르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이끄는 캐릭터의 힘

<범죄도시>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조직폭력배 장첸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윤계상.

▲ <범죄도시>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조직폭력배 장첸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윤계상.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주)키위미디어그룹


반대편에 선 윤계상은 10여 년 전 활동한 아이돌 그룹 GOD 멤버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강렬한 연기를 펼친다. 많은 영화팬이 기억하다시피 그의 배우 활동은 꽤나 오래됐는데 로맨스·드라마·코미디·액션 등의 장르를 망라해가며 다채로운 연기를 시도하는 진지함이 돋보인다. 특히 김하늘과 호흡을 맞춘 <6년째 연애중>, 당시로선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감행한 <비스티 보이즈>, 한 마디 대사 없이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 <풍산개>가 대표작이다.

그런 그에게도 <범죄도시>의 장첸 역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마석도의 캐릭터와 달리 장첸에겐 충분한 드라마를 허락하지 않고 있어 초반 몇 장면에서 형성된 이미지만으로 극 전체를 이끌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석도에 밀리지 않을 만큼 강한 존재감을 과시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 배우 윤계상에게 맡겨졌다.

다듬지 않은 장발에 능숙하게 연변 사투리를 구사하며 분위기를 장악하는 솜씨는 분명 베테랑의 것이다. 영화를 보고 온 많은 이들이 그의 억양과 연기를 흉내 내는 건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는 방증이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장첸이 개입한 사건이 초반에 비해 덜 충격적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의 캐릭터가 끝까지 존재감을 유지한 건 오롯이 그의 역량 덕분이다.

사실 <범죄도시>의 면면을 뜯어보면 이야기는 단순하고 구성은 허술해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려운 영화다. 악역인 장첸이 눈에 띄는 범죄를 지속해 스스로 명을 단축하는 것이나 그러한 범행을 벌이는 동기에 대해 영화는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 여러 배우의 호연에도 그들의 사정과 상황이 드러나는 드라마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드라마가 부족하니 군더더기는 많고 중요한 장면 장면마다 클리셰(비슷한 장면에서 흔히 쓰이는 진부한 표현방식을 가리키는 용어)가 거듭된다.

이와 같은 단점에도 영화가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건 캐릭터의 힘과 매력적인 액션 덕분이다. 특히 영화의 액션은 쉽게 합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고 그 세기와 빠르기에서도 다른 잘 만들어진 액션 영화에 견줘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감독과 배우들이 전력을 다했다고 밝힌 클라이맥스의 화장실 격투신은 물론이고 영화 내내 보인 마동석과 윤계상의 액션 모두가 흠을 찾기 쉽지 않을 만큼 매끄럽게 연출됐다.

언젠가는 홍콩처럼, 한국 액션의 가능성

<범죄도시>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연변 이센스라는 애칭을 얻은 배우 박지환. <범죄도시>와 같은 영화의 성공은 박지환과 같은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 <범죄도시>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연변 이센스라는 애칭을 얻은 배우 박지환. <범죄도시>와 같은 영화의 성공은 박지환과 같은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주)키위미디어그룹


<범죄도시> 뿐 아니라 올 한 해 개봉한 액션 영화는 적어도 액션 면에서만큼은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내보이고 있다. 특히 서울액션스쿨 출신 정병길 감독의 <악녀>는 한국영화사를 통틀어 기록할 만한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할 만큼 뛰어난 액션을 선보였다. 맨손 액션과 칼·도끼·총 등의 무기를 이용한 액션, 오토바이와 승용차, 버스 등을 활용한 자동차 액션 등이 마치 실력을 과시하듯 고루 등장한다.

최봉록 무술감독이 지도한 <브이아이피> 속 액션신 역시 관객을 매료시키는 강렬함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범죄도시> 속 액션은 최 무술감독이 스승처럼 따르는 것으로 알려진 허명행 무술감독이 지도했다.

이들 영화에서 이뤄낸 액션신 연출의 성과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한국 액션을 짊어질 세대가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병길과 허명행, 최봉록은 모두 30대로 정두홍 무술감독이 1998년 창설한 서울액션스쿨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액션영화가 활발하게 만들어지면 이들이 거듭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되고 액션 연기에 익숙한 배우들이 더욱 많이 생겨날 것이 분명하다. 이는 한국의 액션영화가 지금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동석과 같이 지속 가능한 캐릭터를 가진 배우의 존재는 한국 액션 영화계에 커다란 자산일 수 있다. <범죄도시>가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은 속편제작이 확정된 것도 마동석이 가진 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액션 연출에 있어 경험이 무엇보다 큰 자산임을 고려하면 <범죄도시> 시리즈의 성공은 한국 액션 영화의 기술적 발전을 기대하게 하는 반가운 소식이라 할 수 있다.

성룡이 꾸린 전설적인 스턴트 팀 성가반은 홍콩 영화의 중흥기를 지탱한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현재 성가반 출신 영화인들은 할리우드와 홍콩영화계에서 활약하며 전 세계 액션 영화를 선도하고 있다. 서울액션스쿨이 한국영화계에 뿌린 씨앗이 조금씩 싹을 틔우는 오늘, 한국에서 더 많은 액션 영화가 기획되고 흥행하길 기대해 본다.

<범죄도시> 마동석과 함께 금천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을 연기한 배우들. 왼쪽부터 허동원, 마동석, 허준, 홍기준.

▲ <범죄도시> 마동석과 함께 금천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을 연기한 배우들. 왼쪽부터 허동원, 마동석, 허준, 홍기준.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주)키위미디어그룹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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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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