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영화제는 소소한 뒷이야기들을 남겼다.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이 지속된 만큼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는 대통령의 방문이 큰 화제가 됐다. 서병수 시장의 레드카펫도 영화제 초반 논란이 됐는데 관객들의 심리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1인 시위도 펼쳐지면서 영화의 해방구로서 지난 정권과 부산시장에 의해 훼손된 표현의 자유를 회복시키려는 영화인들과 영화학도들의 노력도 눈부셨다. 꾸준히 부산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영화의 전당을 지킨 사람들의 마음은 정상화된 영화제였다.

스케쥴 바꿔서 귀국한 공효진

 15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배우 공효진

15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배우 공효진ⓒ 청와대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은 부산영화제뿐만 아니라 영화제의 참가한 영화인과 관객들에게 활기를 넣어주기에 충분했다. 감독과 배우가 주목 받는 영화제에서 정치인으로 이를 능가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문 대통령의 방문 일정에 참여했던 영화인들에 따르면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에 배우들도 일정을 조정했다. 당초 영화관을 찾은 대통령의 옆자리에는 도종환 장관과 오석근 전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이 자리하게 돼 있었다. 배우 공효진이 해외에 나가 있어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에 공효진 배우는 참석 의사를 전해왔다. 이 때문에 자리가 다시 조정됐다. 대통령 옆자리는 오석근 전 위원장 대신 공효진으로 바뀌었다. 공효진 배우는 당일 이른 아침 귀국해서 급하게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 때문에 오전 10시 30분에 맞춰진 상영시간에 10분 늦게 도착해 허겁지겁 상영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15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관람 후 인근 식당에서 배우 및 부산지역 영화 전공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15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관람 후 인근 식당에서 배우 및 부산지역 영화 전공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식당에서도 옆자리는 공효진 배우의 몫이었다. 식사 주문을 받으면서 도종환 장관이 "나는 짜장면"이라고 하자 공효진 배우가 "그럼 통으로 짜장면 다 주시면"이라고 말했고,  문 대통령 "아니, 아니. 자유롭게 (시키죠)" 하면서 "나는 굴짬뽕" 말하자 웃음이 터졌다.

한 관계자는 "사전에 음식이 준비돼 있었고, 짜장면이나 짬뽕을 시키면 되는 거였는데, 그걸 깜빡 잊거나 전달이 제대로 안 됐던 건지 모르겠다"라며 "덕분에 재밌는 풍경이 연출됐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뒤 단체사진 촬영이 예정돼 있었으나 이를 깬 사람도 공효진 배우였다. 대통령 옆자리에서 셀카를 요청했고, 대통령이 이를 수락하자 이번에 엄지원 배우가 질세라 대통령과 셀카를 찍었다. 너도나도 셀카 요청이 잇따르자 결국 경호실장이 사진사 역할을 맡아 일일이 사진을 찍어줬다고 한다.

관객들도 '서병수 사과하라' 동참

 21일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레드카펫 대신 일반 출입구로 입장하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21일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레드카펫 대신 일반 출입구로 입장하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부산국제영화제


대통령의 인기와 비교할 때 서병수 부산시장은 영화인들과 관객들에게 혐오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뻔히 드러난 사실도 부인하며 영화제를 탄압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에 국내외 영화인들은 거침없는 비판 발언을 쏟아냈고 그간의 울분이 쌓였던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은 속시원함을 느꼈다.

서병수 시장의 레드카펫 소식이 전해지면서 개막일 전날 저녁 영화인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미리 준비할 만큼 여유가 없었던 데다 방송 생중계로 개막식 행사가 평소보다 20~30분 당겨지면서 몇몇 영화인들의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황제>의 민병훈 감독과 <메소드> 방은진 감독이 개막식과 개막 다음날 서병수 부산시장을 규탄하는 구호를 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재꽃> 박석영 감독과 <그들이 죽었다> 백재호 감독, 폐막식 스타가 된 <소성리> 박배일 감독 등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영화인들이 1인 시위에 나서면서 부산영화제는 영화인들의 해방구로 변신했다. 마지막날에는 부산독립영화협회가 이어받아 영화인들의 의지를 나타냈다.

