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줘-한名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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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돌림 노래처럼 연예인 혹은 연예인 측근들의 관찰 예능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 10월 10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 교양 프로그램 <내 이름을 불러줘-한名회>(아래 <한명회>)의 존재는 남다르다. 신개념 소설 클럽을 표방한 이 프로그램은 '동명이인'이라는 우리 사회 흔한 현상을 '휴먼 스토리'의 일반인 토크쇼의 소재로 끌어왔다. 또 장성규 아나운서의 '이름의 사회학'을 곁들여 차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첫회 그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확실한 '김정은'부터 시작해 불멸의 영웅 '이순신'을 건너, '하늘' 그리고 2017년 가장 유명해진 이름 '김지영'까지 다르지만 또 같은 이들의 사연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열어간다.

소설 < 82년생 김지영>이 매개가 된 김지영씨들의 소셜 클럽

4회 김지영이란 이름을 가진 출연자들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2017년을 달군 소설 < 82년생 김지영>으로 시작해야겠다. 조남주 작가의 <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10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13번째 책으로 선정됐다. 서른넷의 나이에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 김지영을 상담한 리포트를 재구성한 형식의 소설이다.

소설 속 김지영은 태어나면서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차별 당하고 '여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젠더'적 감성에 기반한 이 소설은 김지영이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 82년생 김지영>은 발간과 동시에 많은 화제를 불러 모으며 시대적 화두가 됐다.

 82녕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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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남녀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2001년 처음으로 여성부도 출범했다. 이후 점차적으로 성 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성 차별 문제는 우리 사회에 내재화되고 관습화 돼 있다. < 82년생 김지영>이 '우리는 모두 김지영'이라는 여성들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 이유다. 이 시대 차별받는 여성의 상징이 된 <8 2년생 김지영>은 그 공감대를 발판으로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여러 프로그램들이 앞다퉈 이 화제의 책을 언급하고 다룬 가운데 10월의 마지막 날 <한명회>에서는 김지영씨들을 소셜 클럽의 주인공들로 모셨다. 소설은 82년생이라는 특정 연도에 출생한 김지영을 다뤘다. 실제 김지영씨들의 출생 연도를 조사해보니 1980년에 제일 많이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김지영이란 이름은 80년대 여성의 가장 '흔한' 이름이었다. 그 '흔해서 무시받던' 이름이 <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의 대명사'가 되며 재조명 받아 감사하다는 90년생부터 61년생까지의 총 9명의 김지영들이 스튜디오에 모였다.

김지영씨들은 나이도 각각 다르고 S대 출신 의사부터 변호사, 웃음 치료사, 아르바이트 전문가, 주부, 공백기를 가진 회사원까지 다양한 직종과 경험을 가진 9명의 여성들이었다. 그저 아침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휴먼스토리 토크쇼가 될 뻔한 프로그램에 차별적 연결고리를 만든 건 바로 소설 < 82년생 김지영>이다.

이 소설을 읽은 9명의 김지영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66년생의 김지영도, 83년의 김지영도 "어떻게 세월이 흘러도 어쩌면 이렇게 여성의 삶은 변화하지 않냐"고. 심지어 당사자뿐만 아니라 MC 한혜진은 "소설 속 어머니의 삶조차 자신의 어머니의 삶과 너무도 똑같다"고 공감대를 넓혔다.

 내 이름을 불러줘 한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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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규 아나운서가 등장해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여성의 삶'이라는 사회적 통계를 통해 이 놀라운 공감대에 설득력을 더한다. 2016년 전체 인구 중 여성 비율 49.9%, 여성의 대학 진학률 73.5%, 고용률 50.2%. 그러나 20세 이상 928만9천 명의 여성 중 696만의 여성이 결혼, 임신, 출산, 양육 등의 이유로 경력 단절을 겪었다. 10명 중 7명이 퇴사를 한다는 것. 물론 이들 중 15%는 경력 단절의 '갭'을 넘어 사회에 복귀하지만 상당수가 그 이전에 비해 직종이나 임금에서 다운그레이드한 상태를 겪게 된다고 수치는 증명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15조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소통의 '페미니즘'은 어때?

 내 이름을 불러줘-한名회

내 이름을 불러줘-한名회 ⓒ JTBC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9명의 김지영들이 보충 설명한다. 의사나 변호사라는 전문직이라도 결혼하면 임신, 출산을 한다는 '전제'만으로 당연한 차별을 겪게 된다는 것. 또 결혼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 그나마 첫 아이는 출산 휴가를 받을 수 있지만, 둘째 아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로 만드는 조직까지.

조직뿐만이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해 성장 과정, 가족 내에서부터 사회 조직까지. 여성이 잘 나가면 불쾌함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 한 출연자는 "마치 그리스 신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처럼 세상에 여성은 너무도 작아 계속 잘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차별이 '내재화되고 제도화돼 있다고 8명의 여성들은 입을 모은다.

이날 스튜디오에 출연한 9명의 김지영씨 중 한 명은 남성이었다. 8명의 김지영씨들의 토로와 공감은 남성 김지영씨와 MC 노홍철 그리고 출연자들의 남자 가족들의 의식 변화를 불러왔다. <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8명의 김지영씨들은 자신이 겪은 차별적 삶에 대한 해답을 '사회적 의식 변화'라고 명쾌하게 정의했다. <한명회>는 그 '변화'의 물꼬를 유도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소설을 읽은 남자 김지영씨는 '도와준다'고 했던 가사 노동에 대한 다른 변화된 시각을 보였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그저 옛날 이야기라 여겼던 노홍철은 현실에 대한 놀라움과 자각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남성 출연자들은 차별적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비혼'을 선택했던 1972년생 변호사와 자신의 성취를 위해 '비혼'을 희망한다는 1990년생 구직자에게 공감했다. 그리고 "딸이라면 '비혼'을 권장하겠다"는 현실의 막막함도 함께 공감했다.

 내 이름을 불러줘 한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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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은 어떤 캠페인이나 구호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설보다 더 치열했던 8명의 김지영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차별적인 삶을 이해시킨다. 왜 이 시대 여성이 존중받아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 좀 더 여성을 위한 제도와 배려들이 필요한지, 지난 시절의 내재화된 차별 속에서 그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통해 설득한다.

남성들의 무지와 외면 역시 노홍철과 남성 김지영 등을 통해 교감하고 소통한다. 어쩌면 그저 흔한 '휴먼 스토리'일 수도 있던 토크쇼는 한 편의 소설이라는 문화적 콘텐츠의 의미와 공유,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의 사회화, 그리고 공감과 소통을 통해 멋들어진 '페미니즘'의 결과물에 도달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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