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김경문 감독의 가을은 미완으로 끝났다. 반드시 1등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끊임없는 도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미소도 내어주지 않는 가을은 김경문 감독에게는 유독 야속하고 잔인한 계절이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NC는 21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치러진 2017 타이어뱅크 KBO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5-14로 완패했다. 1차전 승리로 기선제압에 성공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아 보였으나 이후 내리 3연패를 당하며 한국시리즈를 향한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5년 플레이오프와 2016년 한국시리즈에 이어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서 하필 '친정팀' 두산을 만나 무릎을 꿇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운명이었다.

2004년 두산 사령탑에 오르며 감독 생활을 시작한 김경문 감독은 두산에서 6회, 2013년부터는 NC의 지휘봉에 잡아 총 4회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2017년 가을은 김경문의 감독 인생에서 기념비적인 통산 10번째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다. 가을야구 10회 진출은 이미 은퇴한 김응용(16회)-김성근(12회)전 감독에 이어 역대 3위이자 현역 감독으로서는 단연 최다 기록이다. 명실상부 '가을야구 보증수표'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업적이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오히려 '무관의 제왕'으로 더 유명하다. 꾸준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가을야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14년째 인연이 없었다. 한국시리즈에는 모두 4번(2005, 2007~2008, 2016)이나 올랐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김 감독의 유일한 우승 경험은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무패 우승 금메달을 따냈던 순간뿐이다.

김 감독은 정규시즌 통산 승수도 881승으로 현역 1위에 올라있지만 페넌트레이스 우승 경험 역시 전무하다. 전-현 감독을 포함하여 KBO 역사상 800승 이상을 거둔 감독 중 우승을 한 번도 차지해보지 못한 유일무이한 인물이라는 게 바로 김경문 감독만의 또 다른 진기록이다.

한번 약점을 잡힌 팀들에게는 계속해서 당하는 패턴도 김경문 감독의 징크스다. 감독은 사령탑 데뷔 첫해였던 2004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로 무너진 것을 시작으로 2005년에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또다시 삼성을 만나 4전 전패로 무릎을 꿇었다.

2007년부터는 대표적인 악연으로 꼽히는 김성근 감독의 SK에게 3년 연속 무릎을 꿇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각각 2승4패, 1승 4패를 기록했으며 2009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2승 3패로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3년 연속 먼저 승리를 따내고도 내리 '역스윕'을 당하는 굴욕도 겪었다.

2010년에는 또다시 플레이오프에서 선동열 감독이 이끌던 삼성을 만나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승 3패로 고배를 마셨다. 김 감독은 2011년 시즌 중반 성적부진으로 자진사임하면서 끝내 두산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김경문 감독은 그해 가을부터 신생 구단 NC의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김 감독은 1군 진입 2년차였던 2014년부터 올해까지 NC를 4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끌며 다시 한번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울 징크스와 친정팀의 저주가 김 감독의 꿈을 가로막았다. 김경문의 NC는 201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LG에서 1승 3패로 무너진 것을 시작으로 최근 4년 연속 서울팀들에게 번번이 패하며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김경문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던 시절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친정팀 두산은 2015년 플레이오프(2승 3패)와 2016년 한국시리즈(4패)에서 잇달아 NC를 제물로 2년 연속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두산을 떠나 NC로 부임하는 과정에서 팬들로부터 애증 어린 평가를 받았던 김경문 감독으로서는 희비가 교차하는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간판타자 에릭 테임즈가 떠난 이번 시즌도 NC는 절치부심하며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전반기에는 기아의 독주, 후반기에는 두산과 롯데의 돌풍에 밀려 정규시즌 4위까지 추락하며 이미 험난한 포스트시즌 행보를 예고했다. 그래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왕년의 천적이던 SK를 상대로 첫 포스트시즌 승리를 거뒀고, 준PO에서는 정규시즌 전적에서 밀린 롯데를 제압하며 선전했다.

롯데에겐 강했지만 두산의 벽은 높았다

단기전에 약한 이미지가 있는 김 감독이지만 특이하게도 롯데에게는 3전 전승으로 유독 강했다. 두산 사령탑 시절이던 2009년과 2010년 당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이끌던 롯데를 준플레이오프에서 2년연속 제압한 데 이어 올해는 NC를 이끌고 7년 만에 준PO에서 다시 만난 롯데를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제압했다. 특히 김경문 감독의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업셋(정규시즌 순위가 낮은 팀이 상위팀을 제압하는 것)에 성공한 것은 이번 준PO가 최초였다.

하지만 디펜딩챔피언 두산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NC는 이미 정규시즌에서도 두산에 5승 11패로 가장 열세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의 막강 선발진에 눌려 4경기 2점의 빈공에 그쳤던 것과 달리, 이번엔 타선은 두산 선발진을 내내 공략하며 나름 분전했지만 오히려 지친 마운드가 두산 거포들의 폭풍 화력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NC는 두산 타선에 4경기 50실점 12홈런을 내주는 난타를 당했고, 2차전부터 마지막 3경기(17-14-14점) 연속 두 자릿수 실점을 허용하며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작년 한국시리즈의 악몽을 뛰어넘는 또 한 번의 참패였다.

어느덧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한 NC지만 대권에 도전할만한 팀으로 한 단계 더 거듭나기 위해서는 안정된 선발진 구축이 시급해 보인다. 외국인 투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NC는 후반기 들어 제프 맨쉽이 심각한 부진에 빠졌고, 준PO에서 호투했던 에릭 해커도 4일 휴식 만에 등판한 4차전에서 맥없이 무너지면서 반격의 동력을 잃었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NC 선발투수들은 아무도 5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포스트시즌만 9경기째를 치른 NC의 불펜으로서는 체력적으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두산 사령탑 시절부터 야수 발굴과 불펜 활용에는 능하지만 정작 선발투수 육성에는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바 있다. 토종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던 이재학의 부진이 뼈아팠고 장현식과 구창모, 정수민 등도 아직은 더 경험을 쌓고 성장해야 하는 선수들이다. 타선에서는 박석민의 부진이 뼈아팠다. 어쩔 수 없이 김경문 감독은 포스트시즌에도 변칙적인 경기운영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 아니면 도'에 가까운 김 감독의 모험적인 용병술은 성공하면 신의 한 수가 되지만 실패하면 단기전의 흐름을 망치는 부메랑이 되는 경우도 잦다는 평가다.

어느덧 현역 최고령 사령탑이 된 김경문 감독은 우승의 꿈을 미완으로 남긴 채 한국 나이로 환갑을 맞이하게 됐다. 김성근 감독도 SK 시절이던 2007년, 당시 무려 66세의 나이에 첫 우승을 경험했던 것을 감안하면 김경문 감독도 아직도 늦은 것은 아니다. 김 감독에게도 언젠가는 가을의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며 웃는 날이 다시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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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김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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