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인문(人紋)을 열연한 이병헌, 박해일, 김윤석

세 인문(人紋)을 열연한 이병헌, 박해일, 김윤석 ⓒ CJ엔터테인먼트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영화 <남한산성>을 관람한 소감들이 오갔다. 거의 대동소이했다. "주화론자 최명길(이병헌 분)과 척화론자 김상헌(김윤석 분) 중 나는 누구 편인지 고민했다"가 압도적이었다. 그러면서 명분이나 실리를 중시하는 각각의 견해가 나름 설득력이 있어서 시시비비를 따질 수 없노라 했다. 정쟁의 대상이었던 두 견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만든 캐릭터로 재고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김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은 고립된 공간인 남한산성에서 겪은 '삼전도의 굴욕'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병자호란 막바지 47일(1636년 12월 24일~1637년 1월 30일)이다. 영화는 소설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를 총 11개의 장으로 재구성해 일목요연하게 전개한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작가 김훈은 영화에 대해 흡족함을 표명함으로서 황 감독의 오마주를 수용했다.

역사적 인물에 '인문(人紋)'을 더하는 것, 역사 왜곡

영화 <남한산성>은 포스터에 띄운 문구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는 정황을 초반부 두 장면으로 암시한다. 첫 번째 장면에서 사대부의 갓을 쓴 최명길은 왕의 사신으로서 청의 진영에 들어서게 해 달라고 강을 사이에 두고 용골대(허성태 분)에게 청한다. 두 번째 장면에서 김상헌은 언 강을 건넌 후 안내하던 사공 노인을 단칼에 베어 버린다. 훗날 사공의 부역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이옵니다." (김상헌)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이옵니다." (김상헌) ⓒ 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일찌감치 관객에게 어필한 두 캐릭터는 영의정 김류(송영창 분)로 대표되는 대신들과 달리 드물게 백성의 처지를 두둔해 아뢰는 충신으로 그려진다. 백성들의 가마니가 말 먹잇감으로 빼앗기는 것을 막는다거나 사공의 손녀 나루의 배곯기를 염려해 떡국을 물린다거나 하는 식이다. 두 캐릭터를 창조해 역사적 말싸움에 집중한 사극 <남한산성>의 그러한 인문(人紋) 덧씌우기는 역사 왜곡을 지필 수 있다.

영화 한 편이 폭발적인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에 그렇다.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가 유발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촉진이 그랬다. 사극 <남한산성>의 파장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앞의 작품과 달리 역사적 인물을 미화시키는 영화적 상상력은 관객의 역사 해석을 교란시킬 수 있다.

<남한산성>은 청군이 에워싼 성에 갇혀서 정쟁에 골몰하는 한심한 조정을 조명한다. 그러면서도 그 선봉에 선 이조판서 최명길, 예조판서 김상헌과 피난 가는 일마저 우유부단해서 남한산성에 발이 묶인 인조까지 세 사람에게 실제 없었을 인간적 무늬(인문人紋)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이는 서날쇠(고수 분)나 이시백(박희순 분)처럼 신분이 다른 목소리 삽입을 구색맞추기 연출로 격하시킨다. 

실패한 위정자를 동정하게 만드는 연출

 김상헌과 나루

김상헌과 나루 ⓒ CJ엔터테인먼트


언 강을 건너게 해 준 늙은 사공을 가차없이 죽인 김상헌이 사공의 손녀인 나루(조아인 분)를 거두는 장면, 하층민인 서날쇠에게 격서를 맡기는 파격적인 장면 등은 당시 세태를 떠올릴 때 '인문 덧칠'의 극단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 다른 김상헌의 자결 장면으로써 비장미를 추가한다. 나라의 운명을 갇히게 한 사대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연출이다. 이는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다가 조선이 망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즉, 백성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척화론자의 의식과도 모순된다. 

실패한 위정자를 동정하게 하는 장면들은 또 있다. 인조의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 행차에 백성들이 엎드려 도열해 울게 한 장면이다. 작가 김훈도 공들였다는, 서날쇠의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는다는 반감의 목소리와도 맞지 않다. 게다가 백성들의 삶을 일구는 왕으로서 실패한 인조를 불가피한 입장에 내몰린 수장처럼 측은하게 보도록 진상을 호도하는 연출이다. 그 지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UN을 상대로 벌이는 후안무치한 일이 저절로 떠오른다.

 칸 앞에 엎드린 최명길(이병헌 분)

칸 앞에 엎드린 최명길(이병헌 분) ⓒ CJ엔터테인먼트


눈발 날리는 적진에서 최명길은 "조선의 백성들에겐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제발 저들의 목숨만은 지켜주소서"라고 간절하게 호소하며 눈물짓는다. 이 장면에서 이병헌의 연기 위력은 시간을 거스르며 역사적 사실인 양 객석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현실 인식이 냉철한 주화론자 최명길이 구하려던 목숨은 과연 백성의 것이었을까.

청으로 끌려간 수 십 만의 '피로인(적에게 포로로 잡힌 사람)'에 대해 당시 지배층이 애썼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대신 피로인으로 끌려갔다가 귀향한 여자들을 '화냥년(환향년)'으로 폄하한 언어의 역사성만이 인구에 회자될 뿐이다.

역사는 저절로 발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작에 충실하게 대사를 윤색한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을 지금 여기의 위기 상황과 동일시해 봄은 타당하지 않다. 차라리 그가 세 인물에게 씌운 인문(人紋)을 지금 여기에서 정쟁을 지피는 데 골몰하는 정치가들에 대한 제언으로 수용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남한산성>을 새삼 부각시킨 이병헌과 김윤석 그리고 박해일의 열연이 헛되지 않으리라.

역사는 저절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옳게 판단하지 않으면 다시 퇴보한다. 따라서 <남한산성>이 조명한 병자호란 당시의 시공간적 배경과 지금 여기의 상황을 비교하며 닮았다고 놀라는 것은 호들갑스러운 반응이다. 고인 물이 썩듯, 수시로 진일보하지 않으면 퇴보 현상은 언제든 역사에서 되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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