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의 김광보 연출. 그는 서울시극단의 단장을 겸임하고 있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의 김광보 연출. 그는 서울시극단의 단장을 겸임하고 있다. ⓒ 서울시극단


"관객들이 봤을 때는 가볍고 일상적일 것일 수 있지만, 배우가 가져가야 할 것은 놓치면 안 됩니다."

서울시극단 단장 겸 연출인 김광보가 본 공연에 앞서 펼쳐진 리허설에서 배우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현실 공감으로 관객들에게 위안을 주고, 그로 인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 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나아가 작품을 통해 자신을 마음을 치유할 기회를 주는 작품 <옥상 밭 고추는 왜>가 지닌 힘의 중심에는 김광보 연출이 있었다.

<옥상 밭 고추는 왜>는 마치 구글 지도를 두 손가락으로 펼쳐 줌인한 뒤 바라보는 여느 동네의 빌라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감정의 어느 한구석을 '툭' 건드리다가도, 봇물 터지듯 감정의 쓰나미를 몰게 하는 힘이 있다. '사는 것이 다 그런 거지 뭐'라는 위안을 얻다가도, '혹시 나는 저 인물 같지는 않을까?' '과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일까'라는 의문까지. 작품 대사 하나하나부터, 인물들이 가진 사연은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게 만든다. 우리네 얘기 같아서, 또 내가 인물과 투영돼서.

"그게 우리네 일상의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굳이 누가 악인이고 아니고 나눌 필요 없어요. 우리의 모습이라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에요."

김광보 연출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아래는 지난 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김광보 연출과의 일문일답이다.

한낱 고추, 그 위대한 고추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빌라 위 옥상 밭에 심은 고추를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갈등을 담았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빌라 위 옥상 밭에 심은 고추를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갈등을 담았다. ⓒ 서울시극단


- 등장인물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입체적인데, 혹시 연출님의 감정이 투영되기도 했나요.
"객관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세세하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굳이 누구에게 힘을 주진 않았어요. 감정이입보다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역할에 대해서 충실하게 보여주려고 했지요."

- 극 중에 '악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 없어요. 보는 관객마다 다르겠지만, 전 처음에는 현자가 너무 싫었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이해가 되더라고요. 근데 운전기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은 좀 그렇더라고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폭행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에요. 무차별적인 살해나 마찬가지요.

너무 확대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고,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에요. 확장되면 더 큰 집단이나, 더 큰 사건으로 발달해 가기도 하지만. 일종의 메타포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 똑같은 모습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고 말이죠. 모든 등장인물이 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인 셈이에요."

- 극 중 현자를 향해 광자에게 사과하라고 분노하는 현태의 모습이 낯설지 않더라고요. 꼭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보다, 분노하는 지점이랄까. 현태 엄마가 현태한테 "창피하다"라고도 하고 그렇게 할 일이 없냐는 식으로 한심하게 보잖아요. 그런 모습이 꼭 기성세대의 눈빛 같기도 하고요.
"분노해야 합니다. 분노를 안 하는 것은 박제돼버린 삶이나 마찬가지예요. 분노가 있어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찮은 일, 거대한 일이라도 분노하는 것은 중요해요. 분노의 표출이. 무대에서 현태대로, 현자대로. 동교대로 펼쳐지잖아요."

- "우리는 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라는 대사도요.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일상 같기도 했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 굴레 안에서 대안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지 않을까요. 물론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 혹시 연출님도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 있으신가요?
"숙명이라고 생각해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고추? 그깟 고추가 뭐라고 사람을?"이라고 하잖아요. 정말 어떻게 보면 한낱 고추일 수 있는데. 그것 때문에 사달이 나잖아요.
"그게 인간인 거예요. 부질없는 욕망. 현자 역시 고추 무수히 딴 게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부질없는 것에 대한 집착이고 결국 파국을 맞는 것이에요. 인간이라는 게 웃기는 거죠! 사소한 것에 집착, 욕망하고. 그런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작품에 다 담겨있어요.

현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결핍이 집착하게 만든 것이지. 고추도 물욕 때문이에요. 욕망. 과도한 불필요한 욕망이 파멸을 몰고 오는 것이죠."

다양한 분노의 형태 그리고 치유

 연극 인생 30년. 김광보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연극 인생 30년. 김광보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 서울시극단


- 어떻게 보면 '혐'(嫌)이란 감정이 깔린 거 같아요. 세대 간, 남녀 간 등. 작품을 보고 나면 좀 그 감정이 무너졌어요. 이해는 못 하더라도 막연하게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요.
"그런 감정은 예전부터 있지 않았나요. 세대 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갈등 등이 더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고, 발현되는 분노가 있다. 정의로운 분들도 있고…. 분노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촛불 들고 광장에 나가지 않았을 거예요. 분노의 형태는 다양하고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통받는 삶을 살았다고 느껴요. 고통 속에서 분노했고, 분노를 함으로써 치유를 받았죠. 많은 사람이 아프지 않나요. 그런 사람이 치유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좋은 세상이지 않을까요."

