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메인포스터.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메인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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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주인공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은 1943년에 태어난 테니스 선수다. 그는 그랜드슬램(윔블던, 프랑스오픈, US오픈, 호주오픈) 대회에서 통산 단식 12회, 여자복식 16회, 혼합복식 11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여자 스포츠 선수로는 처음으로 일 년에 10만 달러가 넘는 상금 수입을 올리며 당대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알렸던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의 미국은 모든 부분에 있어 남성이 중심이 되던 사회였고 그녀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갖은 성차별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다소 뒤늦게 깨닫게 된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인한 복잡한 결혼 문제로 갖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그녀가 WTA(여자 테니스 협회)를 세우고 전 윔블던 우승자였던 바비 릭스(Bobby Riggs)와의 성 대결 경기에서 우승했던 시점을 중점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작품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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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크게 세 가지 내러티브로 분절해 볼 수 있다. 빌리 진 킹(엠마 스톤 분)을 중심으로 여성 테니스 선수들이 함께 WTA를 결성하기 위해 단돈 1달러만 받고 계약을 하는 지점의 이야기가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자신의 성 정체성과 관련해 매릴린(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분)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다. 마지막은 그런 빌리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와의 경기를 통해 다시 한번 테니스계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바비 릭스(스티브 카렐 분)로부터 시작되는 성 대결의 이야기다. 물론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각기 뚜렷한 경계를 사이에 두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모습을 구체화해 나간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남성 테니스 선수였던 바비와의 성 대결 경기는 가장 늦게 등장하지만 작품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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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대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바비와의 성 대결 경기가 이 작품에서 가장 마지막에 다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영화 시작부터 남성이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고 홀대하는 장면들이 제시되기 때문이다(이 작품이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현실에도 동일한 과정 속에 사건이 진행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대회를 주관하는 이들은 남성 경기의 상금과 여성 경기의 상금을 8배나 차이가 나도록 만든 것에 대해 "남성이 여성보다 더 역동적이다, 경기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등 비겁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실제로 선천적인 육체적 차이를 떠나 남성 경기와 여성 경기는 동일하게 매진됐고 이는 마지막으로 바비를 꺾는 빌리 진 킹의 모습을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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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통해 많은 관객들은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안타까운 감정과 벅찬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영화가 197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44년이 지난 2017년에도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거나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만 대해지는 차별과 모욕의 순간들 말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여자가 코트에 없으면 공은 누가 줍느냐"며 여성 테니스 선수들을 조롱하는 시선에 대항해 직접 발로 뛰어 협회를 설립하는 빌리 진 킹과 여성 선수들을 응원하게 된다. 남성 중심의 스포츠 업계의 냉대를 이겨나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모습은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일반화시켜 확대 해석하면 사회나 집단의 냉대와 무시, 차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뜻을 끝까지 관철시켜 세간의 시선을 바꾸어 놓는 것으로도 보여질 수 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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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과연 지금까지 이야기 한 모든 내용들이 '이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이와 관련한 물음은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했던 인물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들, 특히 그 중에서도 사실에 가깝게 고증하고자 하는 작품들에서 자주 언급된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느끼는 모든 것들이 영화를 통해 얻어지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실재했던 사실로부터 오는 것인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역시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분명히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빌리 진 킹의 업적과 행위에서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도드라지고 있고 풍부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작품으로 인해 빌리 진 킹이라는 인물이 지금 시대에 알려졌다는 긍정적 효과라던가 주인공 역을 맡은 엠마 스톤, 스티브 카렐과 같은 배우들의 연기가 흡족할 만큼 뛰어났다는 것과는 다른 지점의 문제다. 과거 애쉬튼 커쳐가 스티브 잡스로 분해 연기했던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의 <잡스>(2013)가 떠올랐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작품성만 따지자면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는 2013년의 <잡스>에 비해 뛰어난 쪽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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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전에 작품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폭스캐쳐>(2015)에서 보여준 스티브 카렐의 연기와 아직도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영화 <라라랜드>(2016)의 히로인 엠마 스톤의 만남만으로도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다려졌던 작품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스 리틀 선샤인>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감독이 함께 호흡을 맞췄으니 말이다(두 감독이 보여줬던 재치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허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마지막으로 코트 안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바비와 빌리 두 사람이 코트 밖에서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다퉈왔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 지점에도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삶에 대한 태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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