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블의 슈퍼히어로 세계관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작년에 개봉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로 '페이즈3'을 맞이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것으로 보면 이번 단계는 영웅들의 개별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다양한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하면서 한 해에 2편씩 나오던 마블 영화들이 올해부터는 3편씩 개봉될 예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영화를 맡은 제작진들이 가지는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누적된 마블 영화들의 성과를 이어받으면서도 전작들과 어떤 식으로든 차별화를 해야 하니까요. 슈퍼 히어로들의 개성이 다채롭기 때문에 그 점을 부각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액션 모험물로서 재미도 놓치지 않아야 하므로 쉽지만은 않은 과제입니다.

토르 시리즈의 3편인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역시 그런 전략에 대한 고민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토르(크리스 햄스워스)는 아스가르드의 멸망을 부르게 될 '라그나로크'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무스펠 하임에 내려온 상태입니다. 뜻한 대로 수르트라는 거신에게서 라그나로크에 대한 정보를 빼낸 후 그를 제압하고 암흑의 왕관을 확보하는 데 성공합니다.

아스가르드로 돌아가기 위해 문지기 헤임달(이드리스 엘바)을 불러 보는 토르.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헤임달은 어딘가로 자취를 감췄고 대신 그의 자리를 차지한 후임자가 다른 데 한눈을 파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가까스로 아스가르드로 귀환한 토르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서둘러 아버지 오딘(안소니 홉킨스)을 만나러 갑니다.

재미있는 캐릭터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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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취한 차별화 전략은 캐릭터 코미디로 방향을 설정한 것입니다. 개성 강한 인물들이 각자 자기 특성에 나온 행동을 고집하면서 서로 부딪치게 만들고, 이때 생성되는 유머를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기존 토르 시리즈를 이끌어 온 토르와 로키(톰 히들스턴)를 비롯하여 헐크(마크 러팔로)나 발키리(테사 톰슨) 같은 주요 조연, 심지어 헬라(케이트 블란쳇) 같은 악역이나 초반에 잠깐 나오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마저도 각자의 유머 포인트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웃기는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주역급인 토르나 헐크 외에 돋보이는 배역은 테사 톰슨이 맡은 발키리와 제프 골드블럼이 연기한 그랜드마스터입니다. 발키리는 카리스마 있는 괴짜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첫 등장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그랜드마스터 역시 자기 본위로 사고하는 독재자 특유의 심리 상태를 선보이며 즐거움을 더하지요.

감독을 맡은 타이카 와이티티는 뉴질랜드 출신의 배우 겸 감독입니다. 자국의 TV 드라마에 배우로 출연하며 연예계 경력을 시작했지만, 곧 자기 작품을 만드는 데 관심을 보였습니다. 2004년에 찍은 단편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도 후보에 오르면서 인지도를 높였고, 이후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4편의 장편 영화를 내놓으며 연출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올해 초 개봉한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각본 작업에도 참여하여 폴리네시아 특유의 느낌과 유머 감각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지요.

이번 영화에서는 대사의 80% 정도를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즉흥 연기를 통해 만들어 내는 등 자신의 코미디 감각을 충분히 발휘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까지 제일 심심한 마블 영화였던 토르 시리즈가 이렇게 재밌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마 마블 프랜차이즈 전체를 통틀어서도 제일 가볍고 장난기 넘치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긴박감과 카타르시스는 부족, 흥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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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르: 라그나로크>는 기존 출판 만화에 나온 이벤트들을 설득력 있게 엮어서 세계관 내의 다른 작품들과 연관성을 갖도록 잘 각색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 한 편만 놓고 봤을 때는 긴박감이나 카타르시스가 부족합니다.

여러 캐릭터가 나오는 <어벤져스> 시리즈처럼 압도적인 액션 시퀀스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와 자주 비교될 것 같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테마가 주는 찡한 감동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좀 모자란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인물들의 각성과 회심의 계기로 마련된 '기억' 같은 화두나 토르가 역설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결말 등 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전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관점에서 보면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은 잘 하는 영화입니다. '어벤저스'의 아픈 손가락 헐크가 돌아올 수 있게 됐고 '토르'와 '로키' 같은 개성파 캐릭터들이 다시 모험에 합류하게 될 테니까요.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를 이미 하나의 시리즈로 인식하고 있는 관객들은 이번 영화에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낼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블의 흥행 신화는 계속됩니다.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의 포스터. 긴박감과 카타르시스는 약하지만 마블 세계관을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의 포스터. 긴박감과 카타르시스는 약하지만 마블 세계관을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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