- 극 중 '남들처럼' '남들만큼만'이라는 표현도 나오는데 그 '남들'이라는 대상은 어떤 이들일까요.
"보편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에요. 남들처럼 잘 때 자고, 그런 삶이요. 일반적으로 많은 이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삶이에요. 그런 삶을 산다고 해서 문제의식이 없느냐, 그렇지 않거든요! 문제의식을 품고 있기도 하고 그냥 살기도 하죠."

- 관객들이 <옥상 밭 고추는 왜>를 보고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꼭 품었으면 하는 감정이 있다면요!
"(작품을 통해) 그냥 삶을 본다면…. 연극을 보고 관객들이 자신의 삶을 바라본다면, 대단히 성공한 것으로 생각해요. <옥상 밭 고추는 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고 본인이 가는 길에서 절망, 희망으로 갈 수도 있어요. 치유의 형태가 될 수 있고요.

사회가 각박해요. 이런 세상 속에서 어떻게 활로를 찾을 것인가…. 그런 고민은 누군가가 할 것이에요. 연극을 통해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치유를 받기를 바라요.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지요."

- 연출님이 작품을 통해 내뿜는 에너지, 그 밸런스를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없어요. 성격 탓이죠. 원래 내가 지저분한(관계, 등 상징적인 것들) 것을 못 봐요. 책도 많이 보는 편이고 영화도 즐겨보는 편인데, 연습 들어가기 전에 대본만 50번도 넘게 탐독하는 편이에요. 대본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고 무대로 오르죠.

- 리허설 과정을 보니 작품이 가까운 듯하면서도 '콕' 찌르는 무언가가 살아있는 비결이 느껴지더라고요. 긴장감이랄까요. 우리네 얘기 같지만,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듯해요.
"배우와 나와 연습과정을 통해 합의한 것들이에요. 그런 것들이 잘 구현되지 않았을 때 캐치하는 것이고. 내가 연출이니까 잡아낼 수 있는 것들이지요."

일상을 무대 위로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를 보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면서, '고작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첨예한 갈등이 이어진다. 김광보 연출의 세련된 터치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를 보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면서, '고작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첨예한 갈등이 이어진다. 김광보 연출의 세련된 터치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 서울시극단


- 작품이 늘 가까이 있는 것 같아요. 영감을 받는 곳은 주로 어디인지 궁금해요.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잘 때까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영감이 될 수도 있어요. 지금 이 순간도요."

- 특히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우리가 가족, 이웃 등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요. 구성원에 속한 자신의 모습과 또 관계에 대해서도요. 쉬울 수 있지만 절대로 쉬울 수 없이 엮인 관계죠.
"가족이라고 하는 게, 작은 사회 가족 아닌가. 붕괴해 간다고 생각해요. 각박한 현실에서 오는. 내부적인 갈등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 붕괴의 조짐이 가족에서 보인다고 생각해요. 가족인데 다 붕괴해 있지요."

- '분노'라는 감정은 많은 사람이 품고 살 거예요. 하지만 이 '분노'를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고, 또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아직 젊기 때문이에요! 젊음은 분노해도 용서되지 않나요.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추가 됐든 뭐가 됐든, 분노할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거죠. 세상을 바꿀 힘은 없어도 분노가 돌아보게 하지 않을까요. 촛불광장에서 느끼는 것. 역사가 바뀌는 것처럼요."

-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망원경으로,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볼 부분이 있는지요.
"그렇기보다, 세상일이 어떻게 세상의 모습을 연극에 담을까, 이다. 뉴스도 열심히 보아야 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형태를 잘 파악해야 무대에서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눈을 뜨고 보는 것이 모두 영감인 것처럼요. 항상 촉이 서 있어야 해요. 레이더로 보고 다니죠. 30년 넘게 연극을 했지만, 일상이 연극이고 연극이 일상이에요."

- 다양한 감정이 들긴 하지만 <옥상 밭 고추는 왜>를 보고,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출님께서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자존감 때문 아닐까요. 자존감이 결국 나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고 인간의 삶이라 생각해요. 자존감을 찾는 과정이 곧 행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행복하기 위해 존재를 증명하고 그러면 행복해지죠. 현태가 자존감을 찾기 위해 세상과 싸우는 것이고, 비극적이지만, 평가가 증명됐을 때 행복한 거예요. 그 존재가 증명될 때 말이에요."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의 포스터 . 지난 13일 개막하여 오는 2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상연된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의 포스터 . 지난 13일 개막하여 오는 2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상연된다. ⓒ 서울시극단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