독립영화계의 조지 클루니라고도 불리는 박배일 감독은 초반부터 종횡무진이었다. <소성리>가 상영되는 공간은 사드반대 시위장으로 변했고 심사위원장으로 온 세계적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은 직접 영화를 관람한 후 해외 게스트와 함께 사드 반대에 동참하기도 했다.

 21일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레드카펫으로 입장하고 있는 영화 <소성리> 박배일 감독

21일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레드카펫으로 입장하고 있는 영화 <소성리> 박배일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박 감독은 영화제 기간 내내 지치지 않고 사드 반대를 이어갔다. 다큐멘터리 대상(BIFF 메세나상) 수상자로 결정돼 폐막식 레드카펫을 밟으면서도 변함없는 행동을 선보였다. 박 감독이 서병수 부산시장을 향해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순간 영화인들과 관객들도 함께 동참해 '사과하라' '사과하라'는 외치던 장면은 올해 폐막식 최고의 장면이었다.

서병수 시장은 영화인들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레드카펫 대신 일반 출입구로 입장했으나 박배일 감독의 직격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개막일부터 폐막일까지 열흘간 꾸준히 현장을 지킨 부산지역 대학 영화 전공 학생들의 노력도 컸다. 경성대, 동서대 등 4~5개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로 구성된 '부산국제영화제 학생대행동'은 "서병수는 사과하라"는 구호와 함께 서명운동을 벌였다. 학생들에 따르면 열흘간 2200명이 서명해 참여해 부산영화제의 정상화를 염원했다.

영화 전공대학생들 “영화제는 정치적이어선 안 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틀째인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앞에서 부산국제영화제학생대행동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외압을 규탄하며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13일 오후 부산 영화의 전당 앞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학생대행동'소 속 대학생들이 지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외압을 규탄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초반 학생들은 "영화는 정치적일지언정 영화제는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2004년 영화 <화씨 911> 수상에 대해 프랑스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가 "영화는 매우 정치적이었다. 이는 칸 영화제가 정치적이었던 게 아니라 마이클 무어가 정치적이었다"는 말을 오독한 것으로 보였다. 이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학생들은 SNS에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올린 뒤 다음날부터 구호 내용을 '서병수 사과'에 맞췄고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된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

하태경 의원, 서병수 시장에 버금가는 뻔뻔함

서병수 부산시장만큼은 못하지만 폐막식 이후 영화인들의 눈총을 받은 것은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었다. 하 의원은 폐막식 이후 이어진 폐막 리셉션에 참석했다. 리셉션장 입구에서 하 의원은 김동호 이사장, 강수연 집행위원장 옆에 서서 손님들을 맞이하며 악수를 나눴다.

이 같은 모습에 영화인들은 "저 사람이 뭐하고 있는 거냐"며 "자기가 무슨 짓을 한 지도 잊었는지 뻔뻔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당시 영화제를 흔들어 놓은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노가 이는데 어떻게 자신이 영화제 관계자라도 된 듯 손님을 맞는지 모르겠다. 감정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불쾌해했다.

하 의원은 2014년 당시 "이 다큐멘터리(<다이빙벨>)를 상영하게 되면 온 국민을 속인 한 업자의 사기극에 부산국제영화제가 면죄부를 주는 격이 될 것이다"며 "이 영화를 초청작으로 결정한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 측과 프로그래머는 응당 논란의 책임을 지고 국민과 유가족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폐막식 리셉션장에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 옆에 선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

폐막식 리셉션장에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 옆에 선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SNS에도 글을 올려 영화를 보지 않고 비판한다는 지적에 대해 "똥을 내놓고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고 평가하라는 것"이라며 "똥과 된장도 구분 못 하는 분들이 무슨 프로그램을 선정한다고 그러시는지"라며 부산영화제를 모독했다.

한 영화 감독은 올해 영화제를 앞두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상화란 이용관 위원장의 복귀를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 압력을 행사한 서병수, 하태경의 사법적 처리를 뜻한다"고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 의원은 폐막 리셉션 장에서 기자와 만나 "이전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 나는 리버럴(자유주의)이다"며 "영화제가 너무 정치적으로 가는 것 같고 국민 세금 들어가는 행사라서 지적을 한 것이다. 인종차별 옹호하는 영화가 나온다면 가만히 있어야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유족들의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당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의견을 전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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